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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성장과 분배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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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성장과 분배의 갈림길에서…

[이슈 인 시네마] '영화인조합' '영화산업노조' 탄생

성장이냐 분배냐. 한국영화계에서도 성장과 분배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11월 30일 '영화인조합'이 공식 출범한 데 이어 12월 15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출범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인조합은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촬영감독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미술감독조합 등 4개 단체가 연합한 영화인 직능단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를 모태로 영화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영화인조합은 이미 감독 60 여명, 시나리오작가 30여 명, 미술감독 30여 명 정도의 조합원을 확보한 상태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한국영화조감독협회, 조명부협회, 제작부협회, 촬영부협회, 기술협회 등에 속해 있는 2만 여 명의 영화노동자들의 가입을 촉구하고 있다. 매니저와 보조 연기자들도 노동조합에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영화계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왔다. 대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시장 크기와 제작 편수, 편당 제작비 규모도 가파르게 부풀려져 왔다. 때때로 거품 논란도 있었지만 주기적으로 흥행작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영화시장의 거품은 그럭저럭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영화계는 대규모 자본이 메이저 배급사나 메이저 제작사에 집중 투자되고 산업 재편이 이뤄지는 전형적인 개발경제 모델로 발전했다.

하지만 성장 위주의 경제 모델은 성장이 만들어내는 이윤이 성장 주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기 보다는 일부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기 쉽다. 한국영화계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 동안 초고속 성장으로 만들어진 이윤은 메이저 배급사나 제작사, 스타 시스템에 기댄 매니지먼트 회사에 집중돼 왔다.

***지루한 논쟁 끝에 협상의 주체를 세우다**

지난 몇 년 동안 지루하게 반복돼 왔던 스타 개런티 논쟁이나 영화 스태프들의 최저 생계비 문제, 영화인복지 문제, 시나리오나 감독의 저작권·연출권 보호 등은 이런 성장 위주의 모델에서 벗어나 분배 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 스타 개런티를 둘러싼 논쟁은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영화스태프 개런티 문제로 번지는 듯 하다가도 결국 시장 크기가 아직 작은 한국영화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그것은 한국영화 스태프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못한 탓이었다.

분배와 성장의 문제는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분배의 논리와 성장의 논리가 적절히 양보하는 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협상의 주체가 불분명한 탓에 끊임없는 문제 제기 속에서도 뾰족한 타협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침내 영화인조합과 영화산업노동조합이 결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영화인조합과 영화산업노동조합은 비슷한 시기에 결성됐지만 앞으로 서로 다소 상반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인조합은 할리우드의 직능단체인 '길드'를 모델로 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미국감독조합과 미국작가조합 등의 활동이 활성화 돼 있다. 이들 조합들은 영화 제작의 고용주에 해당하는 제작자나 투자자로부터 감독이나 작가의 경제적, 예술적 권익을 보호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보통 원안자부터 시나리오 각색자까지 복잡한 크래딧을 갖게 되는 것도 감독조합이나 작가조합이 정한 자체 기준 탓인 경우가 많다. 일부만 각색한 경우, 전부 각색한 경우, 원안을 제공한 경우 조합의 기준에 따라 영화 크래딧에 이름을 올릴 권리를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에서 조합의 힘은 막강하다. 조합은 제작자가 감독조합이나 작가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우선 조합의 가입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리우드를 모델로 한 영화인조합은 영화감독과 시나리오작가, 촬영감독 등 영화 촬영 현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고 할 수 있다.

11월 30일 결성된 한국 영화감독조합과 한국 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 촬영감독조합, 한국 미술감독조합은 주요 사업으로 저작권 문제와 임금제와 노동시간 같은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 문제를 우선 지목했다. 저작권 문제는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 촬영감독의 예술적 권익에 연관된 사안이다. 조감독 등 일선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은 각 스태프들의 수장을 맡고 있는 조합단체 구성원들이 자신들에게는 역시 피고용인이 되는 일선 스태프들의 권익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측면이 크다.

영화인조합은 기존에 충무로에 존재했던 한국영화감독협회나 촬영감독협회 등의 단체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면서 제작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익단체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노조 탄생**

그에 반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이익단체라기 보다는 영화 노동자들의 권익을 쟁취하겠다는 노조다. 이미 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 설립 요건이 충족된다는 확인을 받은 만큼 노동쟁의의 권리까지 부여받은 명실상부한 노동조합 역할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 노동조합은 1차 목표로 고용 안정과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1년에 적게는 100여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그마저도 영화 제작이 길어지거나 연기되면 지급이 늦춰지는 지금의 불리한 계약 관행을 고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제작자나 투자자, 심지어 영화조합을 결성한 감독이나 촬영감독, 미술감독의 이해 관계와도 충돌할 여지가 있다. 현재 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은 배우나 감독, 촬영감독의 개런티를 포함해 인건비로 지출된다. 이미 배우나 감독 같은 주요 스태프들의 개런티는 상당히 오른 상태다. 따라서 여기에 일선 스태프들의 개런티까지 올리겠다면 제작비가 부쩍 상승할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이 개별적으로 권익을 주장할 때와는 달리 노조가 설립된 상황에선 고용자에 해당하는 제작자나 투자자와 격한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도 높다. 현재 일선 스태프들은 통상 일괄적으로 감독이나 촬영감독, 미술감독과 계약을 맺고 각 감독들이 다시 제작자와 계약을 맺는 도제 시스템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 촬영팀이나 미술팀에 전체 개린터를 책정해주면 각 팀의 감독들이 다시 내부적으로 개런티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결국 개런티 인상 요구가 최종 고용주인 제작자와 1차 고용주인 감독들의 이해 관계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영화산업노동조합은 2만 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노조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12월 15일 조합 결성일까지 얼마만큼의 영화인들이 노조에 가입하느냐가 앞으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 일부에서는 현실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영화 스태프들의 처지를 고려할 때 회의적인 목소리도 없지 않다.

***성장과 분배의 갈등,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절할까?**

고도 성장의 끝에서 분배의 요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수 년 동안 충무로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해 왔지만 눈에 띄는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산업노동조합과 영화인조합이 결성되면서 이제 분배의 요구는 매우 구체화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두 조합의 이해 관계, 제작자나 투자자의 이해 관계, 영화산업의 성장 속도, 시장 크기까지 온갖 이해 득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곡절 끝에 이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영화계가 고도성장 끝에 분배의 극심한 홍역을 앓았던 한국 경제 모델을 좇게 될지, 아니면 보다 현명하게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춰갈 수 있을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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