1997년에 무경운, 무비료, 쌀과 밀의 윤작으로 농사를 짓는 '태평농법' 현장에 처음 갔을 때는, 그야말로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밭을 걸어보았다. 그때의 경험은 땅을 갈지 않는 데서 오는 건강함으로 기억하고 있다. 15년 가까운 시간을 유기농으로 포도를 키워온 농가에 갔을 때는 흙의 유기질을 높이기 위해 퇴비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 과정도 볼 수 있었다. 톱밥을 기본으로 수차례 발효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는데, 밭 흙의 유기질 수치가 원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족히 10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대규모 단작에서 제초제 없이 농사짓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더러 있다고 하는 경우에도 현장을 가보면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밭의 생태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고, 친환경 자재를 써서 병충해를 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유기농이나 자연농법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상당 기간 농가의 내핍을 각오해야 하고 각종 친환경 농자재와 개량된 종자를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정부와 농자재업체에 의존하는 농사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구조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땅의 생명력을 되살려내어 건강한 열매, 참맛을 지닌 농작물을 수확하고 있어도, 안타까운 것은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논농사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농사는 대부분 논농사이다. 논은 쌀을 생산해내는 곳이기도 하지만, 홍수 조절 능력, 담수 보호 기능은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논이 건강하지 않을 때 작은 개울물에서 강으로 바다로 향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수백 수천 배 커진다. 숲은 바다의 연인이라 하지 않던가! 동아시아 나라들이 쌀을 주식으로 함으로써 지구의 담수를 지키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 30여 년 유기농으로 논을 지켜온 고 강대인 님의 논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논 생물 탐사를 했을 때는, 그저 논을 밖에서 보던 때와 다르게 수십 종류의 수서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일본의 몇몇 지역에서는 유기농을 넘어 자연에 더 가까운 농법을 실천하고 있었고(우리 농가들 중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위적·강압적 힘이 덜 들어간 논과 밭에서는 온갖 생명들이 넘쳐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활약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겨울에도 논의 물을 빼지 않고 두면 처음엔 실지렁이가 무수히 늘어나고,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으로써 논의 생태가 건강해지고 먹이사슬에 의해 철새들의 유용한 경유지가 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땅 위의 생명들이 살아나면 당연히 날짐승들이 깃들기 마련인데, 우린 그런 고리들을 끊어버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일대를 황새 마을로 복원한다고 하고, 청주 교원대에서는 최근 사육하고 있는 황새를 야생에 방사했다. 1971년 충북 음성에서 사냥꾼의 총에 의해 사라진 뒤 우리 들과 산에서 황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자연의 회복력은 참으로 놀랍다. 뭐, 멀리 갈 필요 없이 한 뼘 텃밭이라도 낙엽이나 짚으로 덮어주고 한 해가 지난 뒤 들춰보시라. 거기엔 또 하나의 우주가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과 농업의 현실이 어둠이라면,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 하나라도 켜 들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 시작은 씨앗, 대대로 그 지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한 토종씨앗이어야 한다. 토종씨앗은 화학비료와 농약은 필요하지 않으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여러 품종들이 어울려 자랐을 때 훨씬 더 잘 자란다.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효과적이다. 자연 안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다양한 생물들이 모두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우리는 그 고리를 살짝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농부가 되면 좋겠다. 이러한 바람에 한 줄기 빛을 보여준 것이 <가이아의 정원>(토비 헤멘웨이 지음, 이해성·이은주 옮김, 들녘 펴냄)이란 책이었다. 이 책은 퍼머컬처 생태 디자인을 기본으로 정원을 가꾸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식물의 모습이 어떤가를 넘어 식물이 과연 무엇을 하는지를 파악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자연 생태계처럼 건강하고 회복력이 있는 정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정원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에게 풍성한 선물을 제공할 것이다."(<가이아의 정원> 225쪽)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어머니처럼 지구의 생물들을 보살펴주는 자비로운 신을 말한다. 영국의 대기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그 이름을 따서 1972년에 '가이아의 이론'을 주창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스스로 생존 능력을 지닌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제목이 '정원'이라 해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정원은 지속가능하게 디자인된 텃밭이고 과수원이고 또 하나의 숲이다.
나는 크게 돈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내 몸과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력은 줄일 수 있는(나이가 들수록 일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행복한 농사꾼이 되고 싶었다. 경운기도 없고, 가진 거라곤 삽과 괭이·호미·낫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육중한 트랙터가 내 밭을 짓뭉개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 책에는 땅을 갈지 않는 것은 기본으로, 흙의 유기질 함량을 높이기 위한 비법도 소개되어 있다. 그 방법이라면 3~4년 뒤엔 맨땅이 보이는 곳은 한 군데도 없어질 것이다.
