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 사망한 고 김충현(50) 씨의 빈소를 방문하고 "국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7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동료들은 유족·대책위가 참여하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다단계 하청 구조 근절을 요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오후 12시 충남 태안의료원 상례원 2층 1분향실을 방문해 김 씨를 조문했다. 우 의장은 1시간가량 빈소에 머물며 유족 및 김 씨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등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우 의장은 "정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다"며 "국회의 소임은 무엇보다 법과 제도를 통해서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고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인데, 이번에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에서 발생했던 고 김용균 씨의 산재 사망을 두고 우 의장은 "그때 국회의원으로서, 또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이 일(산재 사망)을 어떻게든지 끝장을 내야 된다, 제대로 된 안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임했었다"며 "그래서 사회적 합의도 이루고 그것에 따라서 특별조사위원회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노력이 있었다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그때의 과정과 이후 진행된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7년 전 끝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 우 의장은 "국회가 이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도 이제 막 구성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추어지는 대로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룰 것"이라며 "여러분들과 함께 진상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도록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정치인들, 입으로만 약속 말고 진짜 책임져라"
"진상 규명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 확실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상 규명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하청에 하청을 주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그 안에 정말 더 이상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인은 정말 묵묵히 일해 왔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오신 분입니다."
우 의장의 발언 후 이어진 자리에서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동료들 모두 심정이 참담하고 비통하며 슬픔을 억누르고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지회장은 김충현 씨와 같은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한 동료다. 그는 "(고인이) 지금 지켜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라며 "누가 되지 않도록, 국회가 있어 줄 것이라는 걸 믿고 정말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석탄화력발전소의 보이지 않는 곳을 들여다봐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먼저 감사의 인사부터 드린다"면서도 "그런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가 총리 훈령으로 만들어졌고 거기서 의장님도 많은 역할을 해 주셨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권고안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고 또다시 와서 약속하고 이후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실 정치인으로서 '립 서비스' 정도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 위원장은 이어 "대통령의 답변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의장이 알려주면 좋겠다"며 "유족이 포함된 대책위가 참여하는 당정 협의 기구가 구성될 수 있도록, 의장께서 이 자리가 끝나기 전에 누구랑 얘기해야 할지 책임자를 알려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실까지 행진한 후, 이들을 만나러 나온 강훈식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실에 요구서를 전달한 바 있다.
발전소 하청노동자인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연대 집행위원장도 "그때(김용균 사망 후) 의장님이 다단계 하청업체, 퇴직자들이 와서 능력도 되지 않는 업체를 차리고 하는 구조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김용균 특조위가 권고까지 했으나 지금까지 전혀 이행되지 않았고, 이 문제가 위험을 넘어 이제 죽음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재명 정부도 민생을 가장 우선으로 얘기하는데, 노동 현장에서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진짜 민생이다"라며 "그 길에 의장님이 함께 책임을 다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종교계에서 참석한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산재 사망을 뿌리 뽑는 게 지금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재명 정부의 자세인 것 같다"라며 다단계 하청 구조의 근절을 요구했다.
양 집행위원장은 "한전 그만둔 간부들에게 하청업체 하나씩 떼주고, 노동자는 거기에 5명, 10명, 20명 이렇게 뿔뿔이 계약을 시키고, 그냥 '고개 쳐들면'(자기 주장하면) 그냥 계약 안 해버리는, 아직 여전히 그 비정규직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며 "그 속에서 김충현 노동자도 돌아가신 거다"라고 강조했다.
조문을 마친 우 의장은 사고가 난 태안화력 부지 내 한전KPS 종합정비동 기계공작실로 이동했다. 현장엔 노동부 대전지청장 및 한전KPS 관계자,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과 조합원 등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원 5명이 동행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현장에서 사측 관계자는 '무슨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는지 모른다'거나 '비교적 안전한 작업이었다', '1인이 할 수 있는 정밀작업이었다' 등의 설명을 내놨다. 노동부 대전지청장은 '사고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우 의장에게 말했다. 이에 대책위원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고, 우 의장도 "이해할 수 없다"라 답하며 질책했다.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는 8일 '국회의장 방문에 대한 입장' 성명을 내 "우원식 의장의 말이 정치인의 위로가 아니라 권한을 가진 정치인의 실질적인 대책이 되기를 바란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책임’이며, ‘조문’이 아니라 ‘논의 테이블’"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국회와 정부에 단호히 요구한다. 실천하라. 책임져라.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제도와 법으로 증명하라"면서 "(우 의장의) 말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구체적인 법과 구조의 변화로 이어지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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