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6일 경산 CU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살해사건. 지난 4월14일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대책위를 구성하고, 본사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CU본사는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첫째, 알바노동자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본사가 아니라 점포 점주이므로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 둘째, 앞으로 더 안전한 편의점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CU본사의 위와 같은 입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CU본사에 법적책임을 묻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편의점 가맹점주는 형식상 사업주이지만 실제는 가맹 본사에 종속되어 있기에 가맹점주는 사실상 CU본사에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으며, 편의점 노동환경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에 대한 책임은 바로 CU본사에 있다는 것이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와 유사한 편의점 프랜차이즈 계약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가맹점주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맹본부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신청하는 등 노동조합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둘째,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자신들이 지고 있는 위험마저 외주화하려는 기업이 자신들의 법적 책임도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CU편의점은 이 사건 이후 안전대책이라며 안심편의점 1호를 만들고, 경찰청과 협약을 체결하였다고 하나, 아직도 1호를 제외한 나머지 9999개 이상의 CU편의점은 알바노동자와 가맹점주가 절대 안심할 수 없는 노동환경을 유지하고 있고 언제 그 환경이 개선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CU본사가 법적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일어난 사고에 대한 가맹 본사의 책임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판례들이 축적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유의미하게 참고할 만한 사례 두 가지가 있다.
'30분 이내 배달보장'을 영업방침으로 내걸고 영업을 한 가맹 본부의 법적책임을 주장한 도미노피자 사건(Parker v. Domino’s Pizza, inc. 사건)에서 법원은 "프랜차이즈 계약서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보면 도미노사는 가맹점에 대하여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피해자에게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아울러 허술한 안전장치를 뚫고 점포에 침입한 강도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종업원이 가맹 본부의 법적 책임을 주장한 맥도날드 사건(Martin v. McDonald’s Corp. 사건)도 있었다. 법원은 가맹 본부가 안전 상태를 점검한 결과 강도 침입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안전장치의 개선을 권고하였다면 가맹점이 가맹 본부의 권고대로 개선하였는지를 확인할 의무가 발생하고 가맹 본부가 가맹점이 자신의 권고대로 안전장치를 개선하였는지를 확인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가맹 본부의 주의의무 위반이 존재하게 되어,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가맹 본부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는 CU본사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합리적 근거를 찾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① CU본사는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노동환경을 인식하고 있었는가? ② CU본사는 위험한 노동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는가?,③ CU본사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는가?
첫째, CU본사는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노동환경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신문기사 검색과 범죄통계 등을 확인할 수 있듯이 편의점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가맹 본부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한 여러 대책들을 발표하여 왔다. 따라서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노동환경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건 바로 가맹본부임을 CU본사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CU본사는 위험한 노동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점포의 인테리어는 가맹 본부가 직접 진행하며 심지어 범죄의 위협에서 도피할 수 없게 만든 계산대 등의 소유권마저 가맹 본부가 가지고 있음을 가맹계약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런 도피로가 없어 범죄에 대응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금의 계산대 구조 등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바로 CU본사이다.
셋째, CU본사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절대로 평가할 수 없다. CU본사는 이 사건 이후 셉테드(CPTED,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등을 통해 안심편의점 1호를 만들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안심편의점 1호’는 CU본사가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해 지금껏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안심편의점 1호’를 바라보며 감동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위험 상태를 방치한 CU본사에 분노해야 할 이유이다.
CU본사는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노동환경을 그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었고, 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안심편의점 1호’를 통해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하지 않았으므로 경산CU 편의점 알바노동자의 살해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은 바로 CU본사에게 있다는 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지금까지의 법적대응과 앞으로의 계획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준비하기 위해 관할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증거보전신청을 하였고, 법원의 신속한 증거보전결정(2017카기50393)으로 여러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6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시켜 CU본사의 인권침해사실 등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법적대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 먼저 편의점의 위험한 환경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가맹점주에게 전가하는 등 가맹계약서상 불공정한 조항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계획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 사건 유족을 대리하여 CU본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CU본사의 법적 책임을 묻는 우리의 일련의 활동이 이 사건 해결을 넘어 편의점 노동환경 개선,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도 모든 위험을 고스란히 안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모든 프랜차이즈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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