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7년 만에 하청노동자가 또다시 산재 사망하자,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발전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3일 오후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고 김충현(50) 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경 태안화력발전소 부지 내 한전KPS 종합정비동 1층 공작기계실에서 선반 기계 설비에 끼여 사망했다. 2016년부터 태안화력에서 일한 김 씨는 태안화력의 2차 하청노동자였다. 태안화력은 정비 업무를 1차 하청인 한전KPS에 외주화했고, 한전KPS는 다시 경정 정비 업무를 다수 2차 하청업체들에 외주화했다. 김 씨는 소규모 하청업체 한국파워O&M 소속이다.
발전 비정규직 노조 등에 따르면 당시 김 씨가 하던 업무는 2인 1조 작업이었으나, 김 씨는 혼자 일했다. 한전KPS 사고 보고에 따르면, 협력회사의 현장 대리인이 당일 2시 30분경 선반 기계 위에 엎드려 있는 김 씨를 처음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대책위는 이런 상황에 대해 "고인의 죽음을 알린 건 고인의 비명도, 동료의 다급한 외침도 아닌 기계음이었다"며 "사람의 소리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외쳤던 '일하다 죽지 않고 싶다', '안전 인력 충원하라', '2인 1조 근무 보장하라', '발전소 폐쇄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라'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다단계 외주화 구조를 두고 "한전KPS는 태안화력으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다시 소규모 하청업체에 위탁했다"며 "돈에 눈이 먼 사장들은 공공기관이 던져준 먹이를 뜯어 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4명, 10명짜리 하청업체들이 난립했고, 노동자들은 하청의 하청, 비정규직의 비정규직으로, 쪼개지고 찢어졌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이어 "원청인 태안화력은 발전소가 폐쇄되니 필요한 인력이라도 충원하지 말라고 (하청에) 지시했다"며 "원청이 던져준 이윤이 줄어들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이 가장 먼저 위협받았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고인이 돌아가신 6월 2일은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외쳤던 마지막 날"이라며 "그들이 얻은 이름과 권력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돼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세상이 반복된다면, 노동자의 요구와 주장이 반복된다면, 바뀐 것은 대통령의 이름과 얼굴일 뿐"이라며 "새로운 대통령이 처음으로 들어갈 곳은 용산도 청와대도 아닌 이곳 태안화력발전소"라고 외쳤다.
대책위는 산재 사망 재발 방지 대책으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현장 인력 확충 및 안전 대책 △발전소 폐쇄 관련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산재 보고서에 '임의로 일하던 중' 강조한 원청
한편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실에 제출한 사고 보고 자료를 제출하며 김 씨가 '주변을 임의 정리하던 중' 설비에 끼였다고 적었다. 1차 하청업체 한전KPS가 2일 작성한 사고보고서에는 '파급 피해·영향 없음 : 발전설비와 관련 없는 공작기계에서 사고 발생' 등의 보고 문구와 언론보도 동향 등이 적혔다.
대책위는 이에 "노동자의 죽음 앞에 애도와 책임없이, 단지 발전기의 가동 여부와 중단없는 전기 생산에만 골몰하는 반인간적인 행태"라며 "발전소 생산과 이윤 생산에 차질이 없다면, 노동자의 목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초의 사고 보고에서 정확한 사고 조사를 위해 노력하는 대신 언론보도 동향을 먼저 챙기는 작태는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서부발전,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또 아까운 생명을 잡아먹었습니까?"라고 먼저 물었다. 이어 "사고가 발생할 때 시급히 기계를 멈출 동료가 필요한데, 2인 1조는 왜 아직도 지켜지지 않는 겁니까?"라며 "서부발전은 발전소가 아직 폐쇄되기도 전에 미리 인원을 감축해 일 양을 가중해 놓고서, 도대체 사망 사고는 어떻게 막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사고를 덮기 위해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라 거짓말부터 할 겁니까?"라고도 물었다.
김 대표는 대선 후보들을 향해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강화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길 촉구한다"며 "동료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되길 바라며 유족이 바라는 진상규명이 되고 책임자가 엄중 처벌될 때까지 김용균재단도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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