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알람 소리에 어렵게 눈을 뜨고 밖을 보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제일 일찍 출발하는 버스 시간은 정해져 있어 미리 출발도 어려웠다.
우리 집은 군내버스가 다니는 면 소재지에서 더 들어가는 마을에 있다. 하루에 버스가 마을로 세 번 들어오는 곳이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꼭 필요한 곳이다. 남편이 면 소재지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눈 내리는 정류장에서 함께 기다려 주었다. 2박 3일 동안 집을 비우는 아내의 빈자리가 허전할 것 같아서일까? 아무려면 어떤가? 남편의 배려가 그날 따라 고맙고 고마웠다.
전주행 버스가 왔다. 나는 지금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교육을 받기 위해 경기도 포천 김준권 선생님 댁으로 향하는 길이다. 꼼꼼히 교통편을 알아본 결과, 내 이동 경로는 임실 → 전주 → 동서울 → 포천 → 교육장(관인면 중리)이었다.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를 바꿔 타고 교육장까지 가야 한다. 도중에 식사시간도 부족해 삼각김밥과 우유로 배를 채워가며 간만에 먼 길을 가고 있다. 다시금 제시간에 도착하기를 바라볼 뿐이다. 다행히 경기도부터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김준권 선생님 댁이 있는 포천시 관인면에 도착했다. 결국 교육장인 선생님 댁도 면 소재지에서 버스가 자주 없는 마을에 있어 다시 마을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40여 분을 정차한 후에 버스가 출발한다고 하니, 그사이 배도 좀 채우고 필기도구도 하나 샀다. 이미 교육시간은 놓쳐버린 상황이었다. 택시라도 탈까 생각했지만, 시골은 택시도 많지 않다. 누군가 타고 나가면 그 택시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내가 사는 면과 상황은 똑같았다. 제시간에 교육장까지는 도착은 못했지만 교육장 가까운 곳까지 왔다는 안도감에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40여 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마을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님께는 초행길이라 어딘지 모르겠으니, 중리초교에서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학교가 보이는 곳에 세워줬다. 새로 도로가 생겼는지 아직 버스정류장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곳에서 내려준다고 했다. 이미 교육은 시작됐고, 고기 손질도 끝나 양념에 고기를 재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듣고 메모하고 익혀야지….'
교육의 시작과 만남들
눈매가 선하고 지적인 얼굴의 김준권 선생님을 처음으로 뵙게 되었다.
선생님은 35년 넘게 무농약 유기농 농사를 실천하고 현재는 포천 관인면에서 부인되시는 원혜덕 선생님과 함께 '평화나무농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정기적인 귀농본부의 귀농 강사 일과 매년 겨울이면 자택에서 햄, 소시지, 베이컨을 만드는 육가공 실습교육을 열고 계셔서 참여하게 됐다.
육가공 교육 외에도 '생명역동농법' 강의가 있었는데, 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 을 바탕으로 우주의 기운을 증폭시키는 처방을 통해 농사에 그 기운을 더하여 안정적인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계시는 농법이 크게 다가왔다. 우리가 하는 친환경 농법이 결국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농법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또 자연스러운 유기 축산을 하는 김준권 선생님은 소규모 농가에서 건강하게 키운 돼지를 조금만 가공하면 질 좋고 안전하며 값도 저렴한 맛 좋은 음식으로 먹고 나눌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으로 육가공 교육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쉽고 무분별하게 고기를 탐해왔나? 그 고기들이 생명이 있던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저 고깃덩이로만 요리하고 먹는 데만 열중했는데 선생님의 교육은 건강하게 키운 소, 돼지를 필요한 만큼 잡아서 화학적 첨가물 없이 안전하게 가공해 먹고, 건강하게 배설하는 것도 자연순환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셨다. 선생님의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정신이 내 정신을 증폭시키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핵심은 자연의 순리에 가깝게 키운 안전한 먹거리에 화학적 첨가물과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하는 것, 건강하게 적당히 섭취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섭취된 안전한 먹거리가 자연으로 순환되게 배출하는 것.
