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한창 풍경을 색칠하는 21일 아침. 나는 7년 만에 태백산맥 서편 해발 1천119m의 민둥산 마을을 찾았다.
민둥산 마을은 매면 이맘때면 억새숲 바람 소리가 태백산맥을 넘어온다. 나는 그 억새 숲에서 가을바람이 연주하는 가을 교향곡을 듣기 위해 태백산맥 서편 마을 민둥산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청량리 역을 출발한 새벽기차. 그 객차 한켠 등산복을 차려입은 여행객과 달리 청바지에 가벼운 가을 자켓을 걸치고 원주로 가는 중앙선과 충북 제천선을 경유해 동해 바다가 종착역인 기차에 올랐다.
어둠 속에 중앙선과 제천선이 지나는 도시의 불빛이 간간이 보일뿐 태백산맥 서편 마을들을 모두 정전되어 있었다.
가끔 기차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38번 4차선 국도의 가로등 아래 정선 카지노로 가는 낯선 자동차들이 간간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기차가 민둥산 역에 도착했을 땐 아직도 마을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새벽시간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아침을 여는 마을에 남아 있는 불빛은 손바닥 만한 마트이다. 그래도 고맙다. 그곳에서 나는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생수 한 병을 등산 가방에 넣고 증산 초등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 10여분 쯤 걸어서 38번 국도가 지나는 신호등 앞에서 별어곡으로 가는 기차가 지나가는 터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증산초등학교 언덕길을 올라갔다.
억새숲이 있는 민둥산 산행은 학교 앞 도로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아니면 이곳에서 421번 지방도를 따라 차를 타고 5분 정도 돌아가면 있는 발구덕으로 가는 마을에서 산행을 해도 된다. 하지만 자동차를 가져오지 못한 나는 발구덕 쪽으로 오르는 산행을 하기엔 너무 멀다.

나는 민둥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팻말 앞에서 학교를 잠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제재소를 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제재소가 문을 닫자 우리 집은 아침이면 꽁보리밥만 먹어야 했다.
그 때 아버지는 내게 사준 동화책과 세계 위인전 100권을 증산초등학교에 싼 값에 팔았다.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나 아버지는 그 책을 사 준 교장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라며 칭찬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그 책을 팔러 간다는 말에 아직 다 읽지 못한 전집이 몇 십 권 남아 엉엉 울면서 밤새워 남은 책들을 읽었다.
눈물이 책상 앞 호롱불아래 책장에 뚝뚝 떨어졌다. 그날 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내가 좋아하는 위인전 ‘링컨’을 다시 읽었다. 링컨은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갔지만 빌린 책을 몇 번식 읽는 독서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되어 힘없는 노예들을 해방시킨 링컨은 내가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그런 어릴 적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민둥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10여분 가량 시간이 소요되었을 때 갈림길이 나왔다. 경사도가 가파른 빠른 길과 경사도가 완만하지만 민둥산을 빙 돌아서 가는 경사도 가 완만한 길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나는 빠른 길 대신 느린 길을 택했다.
지나온 시간. 너무 빠른 시간의 속도에 길들여져 온 나는 빠름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산행은 상쾌하다. 내가 사는 수도권의 공기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루 종일 마셔도 행복할 것 같은 억새풀이 만든 공기. 그러나 산정상의 억새풀밭으로 돌아가는 길은 억새풀이 없다. 다람쥐들이 좋아하는 도토리가 떨어진 좁은 길 사이에 민둥산의 오랜 시간의 역사를 말해주는 참나무와 낙엽송들이 빼곡하다.

