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옛 소련(러시아) 극동 지역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지 80년되는 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현재 '외국인' 신분으로 국내에 있다. 경기도 안산, 전라남도 광주 등에 주로 모여 산다. 이들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려 애쓰는 이들의 글을 싣는다.
저는 "원곡법률사무소"라는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서치원 변호사라고 합니다. 법률사무소 이름에서 짐작되듯 2012년에 안산시 원곡동에 개업을 했고 주로 외국인 상대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원곡동은 아마 내국인 대비 외국인 거주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만 4년간 정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중국, 일본,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미얀마, 필리핀,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몽골, 네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칠레, 미국, 카메룬, 수단, 나이지리아…. 이름도 어찌나 다양한지 분쳉량, 껨짜이, 훈린, 강바트, 이스마일, 욘대트, 마이클, 빈센트, 마리린, 차종산, 아지즈벡, 다니엘, 이헤지리카, 모니루짜만, 팔렉, 라흐만….
하지만 "고려인"은 아주 최근에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러시아어를 쓴다는 것도, 체류자격이 불안정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도, 저희 집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 모여 산다는 것도…. 안산에 온지 만 4년이 넘어서야 운명적으로 이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려인들은 외국인 사회에서도 변방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고려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을 통해서였습니다. 믿기 어려운 역사였습니다. 수십만이 강제이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절반정도가 죽어나갔다…. 이 점에 관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거짓 역사일리는 없어 보입니다. 그 아픈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국회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고려인 특별법입니다. 정식명칭은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으로 2013.3.23. 법률 제11690호로 공포되어 현재 시행 중입니다.
이 법에서 "고려인 동포"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기에 농업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자 및 '민법' 제777조에 따른 그 친족으로 현재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일제의 강제동원 및 항일 독립운동 등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 지역에 거주하게 된 50여만 명의 고려인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안정을 위하여 외교적 노력, 경제·문화·교육 등 지원사업 실시 등을 통해 지금까지 소홀하였던 고려인동포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 지면을 빌어 제대로 된 고려인 특별법을 만들자고 말하려 합니다. 현행법만으로는 이분들의 법적지위와 처우가 일반 외국인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체류 고려인에 한정하자면 오히려 외국인보다 못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 법체계는 고려인을 포함한 "동포"에 대한 일반법으로 "재외동포법(정식명칭: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있습니다. 재외동포법은 외국인에 비해 동포를 특별대우하는 특례규정을 두고 있는데, 재외동포체류자격(제3조), 부동산거래등(제11조), 금융거래(제12조), 외국환거래(제13조), 건강보험(제14조) 등입니다. 이렇게 재외동포법이 규율하는 사항을 제외한 나머지에 관하여는 일반 외국인과 똑같은 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해당법률로는 "출입국관리법",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재한외국인 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 지원법"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출입국관리법"이 가장 중요한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률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국내체류 고려인의 특징을 먼저 설명해야겠습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제가 살고 있는 선부3동 끝자락에는 '땟골'이란 곳이 있습니다. 국내체류 고려인들 중 상당수가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땟골 외에도 안산 한양대 앞, 전라도 광주 등이 고려인의 집단거주지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 정보공유가 어렵고, 열악한 일자리밖에 구할 수 없는 이들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주거비용이 낮은 곳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집단거주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지요. 고려인들은 강제이주로 수만리를 이동해야 했고 생존을 위해 현지(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말이 서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주로 러시아어를 구사합니다). 서툰 한국말로 인해 가장 열악한 일자리밖에 못 구하게 되지요(재중동포, 흔히 말하는 조선족과 이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고려인들의 입국목적 또한 다른 외국인들과 구별됩니다. 보통 외국인들은 노동이나 결혼을 위해 이주하고 체류합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단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살고 싶어 대한민국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류자체가 목적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현행법체계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고려인 특별법"은 대한민국 내에 있는 고려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외교부 소관법률이기도 하고 고려인의 정의에 국내체류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려인 특별법이 유명무실하다보니 결국 국내체류 고려인의 법적지위는 재외동포법과 출입국관리법 등에 의해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재외동포법"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먼저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재외동포법 시행령에서 동포의 범위를 '3세(부모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자)'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정부는 이 문제를 내년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재외동포의 범위를 3세가 아닌 '후손' 또는 '직계비속'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무국적자'는 동포가 아닙니다. 외국국적을 가진 동포만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재외동포에 해당하더라도 러시아를 제외한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은 재외동포비자(F-4)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지침으로 방문취업비자(H-2)만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방문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만25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전에 한국을 방문하려면 방문동거(F-1) 또는 유학(D-2,4)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방문동거비자는 정부지침으로 만19세에 이르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결국 만19세부터 만25세가 될 때까지는 90일마다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이들에게는 최대 90일까지만 체류가 가능한 단기방문비자(C-3)만 발급되기 때문입니다. 장학제도가 거의 없어 유학비자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하루하루 생계가 어렵다보니 아무리 자녀교육에 모든 걸 바치는 고려인들이라 하더라도 대학 진학이 쉽지 않습니다(한국어 문제도 있습니다).
