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동안 새로 사귄 친구라고는 단 한 명, 이웃 마을에 사는 동갑내기 농민 석봉뿐이다. 농사와 굴착기 일을 하며 알게 된 이는 많지만, 말이 통하는 친구는 그뿐이다. 가끔 만나 밥도 먹고 1년에 두세 번은 멀리 강릉으로, 남해로 하루 여행도 다니는 절친한 벗이 된 오래다.
석봉은 여러 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나 공장 생활을 하다 귀향한 후 동생들 뒷바라지에 마을 일이며 문중 일까지 앞장서면서도 거의 맨손으로 중농(中農)을 이룬 대단한 친구다. 본래 체격이 좋기는 하지만, 그가 '무식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저러다가 쓰러지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좀 몸을 아껴 가며 일하라는 잔소리가 내 입에 붙었다.
이 친구 석봉이 요즘 내게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자를 안 쓰던 친구였는데, 귀여운 스마일 부호까지 넣어서 단체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동생이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선 후부터다.(새누리당이 맞나? 또 이름이 바뀐 건 아니겠지?)
"항상 감사드립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당당히 살아왔기에 좀처럼 써 볼 이유가 없던 이런 문구를 보내는 걸 보면서 돕겠다는 소리도 못 하고, 반대하지도 못하는 내 심사가 묘하다. 이천은 보수 표밭이라 새누리당 후보만 되면 당선이나 마찬가지니, 내 도움 같은 건 필요도 없는 걸 다행이라고 해도 되나?
행정고시에 붙어 공무원 생활을 하던 석봉의 동생이 정치를 알게 된 것은 더욱 묘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권력은 잡았지만 행정 능력을 갖춘 보좌관이 아쉬웠던 그가 석봉의 동생을 청와대로 불렀고, 유능한 일 처리로 인정받아 여야 할 것 없이 널리 인맥을 쌓은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 이후에도 청장급 고위공무원으로서 많은 일을 해서 지역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의 야당(現 더불어민주당, 舊 민주당 또는 열린우리당) 덕분에 정치권에 발을 디딘, 생각이나 행동이 그다지 보수적이지도 않은 석봉의 동생이 여당에 갔다고 '배신'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젊어서부터 유력 정치인 주변에 떠돌던 정치 한량이 아니면 운동권 출신들이 운집한 야당에서 그를 영입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잘 알아 모시는' 새누리당이 역시 집권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뿐.
동생도 그렇지만, 석봉도 진보까진 아니라도 보수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친구다. 그 자신이 빈농(貧農)이요 노동자였던 경험도 있어 약자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강한 그는 금권(金權)을 쥔 세력들이 서민을 쥐어짜는 현실에 늘 분노했다. 가난한 이들을 쥐어짜는 세금제도, 미흡한 복지제도 등 현실의 문제며 보수정권의 잘못된 행태가 언제나 우리의 화두였다. 물론 보수적인 의견도 많이 내지만 보수정권에 대한 비판과 각개 사안에 대한 동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적어도 빈부격차와 인간 차별 문제에 있어서 그는 명백히 이 나라가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내 친구가 됐겠는가.
오히려 행동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 이타적(利他的)이다. 그토록 힘들게 번 돈을 주변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공적인 일에 아낌없이 바쳐서 툭하면 아내에게 야단을 맞는다. 우리 면의 유일한 공원인 앞산에 모 대학의 대규모 목장이 들어오려 할 때도 농사를 젖혀놓고 앞장서 물리쳤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기 때문일까? 20년을 만나도록 도대체 이기적인 말이나 행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친구다.
석봉이 형제를 보고 있으면 어떤 한 사람을 보수인가 진보인가로 단칼에 자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이해하는 종합적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좌우의 양극단을 차지하고 앉아 서로를 수구꼴통이니 종북좌파라 욕해 대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은 흑백이 아닌 천연색의 상념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한두 마디의 발언이나 생각을 가지고 한 인간을 찬양 혹은 매도하는 짓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과학적인가.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부터 농협 앞이며 삼거리 모퉁이 등 곳곳에 시뻘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눈에 확 띄는 글씨는 이거다.
'결사투쟁, 단결투쟁'
내용은 자잘한 글씨로 길게 쓰여 있어 옮기기 어려운데, 간단히 말하면 우리 동네를 지나는 지방도의 4차선 확장 공사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단다. 그런데! 4차선 공사는 벌써 시작돼 산과 들을 '까부순 지' 오래다. 더구나! 이 플래카드는 공사가 시작된, 한참 후에 내걸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아니, 공사가 한창인데 저런 걸 왜 붙여? 무슨 문제가 있나?"
내 질문에 석봉은 멀뚱히 답한다.
"아무 문제 없어. 공사는 잘 될 거야."
"근데 왜 이런 걸 붙여? 떼지도 않고."
"그런 거라도 붙여 놓으면 더 열심히 공사할 것 아냐."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계산법이다.
"아니, 공사 시작 전에는 왜 안 붙인 거야?"
석봉은 이 질문에는 그저 웃기만 한다. 정부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뜻일까? 정말 싱거운 사람들이다.
이천이 보수 동네임을 보여 주는 건 플래카드만이 아니다. 수도권 주변의 농촌이다 보니, 정화시설이 제대로 안 된 온갖 폐기물 업체며 강원도 춘천과 서울에서 밀려난 군부대가 밀고 들어오는데 주민들은 놀랍게도 너무 쉽게 입주 승인 도장을 찍어 준다.
심지어 스스로 공수부대를 유치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수부대를 받아 주는 대신 정부가 수천억 원을 지원해 물류단지를 조성해 주기로 했는데, 진척이 안 되자 이천시장이 산 돼지를 찔러 죽이는 끔찍한 행위극까지 벌이는 바람에 동물 애호가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석봉은 당시 주민 대표의 한 명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직접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군부대는 내려오고 거대한 물류단지도 세워졌는데, 얼마 전 부대 주변 주민들이 헬기 소음에 항의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일이 또 있다. 석봉이 이장을 볼 때 주민을 설득해 음식폐기물 업체를 유치했다. 5000만 원의 마을발전기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막상 가동이 되니 악취가 우리 집까지 날아와 소동이 났었는데 요즘은 시설을 개선한 건지, 문을 닫은 건지 냄새가 없어 다행이다.
마을 공원에 목장이나 위락업체가 들어오는 것은 막아도 군부대나 음식폐기업체처럼 필수 시설은 앞장서서 유치하는 석봉의 진정성을 지역이타주의라고 해야 할지, 애국심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는 게 옳은 건지, 안 막는 게 옳은 건지도.
이런 석봉이 지난 수년간 몹시 힘들었다. 100마리에 이르는 한우를 키우는데, 사료비가 예전의 두세 배로 오르는 바람에 땅까지 팔아 소를 먹여야 했다. 사료비를 아끼려고 여름 내내 강변에 나가 풀을 베어다 먹이느라 그 튼튼하던 몸이 홀쭉해졌을 때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요즘 소고기 값이 올랐다니 앞으로는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어쨌든 농촌은 석봉이 같은 사람들이 지킨다. 20년을 살아도 나는 여전히 서울 사람이다. 그래서 마을의 대소사(大小事)로부터 자유롭다. 마을은 석봉이가 지켜 주니, 아무 걱정이 없다. 이래서 나는 시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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