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라는 말을 쓸 때 따옴표를 치는 이유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 정신대 등 다양하게 불려 왔다. '위안부'의 피해는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강간이었고 이외에도 기아, 공포, 구타 등 가히 인간말살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고통에 대해 '위안(慰安)'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당사자에게 일종의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에서 그 폭력성을 보여주기에 연구자들은 따옴표와 함께 관용적으로 위안부라고 쓰고 있다.

무엇에 대해 어떤 책임을 통감하는지는 없고 법적 배상 아닌 10억 엔을 출연한다는 말뿐
먼저, 한일 외교장관 합의(한일합의) 결과 발표한 '합의문'을 살펴보자. 사실 이 합의문은 언론에 발표된 성명이지 공식문서가 아니어서 정확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래서 한 일본 변호사는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문'이라고도 부른다.
그동안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었다. 이런 견지에서, 이번 합의에 쓰인 '책임'의 성격이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합의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도의적 책임을 말하던 것에서 법적 책임으로 책임의 성격이 이행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위 문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군의 관여'와 '여성의 상처'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 "군의 관여하에"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기에 엄격하게 말해서 (일본)군은 고통에 대한 하나의 맥락이 될 뿐이다.
또한, '위안부' 여성들이 받은 피해를 법적 차원의 피해나 손해가 아니라 '상처'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저 한 많은 여성이 아닌데도 상처라는 표상으로 그런 이미지를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는 명예와 존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상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들의 신체–온몸 구석구석, 피부와 신경, 목소리와 몸짓, 그리고 기억과 꿈에 걸쳐 있다.
하지만 이 문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군의 관여"라는 말만 있을 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한 행위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관련 국내법이나 국제법을 위반한 데 대한 언급도 없으므로 무슨 근거로 무엇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법적 책임을 지는 거라면 이로 인해 어떤 법적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지를 밝혀야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국의 '위안부', 강제 징용 및 징병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도의적 책임만을 이야기해 왔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한일합의가 일본 정부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으며 재단에 출연한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도의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 내용을 보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게 아니라 '애매한 지대'의 책임 인정으로 보인다.
더구나 일본 정부에서 도의적 책임을 인정했다고 보기에도 진정성이 부족하다. 아베 총리가 직접 합의문 또는 사과문을 공적 장소에서 읽지 않았고(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과했다고 한다), 일본 의회에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사과하라는 야당 의원의 요청에 대해 "위안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하면 그건 최종 종결된 것이 아닌 게 된다"면서 거절했다. 이런 사과는 인도적 차원에서도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망언…생명 존중 없는 합의만으로는 해결 안 돼
일본 정부는 이렇게 애매하게 책임을 언급한 뒤 이 문제를 완전히 덮어 버리고 싶어 한다.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했고, 한국 정부에서 이를 확인해 주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일본 정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문제에 대한 매우 성급한 결정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는 망언이 계속 나온다면 이를 한국 정부에서 비판하는 게 한일합의에 반하는 것인가? 일본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왜곡해서 기술한 데 대해 수정 요청하는 것은 어떤가? 한국 정부는 합의문에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관련 단체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일본 정부 측의 소녀상 이전 요청이라는 맥락이 있다. 한일합의 직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소녀상은 적절히 철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언급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국 정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해 준 반면, 일본 정부가 잃은 것은 단지 10억 엔이다.
10억 엔이 적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돈의 액수란 언제나 상대적이고, 문제는 그 의미일 것이다. 10억 엔은 현재 40여 명 남아 있는 '위안부' 생존자들에 대한 피해배상액도 아니고, 그동안 한국에서 정부에 신고했던 238명, 나아가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대부분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한 배상액은 더더욱 아니다.
해결의 열쇠는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어떻게 이들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존엄성을 되돌리는가에 있다고 보인다. 이 점에서 '생명정치'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생명정치는 생명을 존중하고 살리는 정신, 인간을 파편화된 관계나 기능으로 다루지 않고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을 가진 통합된 존재로 대하는 가치관이 근본이 되는 정치이다. 생명정치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명이 가장 큰 피해 내용이자 피해 회복의 원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즉, 생명을 훼손한 데 대해 깊이 참회하고 생명을 존중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 원칙이 되어야 한다.
첫째, 피해자 대다수를 이루는 사자(死者)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 피해 회복의 원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피해자에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타이완, 북한,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미얀마(버마), 동티모르까지 다양한 민족과 국적의 여성들이 포함된다. 남북한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가장 많은 '위안부' 피해자를 둔 최대 피해국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증인이자 대리인으로서 현재의 생존자들을 대우하여 이들을 '위안부' 문제 해결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시켜야 한다. 이번 한일합의의 문제점은 이들을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단지 보상을 받는 객체로 본 것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일본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고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들었는가가 아닐까?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동일시한 청취가 중요하다. (범죄)피해자 권리에 대한 국제인권규범에서도 피해자들은 문제 해결 절차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참여"를 할 것, 즉 경험을 말하고, 상대방에게 들리게 하고, 그래서 공감을 이루는 것을 피해 회복의 중요한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민 차원의 생명정치가 답
이번 아베 총리의 대독 사과, 일회성 사과 그리고 소녀상 철거를 요청하는 사과는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과라고 보이지 않기에 사과라고도 할 수 없다. '위안부' 피해여성을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여길 때, 이 문제를 통해서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고, 일본인이 한국인과 연결감을 느끼며, 산 자들이 사자들을 기억할 때 숭고한 생명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을 때 이 문제의 해결이 가슴 뿌듯하게 충만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문제의 해결이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커다란 실책 또는 외교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제 시민 차원에서 생명정치의 꿈을 함께 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한일합의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위안부' 피해자와 손잡기 캠페인으로 '정의와 기억 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시민 모금에 들어갔다.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뜻으로 출연자 100만 명 모집을 목표로 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염원하고 있다.
다양한 현장에서 식민지와 역사, '위안부'와 젠더, 성폭력을 연결하는 공부와 토론의 장을 여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에 되새기는 것은 단지 상처를 되새기는 게 아니라 변화와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총선 등 정치 선거에서 역사적인 의제에 대한 정당과 정치인의 비전을 검증하면서 표를 던질 일이다. 흔한 개발 공약을 넘어서서 역사 문제를 현실의 언어로 정치 의제화하고 풀어가고자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반드시 당선시켜야 하지 않을까? 정신분석가 융은 "사람들의 무의식 현상조차 집합적"이라고 하였다. 말할 나위도 없이, 역사 문제는 시민들이 함께 꾸는 꿈속에서 해결의 길이 닦일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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