단 50평, 100평뿐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퍼머컬처 디자인을 바탕으로 작물을 배치한다. 자연 환경과 자연의 원리를 먼저 살피고, 밭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앉아 있는지? 비 오는 날 물길, 바람의 방향, 주변에 많이 자라 있는 풀들, 집에서부터의 거리, 작업용 손수레의 동선을 관찰하고. 밭일만 할 것인지? 가끔은 밭 가운데서 민들레와 마주앉아 사랑하는 이와 담소를 나눌 것인지? 멀리서 찾아온 벗들에게 얼른 따주고 싶은 열매는 무엇인지? 궁리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라 우리와 다른 작물들이 있지만, 우리 토종작물들로 얼마든지 구도를 잡을 수 있겠다. 작물 특성에 맞는 사이짓기·섞어짓기·이어짓기를 살피고, 옥수수와 덩굴콩과 호박의 세 자매 길드와 사과나무·호두나무 길드의 교목, 관목, 일년생 채소들의 배치는 정말 마음에 든다. '길드'는 우리의 전통 농법에서 말하는 사이짓기·섞어짓기의 개념과 상통한다. 관목은 주로 베리류를 예로 들고 있지만, 우리에겐 오미자·구기자·복분자가 있고, 이 녀석들은 아주 훌륭한 약재이기도 하다. 호두나무의 타감 작용을 완화시켜주는 뽕나무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산과 가까운 밭에서는 늘 산짐승들의 피해를 염려하게 되는데, 향이 강한 들깨를 울타리 삼아 심어 놓으면 고라니의 침입을 줄일 수 있고, 혹여 밭일을 하다 뱀을 만나 기겁을 하는 초보 농군들은 밭의 네 귀퉁이에 결명자를 심어보시라!(<가이아의 정원>에서는 각종 허브를 예로 들었지만, <'고농서의 현대적 활용을 위한' 온고이지신>(농촌진흥청 펴냄))에 담겨 있는 조상의 지혜와 맞닿아 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번식하고 늘 밟고 다녀도 잘 자라는 질경이·민들레·쑥·냉이들은 통로의 지피식물로도 적당한데, 나물이나 김치의 재료로는 물론이고 약재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실제 내가 알고 있는 배 과수원에는 제초제를 쓰지 않은 지 십수 년이라 해마다 쑥을 베러 오는 떡집, 한의원 고객들이 있다.
3~4년이 지나면 맨땅이 없기 때문에 습도가 유지되고 물 부족을 크게 느끼지 않겠지만, 그전에는 스웨일(얕은 물구덩이)이나 연못을 만들어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단지 물을 보존하기만 하겠는가? 연못은 금방 수서생물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고, 온갖 새들이 날아드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사실 우리 행성은 지구(地球, Earth)가 아니라 수구(水球, Water)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물이 많다. 지표면의 70퍼센트 가량을 뒤덮고 있는 이 생명의 액체는 부피가 대략 13억 9천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그것의 대부분은 사용할 수 없는 물이다. (중략)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신선한 물은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의 3퍼센트의 4분의 1에서 다시 그 절반에 불과하다. 비율을 계산해보면 0.375퍼센트가 된다."(<가이아의 정원> 184쪽)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면서(물론 초기에는 더욱 치밀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이 필요할 것이다) 자리를 잡아주면 자연이 폭발적으로 생태 그물망을 치기 시작한다. 집과 연결해서 하수를 재활용하고 정원에서 생산되는 부산물로 땅을 계속 덮어주면 해가 거듭될수록 생태계는 균형을 잡아가고 병충해는 물론 기후 변화에도 아주 유연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실제의 그림과 사진들이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정원의 큰 그림은 자연의 패턴을 모방함으로써 자연이 가르쳐주는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연을 모방하는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날마다 흙투성이로 고단한 노동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은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큰 과일나무와 교목의 아기자기한 열매들을 1년 내내 얻을 수 있고, 부엌문을 열고 몇 걸음만 가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쌈 채소와 허브 들을 바로바로 딸 수도 있다. 게으르지는 말자. 그러나 자연이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배려하자.
진화하는 숲 정원의 변화는 대략 다음과 같다(<가이아의 정원> 404쪽).
△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식물이 온종일 햇빛을 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상부의 층들과 개간지, 가장자리에만 온종일 햇빛이 든다.
△ 가뭄에 노출되어 있고 날씨의 변화와 방치에 약한 상태였다가, 습도가 균일해지고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게 되며 온화한 미기후로 채워지게 된다.
△ 바람에 노출된 상태였다가 고요하고 안락한 상태가 된다.
△ 꽃과 먹을거리, 서식지, 피복재, 바이오매스 생산의 대부분이 아래쪽의 층에서 일어나다가, 관목층과 교목층에서 점차 많은 양이 생산된다.
△ 처음에는 피복재와 비료를 외부에서 들여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낙엽과 깊은 뿌리를 통해 끌어올린 영양분으로 토양이 풍부하고 비옥해진다.
제아무리 부지런한 상농부가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생태 그물망으로 촘촘하고 치밀하게 짜인 자연이 하는 일에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겸허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간섭을 멈출 필요가 있다. 작더라도 아니, 작은 곳부터 시도하고 넓혀가는 것이다. 특히 오로지 토종종자로만 농사를 짓기 원하고, 한 해에 적어도 30여 가지를 함께 기르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이아의 정원>에서 제시하는 방법(가장 자연을 닮아 있는 밭의 모습, 다양한 작물들이 서로 어울려 도와주고 협력하는 배치)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도시농부들이나 귀농인들은 세 자매 길드(옥수수와 동부의 사이짓기와 그 사이에 풀들의 자람을 방지할 수 있는 호박을 한두 그루 심어보는 것이다)부터 한번 시도해보길 권한다.
나도 올해는 "나뭇잎 패턴"으로 텃밭을 가꾸어보고, 햇빛의 방향을 살펴 "열쇠구멍 패턴"도 시도해볼까 한다. 한 해에 한 번밖에 짓지 못하는 농사이고 앞으로 몇 해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작이 반이다. '딱! 10년 아니, 5년만 젊다면…'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결코 늦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5년 9월 현재 74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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