재외동포비자를 받는 경우에도 상황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본래 재외동포비자는 장기체류를 전제로 취업제한을 두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전술한 방문취업비자보다 체류와 취업이 유리하도록 설계된 것이지요. 그런데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재외동포비자에 대해 '단순노무 취업제한'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고려인 특유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려인들은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단순노무 외에 취업이 어려워 사실상 불법취업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지요. 다른 외국인들은 너도나도 재외동포비자를 취득하고 싶어합니다만 고려인들은 오히려 재외동포비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단순노무에 대한 취업제한을 철폐할 경우 국내취업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단순노무 중에도 '말이 필요 없는(!)' 직역에 종사하고 있어 취업경쟁이 벌어질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장의 중론입니다(이와 관련된 노동부 용역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재외동포법이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적용되고 나머지 재외동포법 규정은 국내체류 고려인들에게 거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법적지위는 대부분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정해지고 있습니다(보다 정확하게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의해 체류자격과 법적지위가 규율됩니다).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국내체류 고려인들의 '자녀들에 대한 보육과 교육지원'은 전무합니다. 이 점은 재외동포비자 취득여부와도 무관합니다. 비전문취업(E-9)의 경우 현지에서 일정한 요건의 한국어교육을 수료하는 것이 입국조건이며 지속적인 국가의 관리감독으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다문화 가족의 경우(F-6) 한국어교육 방문서비스까지 지원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부조리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재외동포는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고려인들의 비자발적 이주로 인한 상흔은 치유와 배려의 기준점이 아닌 차별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어교육 외에도 의료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가족 중 누군가 다치더라도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불법취업으로 내몰린 이들이 자발적으로 산재보험 적용을 주장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적용은 가능하지만 강제퇴거 위험 때문에 신고를 꺼리게 됩니다), 의료보험은 체류 90일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취업문제와 맞물려 있는데 정규직으로 취업이 가능하다면 90일 이전이라도 직장가입이 가능하고 직장가입자가 있는 경우 피부양자로 가족을 등록하면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직장가입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역가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입국 후 90일이 되기 전에 누군가 다치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체류자체가 목적인 고려인들에게 재외동포비자가 유명무실하기에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남은 것은 '영주권(F-5)' 취득밖에 없습니다. 이쯤 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시지요. 국내체류 고려인 대부분이 기본적 의사소통조차 어렵다는 점 외에도 이들의 생활수준이 가구당 평균수입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영주권 취득은 연목구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물론 수만명의 고려인 중 이러한 기적을 이뤄낸 고려인들이 몇십명쯤은 있습니다. 대략 재중 동포의 몇백분의 1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고려인들의 정상적인 국내체류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고려인들은 대한민국을 찾는 것일까요?
고려인들은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이 땅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나라는 고려인을 모릅니다. 국내체류 고려인들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습니다.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체류자격제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동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이나 이스라엘의 예를 보더라도 적어도 몇십년간 논쟁이 지속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논제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분단이라는 우리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 과정은 더욱 지난할 것입니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군요. 하지만 마냥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당한지 올해로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까요(정신대(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보며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엉뚱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법이론 중에 약한 쇠사슬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체 쇠사슬은 가장 약한 부분만큼만 강하다는 것인데, 충돌되는 기본권 중 가장 약한 기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강한 기본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가장 '강한' 기본권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렇게 강한 기본권만을 우선한다면 전체 기본권은 수직 서열화 되고 약한 기본권은 헌법전에나 쓰여 있는 박제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역설적이지만 가장 약한 기본권을 우선시할 때 비로소 전체 기본권의 동반상승, 상향평준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역사는 누구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약한 쇠사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인특별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을 꺼내면 항상 ‘형평성’ 시비가 따라다닙니다. 고려인 동포만 특별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려인들이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불법취업에 내몰리지 않으며 기본적인 보육 등 최소한의 사회적 부조를 받는 것이 과연 전체 동포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가장 약한 쇠사슬’인 고려인들을 위해 제대로 된 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그동안 방치되어 온 ‘동포’의 법적지위를 바로잡는 대들보가 되지 않을까요?
현재까지 발의된 고려인 특별법은 국내체류 동포들을 위한 취업제한 문제, 건강보험 문제, 영주권 문제, 한국어교육과 보육지원 문제 등에 대한 개선안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국외 동포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충분하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소관부처는 선뜻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나아가 현재 국회의 의사진행 과정을 볼 때 법률안이 상정될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합니다.
소관부처의 입장도 중요하고 국회의 심의과정도 중요하며 정부의 의지도 중요합니다(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고려인문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권자인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고려인들을 진정 환대해 줄 마음만 있다면 다른 건 부차적일 뿐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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