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 학기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예전에 팔로잉 했었는데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네요. 오늘 저도 공부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명동 갔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던 날 밤 명동집회에 나갔다 집에 들어온 자정 무렵 내게 온 트위터 메시지다. '트윗하는 양심으론 부족하다.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하다'는 내 트윗을 보았던 모양이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나름 앞날이 보장된 듯한 학생, 속칭 운동권 학생도 아닌데 공부를 하다 명동으로 뛰어 나온 것이다. 사실 이날 집회참가자의 상당수는 대학생들이었다. 왜 이들이 나섰을까.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득권자들이 제 맘대로 날치기하고 저당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제1야당조차 맥없이 주저앉았거나 심지어 동조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더 멀리는 자신들의 청춘을 응원하는 이 없는 각자도생의 세상에 누군가 구원투수로 나서주기를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안철수 현상, 상식에 대한 열망
대선 선두주자의 지지율을 제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부상을 두고 '경제정의에 대한 열망',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세대의 반란', '수평적 리더십', '기업사회, 소비사회, 스펙문화, 영상미디어에 익숙해진 젊은 층의 정서 반영'이라는 평가가 있다. 맞는 말이지만 무언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2년 전 민변 월례회에 초빙되신 신영복 선생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강의가 끝날 무렵 '앞이 캄캄한 세상이 언제 바뀔까요'라고 누군가 묻자 선생께서는 '백마 탄 기사가 곧 나타날 것이다'고 점쟁이 같은 답변을 내놓으셨다. 안철수 원장이 그 백마 탄 기사란 말인가! 나로서는 알 재주가 없지만, 안철수 원장의 등장은 기성체제의 절대적 위기이자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다리는 국민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끼리끼리 작당하여 나라의 자산을 나눠먹고 탕진하는 정치인들! 미래 세대의 자산을 미리 앞당겨 소비하는 기득권자들! 그리고 그것이 시장이고, 법이라 설교하는 언론들! 이런 비상식에 대해 이제는 미래를 꿈꿀 기회조차 박탈당한 젊은이와 배제당한 다수의 절교선언이자, 새로운 지도자들에 대한 요구 같은 것이다.
통합하면 이긴다?
바야흐로 통합이 대세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통합전당대회를 연다 하고, 민노당과 국참당, 진보신당 탈당자들이 진보통합을 선언했다. 힘이 약한 정치세력들이 작은 차이를 드러내기보다는 큰 틀에서 힘을 합해 같이 가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통합이 바로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야권통합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의 유력후보가 5%의 지지율밖에 안되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진 이유를 알고 고치지 않는 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과실로 따먹기는 원하지만 정작 시민들의 좌절에 같이 아파하고 꿈을 함께 나누지 않는 한, 몇몇 새 얼굴을 끌어들여 세를 과시해도 감흥은 없다. 김진숙과 희망버스, 안철수와 청춘콘서트, 도가니의 분노, 5% 지지율 박원순의 당선, 공부하다 뛰쳐나온 학생의 분노. 이 흐름의 이유를 제대로 알고 변화하지 않는 한 골백번 통합해도 못 이긴다. 국민의 관심은 그들만의 정치공학이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과 정당을 찾는 데 있기 때문이다.
늙은 민주당
며칠 전 한 일간지는 민주당 서울시 당원 32만 중 20~30대 비율이 19.4%(20대 6.1%, 30대 13.3%)에 불과하여 서울시 유권자 비율(44.1%)에 훨씬 못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며 민주당을 '늙은 민주당'이라 지칭했다. 게다가 국회의원 평균 연령도 민주당이 57.7세로 한나라당(56.2세)보다 높다. 3-40대 국회의원 숫자도 한나라당이 32명인데 비해 민주당은 12명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은 원래 젊은 정당이었다. 경험의 부족을 패기와 참신함으로 넘어 왔고 한 때 유행한 '젊은 피'라는 말도 민주당의 몫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민주당 하면 젊음보다는 기득권의 느낌이 떠오르는 건 일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물론 당원이나 국회의원의 나이가 젊은 정당의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이 지형 상 야당에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당 원로급에 해당하는 철 지난 인사들까지 출마 움직임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지금의 민주당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주장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 10살은 젊어져야 한다!
사고, 행동, 문화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생물학적 나이의 중요성이 무시될 수 없다. 으레 보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만나는 통합만으로는 새로운 당이 될 수 없다. 실제 여론조사결과에서도 '손학규 문재인 중심의 야권통합신당'의 지지율이 22%로 기존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10월 31일 내일신문). 그러면서 2-30대의 84%가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하고 있다(특임장관실조사).
모처럼 시작된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가속화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문이 필요하지만 우선 생물학적으로 젊어져야 한다. 그리고 존재 자체로 공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의 포기가 전제조건이다. 민주당(또는 향후 통합될 신당)이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젊어지느냐가 변화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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