직접 가축을 기르지 않기에 고기로서만 구입해 먹었는데 앞으로 고기도 자급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올해부터 달걀과 고기를 얻기 위해서 닭을 키워볼 생각인데 동물을 키우는 게 영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배설물을 자연으로 순환될 수 있게 좀 더 생태적으로 사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겠지만, 건강하게 키워진 가축의 고기를 선택적으로 먹는 것도 우리가 우선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육가공 교육 첫날은 부위별 고기를 양념해 놓는 것(햄은 등심 부위, 소시지는 앞다리나 뒷다리 등, 베이컨은 삼겹살 부위를 마늘, 양파, 생강, 소금, 설탕으로 재 놓은 것)으로 우선 끝내고, 저녁 식사 후 선생님의 '생명역동농법' 강의 후 함께 참여하게 된 교육생들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이번 교육은 13명가량 신청했다고 한다.
가까운 서울, 경기부터 멀리 울산, 경주, 장흥, 순창 등 각지에서 이 육가공 교육을 듣기 위해 오신 열정적인 분들이다 보니 실습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셨다. 특별히 경주에서 유명한 커피전문점을 하는 분은 직접 볶은 원두로 매일 맛 난 커피를 내려줬고, 아빠와 아들이 함께 참여한 어느 집은 18살 아들이 집에서는 칭찬받을 일이 없었는데 이곳에 오니 칭찬을 많이 받는다며 흡족해했다. 아들 입장에서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현장에서 직접 만지고 몸을 쓰는 과정이 더 즐거웠는지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습하는 모습에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하자 신명 나는 듯 보였다.
힘써야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줘 정말 미더운 교육생이었다. 살아 있는 교육은 이런 게 아닐까.
그 외에 부부가 함께 참여한 가정도 있었으며, 귀농·귀촌을 했거나 앞으로 계획 중인 분들이 후일 육가공 자급을 위해서 또는 소득을 위한 창업을 위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참여했다.
둘째 날은, 부위별로 재워둔 양념 고기들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우선 햄이 될 양념 고기는 작업대에서 식용 셀로판지 위에 놓여 멍석 말듯 감쌌다. 그다음 양 끝에 남은 부분을 비틀어 한쪽을 먼저 실로 단단히 묶는다. 실은 50~60센티미터(㎝) 길이로 하고, 묶은 한쪽 꼭지에서 시작해 햄 덩어리 전체를 격자무늬 그물 모양으로 엮어나가듯이 단단히 묶었다. 이는 나중에 물이 스며들거나 고기가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식용 셀로판지는 물은 스며들지 못해도 연기는 스며든다고 하셨기에 나머지 한쪽 끝까지 잘 마무리 지어 훈연상자 안에 걸기 편하게 고리를 남겨뒀다.
