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연수를 받고 있는데, 특수교육지도사(특수활동보조인)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특수반 민호가 하교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다리 앞에서 무서워 건너지 못하고 있더란다. 오래전 아는 선생님 반 아이가 특수반 교실 수업을 마친 뒤 통합교실로 가지 않고 학교 밖에 나가 작은 개울에 빠져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지적장애 아이 혼자 걸어가다가 사고라도 났다면,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일하시는 민호 어머니께 문자를 먼저 보냈다.
"어머니, 오늘 민호가 학교 버스 타기 전 운동장에서 오줌 누다가 혼나고 화가 나서 혼자 집에 간다고 학교를 나갔어요. 민호에게 학교 밖으로 함부로 나가지 않도록 이야기해 주세요. 학교에서도 더 주의할게요."
연수 후 퇴근한 민호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선생님, 민호가 왜 학교를 나와 걸었는지 아셔요? 민호가 그러는데 다른 아이들이 민호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해요. 민호는 4학년 동철이와 호진이가 그랬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호진이 집에 가서 호진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늘 제가 출장을 나와서 정확한 사건은 몰라요. 내일 출근해서 알아볼게요.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고, 또 동철이와 호진이가 장난을 많이 쳐도 그렇게 나쁘게 놀 아이들이 아닌데, 놀랍네요. 어머니, 혹시 민호가 학교 밖으로 뛰어나간 걸로 야단맞을까 봐 다른 말을…. 요즘 우리 민호가 거짓말도 곧잘 해요." "선생님, 아이가 돈을 찾아요. 우리 민호 돈에 대한 개념 없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 아이가 벌벌 떨면서 돈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요."
어머니가 울먹인다. 나는 믿기 어려웠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 내가 아는 아이들이 민호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내가 아는 민호는 고집이 아주 세고, 자기 멋대로 행동을 하는 아이라 보통의 협박으로 겁을 먹을 아이가 아니다. 특수활동보조 선생님 말로는 운동장에서 오줌 누다가 혼나서 제멋대로 행동한 것이라는데, 어머니는 아니란다. 민호 어머니께 "지금 민호가 많이 놀랐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 학교에서 선생님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렇게 혼자 학교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걸 꼭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민호가 학교 밖 위험한 도로를 혼자 1㎞를 걸어간 것은 걱정되지 않는단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협박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 더 걱정이 된다고 한다.
어머니와 나는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처럼 민호를 으뜸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게 섭섭하다고 한다. 나도 속이 상한다. 내가 민호를 씻기고 입히고 먹인 걸 생각하면….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엇보다 민호가 당신의 소중한 아들인 것처럼 동철이와 호진이도 다른 어머니의 소중한 아들인데, 민호 말만 듣고 아이들을 바로 죄인 취급하는 것이 불편했다.
심란한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오니(나는 학교 관사에 산다.) 김 부장님이 야근을 하고 있었다. 김 부장님께 민호 이야기를 했다. 안 그래도 민호 어머니께서 나와 바로 통화가 되지 않아 당신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일 특수반 아이들(민호 포함)을 데리고 체험학습 나가요. 민호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요. 민호 고집이 세서 체험학습 나가는 날에는 무조건 민호의 기분을 맞춰 줘야 해요. 부장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동철이와 호진이의 4학년 담임선생님(학교생활부장님)과 통화를 했어요. 동철이와 호진이 따로 만나서 얘기하고, 어제 운동장에 같이 있었던 아이들을 불러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볼 거예요. 선생님은 내일 걱정 말고 아이들과 체험학습 잘 다녀와요." "민호 어머니께서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호진이 집에 찾아갔다고 하네요. 민호가 지적장애가 있지만, 거짓말을 잘하거든요. 어머니는 또 완전히 민호 말만 듣고 앞서 나가시니 속상해요." "그러게. 어머니께서 호진이 집에 직접 찾아간 것은 문제가 있네. 아까 전화받았을 때 어머니 감정이 격양되어 울었어. 어머니도 놀라서 그랬겠지만."
다음 날, 체험학습 가기 전에 민호를 불러 살짝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랬어? 왜 하교 차를 안 타고 학교 밖으로 도망갔어?"
내가 묻는데 답이 없다.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해서 겁이나 학교 밖으로 나간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민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선생님이 항상 이야기하잖아. 민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을 찾아 이야기하라고 했지. 어제 선생님이 교실에 없었지만, 그럼 교무실 가서 다른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야지. 혼자 학교 밖으로 도망가면 안 되는 거야."
체험학습을 다녀와서 김 부장님을 만났다. 김 부장님이 아이들을 만나서 물어봤는데, 어제, 지난해 졸업생 성남이가 와서 아이들과 장난으로 돈 달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단다. 민호에게 직접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민호가 그 말을 듣고 반응을 한 것 같다고 한다.
민호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민호 친구들이 돈을 달라고 한 게 아니라고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민호에게 계속 일러 줘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게요. 민호에게 얘기를 해야지요. 이제 곧 중학교 갈 생각하면 걱정이 많이 돼요. 어디서 맞고 다닐까 봐."
민호는 기분이 나쁘면 통합교실에서 의자와 책을 친구들에게 던지고 발길질을 예사로 한다. 화장실 사용할 때도 똥칠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른다. 어른도 참기 힘든 아이의 문제 행동을 함께 공부하는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이 6년 동안 감당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걱정이 얼마나 클지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호 어머니도 다른 아이들에게 당신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하는 마음 한 편, 시골 학교 착한 아이들이 민호의 장애를 이해하고 많이 배려해 준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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