내가 천천히 걸어가는 사이 내 곁으로 라디오를 틀고 가는 등산객이 지나간다.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 노래 소리이다. TV와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탓인지 라디오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억새숲으로 가는 산행은 아직은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등산객이 많지 않다. 자동차를 가져 온 사람들은 내가 선택한 제1코스보다 볼거리가 많은 2코스를 선택한다. 발구덕으로 거쳐가는 2코스는 볼거리가 많다.
나는 어릴 적 걷던 발구덕 풍경이 조금은 아쉬웠다. 2코스인 발구덕쪽 산행은 시작부터 가파른 코스이다. 흙바닥을 뚫고 나온 돌은 거의 다 구두 광을 낸 것처럼 반들반들하다. 3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억새 숲으로 가는 산 중턱에 움푹 페인 평지가 프라이팬처럼 앉아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뜯으러 민둥산에 오를 때면 어머니와 나는 이곳에서 보자기에 싸온 감자볶음 도시락과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으며 쉬어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민둥산에 얽힌 ‘명마’의 전설을 이야기 해 주셨다. 잘 달리는 명마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명마가 민둥산 억새 숲을 달리다 울었다고 한다. 그 때 그 명마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사람들은 장차 큰 우환이 마을에 닥칠 거라는 생각에 그 말을 죽였다는 전설을 어린 내게 말씀해 주셨다.

민둥산은 석회암 지대에만 생기는 돌리네 현상으로 너른 억새 숲이 생겼다. 어머니는 발구덕 마을의 역사는 어쩌면 고려 때 이성계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곳까지 귀양 온 고려 사람들이 숨어 살기 위해 불을 지른 화전의 터였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억새숲 능선을 따라 한치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선평역이 있는 낙동에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정선 전(全)씨들이 많이 산다. 그들은 멸망한 고려 왕족인 왕(王)씨들의 씨를 말리려는 이성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왕(王)자에 들입(入)자를 붙여 성을 전(全)씨가 되어 살았다고 한다. 그런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발구덕으로 오르는 길을 오늘은 걷지 못해 아쉬웠다.
완만한 코스를 지나자 억새숲 정상까지 1천100m가 남았다는 팻말이 보인다. 한 시간을 걸어 이제 절반을 올라 쉬엄쉬엄 올라온 것이다.
나는 가져온 커피 한 잔을 마셨다.
10여 분을 쉰 나는 이제부터 가파른 길을 올라가기 위해 산행을 계속했다. 다행히 7년 전 질퍽거리던 산행과 흙길에는 자동차 폐타이어를 이용해 조각조각 붙여 놓아서 가파른 산행에 미끄럼을 방지해 너무 좋았다.

한 참을 쉬지 않고 걸어 올라갔을 때 억새숲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억새숲이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지은 황량한 언덕을 닮은 ‘폭풍의 언덕’ 같다.
억새숲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언덕길은 통나무 두 개씩을 가로로 연결해 길을 텄다. 그리고 기찻길 갱목을 닮은 네모진 통나무로 층층이 박은 계단은 9월의 하늘에 파아란 물감을 엷게 뿌려놓은 수채화 같은 하늘이다.
그 사이에 양떼 목장의 한얀 양떼를 닮은 구름 한 뭉치가 풍선처럼 억새풀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은빛 억새풀들이 만든 아침을 황홀하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햇빛과 바람에 몸을 흔들며 억새풀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속삭이는 ‘사각사각’ 소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이 아침이 너무 행복했다.
아침 억새풀은 내게 모든 자기들의 모든 집을 내어 주었다. 이 아침 태양을 굴리며 힘들게 오른 가파른 억새풀밭의 언덕. 그 언덕을 올라섰을 때 해발 1천119m를 알리는 민둥산 표지석과 많은 등산객들이 억새풀밭을 다녀가며 쌓아 놓은 돌탑이 나를 반겼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헉헉거리던 숨결 대신 나는 산아래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려진 너른 들판 같은 억새풀이 만든 장엄한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가을이 가지전에 무언가를 내려놓고 가고 싶은 억새숲. 파아란 하늘과 맞닿은 억새풀 숲 언덕. 나무로 만든 전망대 바닥에 놓인 빨간 우체통 아래. 그 억새풀 사이로 민둥산역 기찻길이 보인다.
나는 억새숲에서 나의 가족에게 동화 같은 가을 편지라고 몇 자 써서 우체통에 넣고 싶었다.
엽서 한 장이 그리운 시간.

