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여러모로 불안한 시작이다. 그들 스스로가 잘해서라기 보다 80%(?)는 상대방이 헛발질한 덕분이다. 보수쪽의 무슨 전향적 혁신같은 것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낡은 것이 죽지않고, 늘어놓는 레파토리도 별반 변함없이 다시 찾아 왔다고 하면 좀 심한가? 하지만 경쟁상대와 0.73%의 차이라 해도 국민의 다수가 선택한 건 분명하다.
이로써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삼인방의 권력사유화와 국정농단, 뜨거운 아스팔트 촛불항쟁의 힘으로 기회를 얻었던 문재인 중도자유주의 정부의 시간은 허망하게 퇴장하고 보수정부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분단체제하 중도와 보수라는 거대양당의 게임, 그들끼리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가운데 제법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판 진영정치 사이클은 이번 시간에도 이렇다할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대선 이전에 이미 문재인정부는 촛불을 꿀꺽 삼켜버렸다. 촛불이 꺼지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텅빈 메아리만 남아있는 씁쓸한 종말과 불안한 새 정치적 순환의 시작과 마주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
승자와 패자 모두 묵직한 숙제를 받았다. 그들은 대선이후 숙제를 잘하고 있나?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잘하려고 하나? 그들의 말을 또 믿어도 될까?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심판이 기다린다. 하지만 정치는 선거이상의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어느 때보다 신뢰, 믿음이 중요해졌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더 바라볼게 없다. 패자든, 승자든 숙제를, 약속을 여하히 잘 이행하느냐, 이를 통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다음도 기약할 수 있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이른바 '국민통합'의 길도 달라질게다. 그런데 '검찰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걸 보니 초장부터 뭔가 꼬인다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중도권력의 기득권화, 촛불삼킨 촛불정부
오늘날 세계 정치에서 중도권력의 기득권화 현상(토마 피케티는 '브라만화'라고 불렀다)은 널리 퍼져있다. 우익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것도 다분히 여기에 연유한다. 패권국으로 글리벌리즘을 주도해왔던 미국에서 반(反)세계화 자국우선주의에 인종차별과 혐오정치를 뒤섞은 깃발로 트럼프가 다수의 지지를 얻었던 것도 기득권 민주당이 밀고갔던 맹목적 세계화, 월가 및 대기업, 빅데크와 결탁한 신자유주의 기조가 낳은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 불로소득 문제앞에 속수무책이 되었던 결과다. 어떤 논자는 클린턴,부시,오바마의 경제 독트린은 낙수효과경제학을 신봉하는 네오리버럴이라는 점에서 사실 가족친화성을 가지며 트럼프는 반세계화 보호주의, 블루칼러 노동자 일자리 만들기, 재정건전성에서 벗어난 돈풀기로 이들과 결을 달리했다고 지적한다. 꽤 일리있는 말이다. 바이든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민주당세력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뉴딜의 재창조' 노선으로 불평등 및 불로소득문제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려 했고, 또 집권후 트럼프의 정치가 워낙 저질이고 무능했던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유령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에서 중도자유주의 성향의 문재인 민주당정부가 기득권화해 촛불개혁 기운이 꺼지고 그 반동으로 우익포퓰리즘 성향의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기에 이른 것은 기본선에서 미국민주당 세력이 트럼프에 권력을 넘겨주었던 것과 돌아가는 흐름이 많이 닮았다. 물론 차이도 있지만.
첫째, 문재인정부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만에 정권을 넘겨주는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판뉴딜을 내세우고 루즈벨트를 들먹이기도 했지만 정작 뉴딜형다수자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할지 고민은 없었다. 촛불연정은 일찍 기각되었고 말기에는 국민의 힘과 다투어 위성정당까지 만드는 꼼수를 서슴치 않았다. 둘째, 문재인 집권기를 통해 한국은 뚜렷하게 자산소유자 지배사회로 변모했다. 어슬픈 소득주도성장의 기조는 빠르게 꺾이고 불로소득성장 및 낙수효과성장으로 돌아갔다. 자산불평등이 심화되고 불로소득이 번창하는 사회, 대중들이 뿌리뽑혀 삶의 불안에 내몰리고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상황이 곧 우익포퓰리즘 창궐의 의 온상이다. 셋째, 불평등의 벽에 내로남불식 위선이 포개졌다. 불평등 문제보다 오히려 공정문제가 더 중심 화두로 부상하고 여론전에서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국민의 힘이 가져갔다. 넷째, 코로나 위기상황에서도 문재인정부는 기재부 주도의 재정 건전성 신화에 포획되었다. 대선 국면에서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문제는 오히려 윤석열 후보가 기선을 잡았다(취임후 100일내 50조투입).
다섯째, 남탓하거나 '다음에'라며 미루는 건 민주당의 큰 장기였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 버릇은 결코 남 주지 않고 있다.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확실히 실천하겠다며 당론으로 채택했던 '국민통합 정치개혁' 약속은 이번에도 '검수완박' 검찰개혁 우선에 밀려나 '다음에'로 가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피플없는 포퓰리즘 = 갈라치기 + 신자유주의 ?
