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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이 '좋아서 하는 일'로 포장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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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이 '좋아서 하는 일'로 포장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한국어교원, 교단 너머 이야기] ① 언어를 가르치며 노동을 배우다

지난 5월 스승의날을 맞아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을 접하며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 그리고 애환이 담겼다. 세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교실 문을 열자 낯선 냄새가 훅 밀려온다. 방글라데시와 네팔, 미얀마, 아프리카 나라들까지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눈빛이 일제히 나를 응시한다. 어린 한국 여성이 한국어 선생님이라며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의 한 강의실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정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도 하기도 전에 낯선 시선, 낯선 언어에 압도되어 첫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수업 시간 내내 등에 땀이 났던 것만 기억할 뿐이다.

처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 불이 꺼지면, 다시 현실 속의 '노동자'로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나는 낯선 언어를 가르치는 '봉사자'였다. 그 때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강사로 급여를 받고 일하는 한국어 강사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모두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무급으로 존재할 때였다. 수업을 할수록 나의 부족한 자질은 한계를 느꼈고 경험과 능력을 더 갖추어 한국어 강사라는 이름으로 생계도 유지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을 로망처럼 생각한다. 외국인과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고, 세계를 무대로 일한다고. 나 또한 한때 그런 이상을 품었다.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에서 한국어교육 봉사자로 활동하며 한국어 강사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로 향했다. 동남아시아의 한 국립대학 한국어 학과에서 코이카봉사단원으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학교의 행정적 무관심 속에서 많은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외국의 대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현지 학생들은 한국어를 통해 더 나은 일자리를 얻고 한국으로 취업하길 원했다. 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현지의 열악한 환경도 문화적 어려움도 모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봉사단원의 신분이었지만 나 또한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심경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봉사단원은 생활비를 받는 또 하나의 봉사자일 뿐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의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장기 고용의 안정성도 없었다. 결국 2년의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직업을 구해야 했다. 그 때 나의 열망은 내가 만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두 곳의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했다. 특히 주말마다 한국어 능력 시험을 준비하는 외국인 노동자반 수업을 했던 기억은 더욱 특별하다. 외국인 노동자 수업은 외국인 이주여성 수업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은 더 절박하다. 체류 자격이 불안정하기때문에 더 나은 삶과 장기 체류를 꿈꾸며 언어를 붙잡는다. 공장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앉는 그들의 자세는 간절함 그 자체다.

하지만 그 간절함조차 현실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야근이 생기면 수업을 빠지고, 이직이나 해고로 인해 더 이상 수업에 나오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시간을 내어 오던 학생이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연락도 할 수 없다. 전화번호가 바뀌고, 숙소가 바뀌고,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어 능력 시험 합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말 수업, 평일 늦은 시간의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절박함 때문에라도 나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의 절박함이 나의 절박함을 이기는 순간이다.

"선생님, 시험 꼭 붙고 싶어요. 아니면 돌아가야 해요."

그 말은 해외에서 만난 학생들의 목소리와 겹쳐진다. 언어 하나로 인생의 방향이 갈리는 이 구조는, 어디서든 같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닫으려던 참에 한 학생이 망설이다가 다가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학생이었다. 까만 손에 담긴 봉지 안에는 신문지로 둘둘 말은 손수 기른 초록의 공심채가 싱싱하게 담겨 있었다.

"선생님,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는 채소예요. 지난번 수업에 선생님이 공심채를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제가 농장에서 조금 따왔어요. 선생님 드리고 싶어서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힘들 텐데,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는 서투른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그 익숙한 채소에 담아 건넸고, 나는 그 공심채를 그날 저녁 바로 볶아 먹으며 오래도록 그 마음을 곱씹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보다, 그들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두 세계 사이 어딘가에 있다. 나는 지속적으로 해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남기 위해 애썼고, 그 후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을 가르치며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다. 계약은 대개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다. 수업이 없어지면 계약도 끝이다. 고정 강의가 보장되지 않아 한 달에 받는 강사료는 매번 달라진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동안엔 수업이 사라지고, 그럼 소득도 사라진다. 병가나 휴가는 없다. 경력은 띄엄띄엄 쌓이고, 공식적인 이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에 더해 한국어 강사의 진입 장벽은 더욱 낮아져 은퇴한 사람들이 다수 지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서 저 임금 비정규직의 구조는 견고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엔 너무 불안정한 구조다. 결국 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오래 머무르기 힘든 아이러니가 계속된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노동자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나, 결국 노동과 권리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존재들이다.

나는 오랜 시간, 강사로 채용되기 전까지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해외 한국어 학당에서, 지역 다문화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또 지역의 작은 NGO 단체에서 말이다. 주 2회 혹은 3회, 무급으로 수업하며 내 전문성과 사명감을 스스로 증명하려 애썼다. 봉사는 내게 기회가 되었지만, 동시에 '공짜 노동'이 당연시되는 현실을 알게 한 경험이기도 했다. "어차피 자원봉사잖아요"라는 말 뒤에 숨은, 교육 노동의 비가시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단지 한국어 문법과 어휘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국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이고, 미래로 가는 징검다리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징검다리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 걷고 있다. 불안정한 계약, 낮은 강사료, 누적되지 않는 경력, 인정받지 못하는 전문성 속에서 가르침은 때로 무기력함과 맞닿아 있다.

학생 하나가 수업 끝에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덕분에 한국어가 좋아졌어요. 포기 안 하게 됐어요."

그 짧은 말에 내가 견뎌온 시간이 의미를 얻는다. 동시에, 더 이상 이 감동만으로 노동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도 함께 떠오른다.

나는 가르친다. 동시에 배우고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그리고 언젠가는, 이 노동이 '좋아서 하는 일'로만 포장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 2020년 10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어 교원의 사회적 지위 보장·처우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어교원 조합원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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