나는 가져온 엽서 한 장에 펜을 꺼내 대학시절 썼던 나의 시를 떠올렸다.
지금은 민둥산역으로 역명이 바뀌었지만, 내가 어릴적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증산역’이라고 불렀다. 이곳 민둥산역이 있는 무릉리는 고려 충렬왕 17년에는 군소재지로 도원군의 읍터였다. 정선군 남면 면내에서는 가장 너른 평지를 갖고 있는 마을. 그런 민둥산역은 정선읍으로 가는 정선선과 5분이면 닿는 카지노의 도시 사북역으로 가는 태백선이 갈리는 중간 종점역이다.
내가 어릴 적 민둥산역 플랫폼은 동해바다가 가까운 태백 황지 여인들이 가져온 등푸른 고등어 꽁치 같은 생선과 민둥산 등에서 캐온 산나물이 물물교환 되던 장터 역활을 했다.
그때마다 울려 퍼지는 역무원의 호각소리. 그런가 하면 지금은 사라졌지만 플랫폼에 있던 홍익매점의 50원 하던 구수하고 따끈한 가락국수 맛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쓴 ‘민둥산역(*그 때는 ’증산역‘이라고 했음) 플랫폼에서’란 시를 다시 적는다.
민둥산역 플랫폼에서
정선선 기차를 기다리며
눈물 훔치는
새
손수건을 들어
닦아줘야 할 부위까지
상처를 짜내며 서서 온 나날
아침 공간
푸르름에 떨며
일어서려
입술 문 해가 된다.
단 하루라도 불러주지 않으면
잃어버렸던
가난한 어머니의 이름을
민둥산역 플랫폼은 기억하고 있었다.
생선 두어 마리에 나물 보자기를 들고
정선선 기차를 기다리는
어머니
장작굴뚝보다
더 안아야 따스할
플랫폼 전철주에 기대서서
몇 번이고 탔다가 버린 차표 한 장.
익숙해져가는
길을 걸으며
뚫어지도록 쨍쨍한
무거운 하늘만 안고
돌아왔다.
저녁이면
컴컴한 뒷방 빈방을 지키며
나를 위한 시를 쓴다
생각나는
축처진 엄니의 뒷모습과
집없이 떠도는
나의 시들을
벽 빨랫줄에 걸며
우리의 매달린 인생을 건너 볼 때
기차 문 밖,
철다리 건너 어둑한 집
누군가 전깃불을 켜고 있다.
-서정욱의 ‘푸른 고등어’ 시집에서 발췌한 ‘민둥산역 플랫폼에서’ 중에서
나는 내가 쓴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은빛 억새풀 숲 사이로 민둥산역 플랫폼의 기억을 노래하는 억새들의 新정선아리랑 같은 서걱이는 소리가 빨간 우체통 속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9월의 가을. 민둥산 억새숲 능선을 뛰어 다녔던 명마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다.

억새풀들과 함께 ‘민둥산’이라는 ‘자연의 집’에서 살았던 내가 보낸 오늘 하루.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민둥산 입구 국도변의 한 곤드레밥집에서 내온 뜨끈한 된장찌개에 밥을 썩썩 비며 입어 넣었다. 때늦은 밥은 정말 꿀맛이다.
알알이 깨무는 밥알을 씹으며, 오늘 나를 흔들어 깨운 민둥산 억새풀들의 서걱이는 소리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참나물 향기 속에서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잃어버렸던 망각들을 가을엽서 한 장에 적게 해준 억새풀들이었기에 더 감사했다.
그리고 식당을 나와 민둥산 역으로 갔다.
플랫폼에 서 있는 건 역무원과 나, 단 두 사람뿐이다. 한적한 평일 오후 플랫폼 시계는 나를 다시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시간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나는 내가 오늘 다시 써서 보낸 가을 엽서시 한 장을 억새풀밭으로 떨어지는 가을바람처럼 플랫폼에 내려놓으며,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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