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여성 수줍어, 모르는 척 좋아서 성관계" 주장한 교수, 결국…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여성 수줍어, 모르는 척 좋아서 성관계" 주장한 교수, 결국…

성공회대 겸임교수, 학생 공개사과 요구 거절하다 학과장 나서자 사직키로

공익변호사와 아동권리옹호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수가 강단에서 한국 여성들을 폄하하고 비동의강간죄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해당 교수는 학생들의 공개 사과 요구를 거절하다가 학과장이 나서자 결국 사과문을 올리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성공회대학교에서 법학 교양수업을 맡아 왔던 이모 겸임교수는 지난 10일 법 관련 수업에서 무고와 한국 여성의 특성 등을 언급하며 비동의강간죄를 비판했다. 이 겸임교수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울시 법률지원담당관(공익변호사), 양주시 고문변호사(아동권리옹호관), 법무부 위촉 마을변호사 등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겸임교수는 "미국 여성들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 여성들은 수줍다. 모텔이라서 아무리 남자친구여도 성관계를 할 땐 창피한 거다", "거기서 '동의, 동의' 이런 사람이 어딨느냐. 모르는 척 같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그러면 그게 진짜 '노 민스 노'(no meas no, 상대가 거부한 성관계는 성폭력), 거절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문제점이 있어서 오히려 부동의성교죄(비동의강간죄)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있다"며 해당 이유들로 국내에서 비동의강간죄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서 범죄 성립 또는 처벌 여부가 달라진다. 나아가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며 "무고를 통한 금전적 이익이나 협박을 하는 데 악용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성공회대 이모 겸임교수가 학내 포털시스템에 게시한 사과문에 포함한 강의 발언 내용. ⓒ독자 제공

이 겸임교수의 발언은 여성의 거절이 실제 거절이 아니거나 성폭력 피해를 꾸며내 허위로 고소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13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성폭력 무고는 다른 유형의 무고보다 비율이 낮고 법률적으로 인정받기도 굉장히 어렵다"며 "성폭력 피해를 반복해 증언해야 하고 무고를 의심받는 현실 속에서 그런 방식을 택할 이유가 어딨느냐"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한국 여자들이 수줍어서 거절 못 한다는 발언은 강간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논리이자 통념"이라며 "여자들의 의사결정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왜 폄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적 발언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책임 있게 사과할 사안"이라고 질타했다.

강의를 들은 일부 수강생들도 이 겸임교수의 발언이 여성혐오성 발언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남자를 적극적, 여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시선은 고정관념", "여성들이 모르는 척 좋아서 한다는 표현은 성희롱" 등의 비판과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 취급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 등의 우려가 나왔다.

이에 수강생 A 씨는 이 겸임교수에게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다음 수업부터 여성혐오 또는 성희롱 발언을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 겸임교수는 그러나 이같은 문제 제기를 일부 의견이라며 일축했다. 그는 A 씨에게 "강의에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면 사과한다"면서도 "다른 학생들의 불만이나 지적이 없으므로 전체 수강생에 대한 사과는 생략하겠다"고 회신했다.

A 씨는 거듭 "문제의식을 가진 학우들이 여럿 있으나 아직 성적처리 기간이 끝나지 않아 불이익을 걱정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차 공개 사과를 요구했으나 이 겸임교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3일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부착된 대자보ⓒ성공회대 인권위원회

A 씨는 결국 지난 12일 학내 건물에 대자보를 부착하고 이 겸임교수를 '강단 위의 이준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노골적인 발언으로 성희롱을 했으면서 사과할 의사도 내비치지 않는 모습이 (이준석과) 닮았다"며 "성공회대 교수이자 법조인으로서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 대자보 주변엔 A 씨의 비판과 요구에 공감하는 내용이 담긴 쪽지들이 부착됐다. 학내에서 논란이 되자, 성공회대 인권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이 겸임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다만 "사례를 든 것뿐인데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 "학생들이 교수를 담그려 한다" 등 이 겸임교수를 옹호하는 일부 목소리도 있었다.

대자보 부착 하루 만에 이 겸임교수에 대한 규탄 여론이 거세지자, 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학장까지 나서 이 겸임교수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이 겸임교수는 13일 학내 포털시스템에 "강의에서 부적절한 예를 언급한 점에 대해 수강생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강의를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겸임교수는 게시물을 통해 "젠더권력 또는 사회적 위계질서 안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측면보다는 가해자의 보호 관점에 치우친 점, 성인지감수성은 남녀 구분 없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굳이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든 것은 적절치 않았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

이어 "부동의성교죄가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상대방의 거부를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동의로 해석해 성관계로 나아갈 경우 강간죄로 의율될 수 있으니 거부 의사표시를 이해하고 자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강의를 하고자 했던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아래와 같이 예를 든 것은 적절치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 겸임교수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비동의강간죄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거부했음에도 성관계를 하면 강간죄로 의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며 "여성의 거절을 진짜 거절 의사로 받아들여서 그 이상으로 나가지 않고 자제해야 한다는 게 강의의 요지였다"고 해명했다.

A 씨의 공개 사과 요구를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공개 사과 과정에서 해당 발언을 다시 언급하면 문제 삼지 않았던 학생들이 불쾌할 수도 있고, 반대 의견을 가진 학생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며 "또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해당 발언이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위라고 단정짓게 되는, 의식을 강요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학생에게 양해를 구했던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3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상담한 강간 피해자 240명 가운데 피해 경위 확인이 가능한 218명의 상담일지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 70.2%(153명) 폭행·협박 없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상담소는 "현행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 요건으로 하고 있지만 폭행·협박을 인정받기 어려운 피해 상담이 대다수"라며 "피해자 보호와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없음'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6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의 없이 발생한 강간 피해 218건 중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 또는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등의 폭행·협박은 28건(12.8%)에 불과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