윤석열은 'K-트럼프'라는 말을 듣는다. 혐오와 차별로 갈라치기,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반문명적으로' 고립화시키기, 그리고 감세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강행과 저항 대중에 법질서(규율) 세우기가 윤석열 정부 사회경제 정책의 핵심적 기조로 읽힌다. 주거 ⋅부동산의 경우 투기공화국을 가속화시킬 정책으로 임대차법 폐지·축소 및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활성화,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재건축·재개발 사업 규제완화, 분양가상한제 폐지, 그리고 세금 깎아주기 정책으로 부동산 공시가격 2020년 수준으로의 환원, 공정시장가액비율 95% 수준으로 동결, 1주택자 세율의 문재인정부 이전으로 인하, 장기보유자에 대해 연령 상관없이 매각 ⋅상속 시점까지 납부이연 허용, 세부담 증가 상한율의 인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배제 등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다. 청와대 직제도 슬림화된다. 청와대 정책실장직을 없애는 등 경제정책은 처음부터 기재부 주도로 끌고가려고 판짜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혐오로 갈라치기, 한층 가열찬 불로소득 성장과 대기업 주도 '낙수효과' 성장의 기조, '작은 정부' 기치를 가지고 새 정부의 핵심가치인 공정과 상식을 세우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 '새로운 국민의 나라'(!)가 어떻게 가능할까 사람들은 크게 불안해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국판 트럼프가 우익포퓰리즘으로서는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포퓰리즘이란 절차는 거추장스럽게 여기면서 '피플'에 다가가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원조 트럼프의 경우, 알고보면 우익포퓰리스트답게 대중에 실제로 어필하는 정책 지향을 갖고 있었다. 반세계화 자국시장 보호주의와 일자리를 잃은 블루칼러 노동자 대중에 조준된 일자리 창출하기, 위기 시대 재정건전성 족쇄를 벗어난 확장재정 정책 시행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도 우익포퓰리즘의 변화 움직임이 나타난다. 극우 성향 르펜이 높은 지지율을 얻었는데,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등 극우 이미지를 탈색하는 정책 및 친서민, 친노동자 정책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고 들린다. 르펜은 고속도로 국유화 공약을 내걸었다.
반면에 비슷한 성향의 우익포퓰리스트라지만 K-트럼프에는 원조 트럼프나 르펜에 있는 피플 친화적인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가 원조격인 신자유주의적 '줄푸세'는 있으나 '피플'이 없다. 중대한 결함이 아닐수 없다. 한마디로 잡탕이고 너무 올드하다. '피퓰이 없는 포퓰리즘'은 오늘날 새로운 대안우파가 되기에는 능력미달, 더 심하게 말하면 실격이다. 우리는 박근혜정부 시기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한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운운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MB정부도 후반기에 '중도실용'이라는 것을 꺼내들었었다. 문재인정부는 그래도 K-방역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기도 했었다. 윤석열정부는 무슨 수로 대중의 실제적 삶의 문제에서 그들의 호응을 얻겠다는 걸까? 이 정부가 보이는 이념적 기조의 정체는 뭘까?
새 정부 관료들의 실력은 ?
역대정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윤석열 정부를 이끌 경제 관료들의 실력이 문제가 된다. 새 정부의 내각 수장으로 한덕수, 최경호가 각각 총리와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실력과 전문성, '경륜'을 갖춘 인물이라 발탁되었다고 한다. 비서실장 후보자조차 이례적으로 정통 경제관료출신이다. 발탁 이유는 그럴싸해도 사실 올드한 사람들이다. 우선, 총리및 부총리는 론스타 사태 및 기타 다른 의혹에 연루되어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한덕수후보는 김앤장법류사무소에서 4년여간 18억원의 고문료를 받은 인물이다. 사실상 일급 로비스트로 일한 자가 왔다갔다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내건 새 정부 총리직을 수행하겠다는 꼴이다.
정책지향은 어떤가. 한덕수 후보는 "엄청난 확장재정에 위기의식을 느낀다"며 시종 재정건전성기조를 강조했다. 또 최저임금이 올라 기업에 부담을 줄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 그리고 추경호 후보는 "기업 모래주머니 규제를 벗겨주겠다"면서 규제 완화와 친기업 이윤 주도 성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조를 분명히했다. 그는 다주택자 규제 및 갭투자 규제, 분양가상한제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반대한 바 있다.
앞으로 윤석열정부와 결합한 관료들은 어떻게 실력을 발휘할까? 처음부터 확실히 기재부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며(비서실장까지 재정건전성 수호 합창을 한다), 규제완화를 저돌적으로 밀어부칠 듯한 기세의 인물들이 경제사령탑이 된 상황에서 윤석열이 약속한 50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어떤 결말을 볼지, 나아가 금리인상과 물가인상 파고가 밀려오는 전환기에 물가⋅ 집값⋅ 가계빛의 '3대 리스크'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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