베이컨은 따로 포장을 하지 않았다. 양념에 절이기가 끝나면 그 상태에서 고깃덩어리 끝 부분에 송곳 등으로 구멍을 내어 실을 꿰거나 그대로 고리에 걸어 훈연했다. 역시나 훈연상자 안에 걸기 편하게 고리를 남겨 두어야 한다. 시판되는 베이컨 제품은 훈연기간을 짧게 하느라 훈연의 맛이 나는 인공 분말을 뿌리는 것으로 처리하기도 한다고…. 베이컨은 돼지의 종류나 사육방법에 따라 색깔이나 두께가 다를 수 있다며 좋은 사료나 밀, 그 밖의 농사부산물을 사용하여 키운 돼지가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소시지는 햄이나 베이컨보다 손이 더 가는 작업이었다. 준비물로는 소시지용 고기를 잘게 가는 동력 민치기, 갈아 놓은 고기를 충전할 케이싱과 충전기가 따로 필요했다. 민치기와 충전기가 하나로 결합된 제품도 있다고 하니 가정에서 사용할 소형 기계를 하나 장만하는 게 필요하겠다. 소시지용 고기를 갈 때는 특이하게도 얼음을 함께 넣어 갈았는데, 이는 기계의 작동으로 가해진 열로 고기의 변성을 막기 위함과 육질의 탄성을 좋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소시지의 원료육을 충전하는 포장재를 케이싱(casing)이라고 하는데, 이 케이싱은 물은 통과하지 못하나 공기가 통하여 훈연할 때 연기가 잘 스며든다고 한다. 대개는 셀룰로스를 특수 가공하여 만든 통기성 케이싱을 쓰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동물 창자의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계셨다. 모두 한번쯤 실습을 해봐야 하기에 돌아가면서 케이싱에 원료육을 충전해봤다. 처음이다 보니 소시지 원료육을 케이싱에 충전하는 방법이 쉽지 않았다. 물론 이때도 수동충전기를 돌려준 젊은 학생(?)에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날 온 삭신이 쑤시지 않았을까….
이렇게 포장이 된 고기들을 훈연상자에 걸어 건조되는 동안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 생 벚나무를 찾으러 뒷산으로 갔다. 참나무를 이용해도 되지만, 벚나무가 가장 풍미가 좋다고 하셨다.
우리 눈에는 잎이 떨어진 겨울철이기에 벚나무와 참나무도 구분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지시 아래, 적당한 벚나무를 선택해 운반하기 좋게 자른 다음 슬슬 산에서 내려왔다. 물론 이 과정 역시 우리에겐 쉽지 않았다. 생나무가 그리 쉽게 넘어가겠는가…? 그리고 생벚나무는 상상을 초월하게 무거워 보였다. 나무토막들을 하나씩 들쳐 메고 내려오는 남성교육생들의 어깨가 듬직해 보였다. 연약(?)한 우리는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 하나씩 주워드는 수고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포장된 고기들이 건조되고 있는 훈연상자에 드디어 훈연에 쓰일 숯과 생벚나무 등이 투입되었다. 온도를 유지하고 계속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기 위해 미리 달궈진 숯 위로 쪼개어진 벚나무를 올리고 훈연상자 밖에 설치해놓은 온도계를 체크하면서 계속 나무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온도가 내려가면 잘 마른 나무를 넣어 온도를 높이고, 온도가 너무 높게 올라가면 생 벚나무를 넣어 온도를 낮춰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훈연은 섭씨 45~50도 온도에서 일정 시간(5시간~10시간)을 유지해준 뒤 숯을 뺀 상태로 밤새 건조해 두었다.
마지막 날 아침, 전날 뒤풀이로 기상 시간이 늦어졌다. 일찍 일어난 김준권 선생님은 부지런한(?) 교육생들을 앞세워 훈연된 햄과 소시지를 삶았다. 이미 불을 지펴 끓는 가마솥 물에 햄은 섭씨 70도 물 온도를 유지해 30분간, 소시지는 섭씨 70도 물 온도를 유지해 20분간 삶아 건져내서 찬물에 식혔다. 베이컨은 삶지 않아도 됐으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점점 베이컨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잘 훈연된 햄, 소시지, 베이컨을 아침 식사 때 시식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과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손수 만들었으니, 그 맛이 비교가 되겠는가.
헤어짐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다시 눈발이 조금씩 날렸다. 교육기간 동안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 어느새 눈발이 굵어져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바삐 하고 실습한 육가공품들을 품에 안고 서로 아쉬운 인사를 남기며 헤어졌다. 다시 만남을 서로 기약하며. 짧지 않은 2박 3일 교육 동안 알찬 육가공 교육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생명역동농법 강의를 열정적으로 해주신 김준권 선생님, 매일 매 끼니 새로운 반찬으로 우리의 입을 호강시켜주신 원혜덕 선생님과 마을 어머님에게도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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