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일 동안 고공농성을 이어 온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김형수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드디어 땅으로 내려왔다.
19일 2024년 단체교섭이 타결됨에 따라 김 지회장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고공농성 중이던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 앞 CCTV 첨탑에서 스카이차를 타고 내려왔다.
CCTV 철탑 주변은 경찰과 조합원, 연대 시민들로 오후 2시 전부터 붐볐다. 철탑 바로 아래엔 미연의 추락 사고에 대비한 119소방대의 에어매트도 설치됐다.
경찰은 김형수 지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즉각 집행할 예정이라 밝혀 왔으나, 이날 김 지회장이 내려오기 직전 영장을 바로 집행하지 않기로 금속노조 측과 합의했다.


김 지회장이 조합원의 부축을 받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하는 조합원과 시민들도 보였다.
다만 김 지회장의 발언은 그의 발언 장소를 두고 벌어진 경찰과 노조의 실랑이로 인해 20여 분 지연됐다. 그는 경찰이 설치한 철제 바리케이드 뒤에서 발언할 예정이었으나, 연대 시민들과 조합원 등이 "바리케이드를 치워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경찰은 바리케이드를 5미터(m)가량 접었다.
재개된 기자회견에서 김 지회장은 "2024년 4월 19일 하청노동자 총궐기로 시작된 1년 2개월간의 임단협 투쟁이 마무리됐다"며 "그러나 교섭이 마무리될 때까지 원청은 코빼기도, 눈에도 안 띄었다"고 말했다. 이어 "2025년 교섭에선 반드시 원청 한화오션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고 말겠다"며 "이를 위해선 더 넓은 연대와 결단이 필요하며, 그에 대한 답으로 노조법 2·3조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김 지회장은 "노조법 2·3조 개정을 가로막던 윤석열은 이제 사라졌다. 노조법 2·3조 개정을 막을 사람이 이젠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몸을 추스르고 원청을 상대로 한 2025년 단체 교섭과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연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 김 지회장은 "97일 동안 일용할 양식과 안녕과 승리를 빌어주신 정당,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거통고 하청지회 투쟁의 결과는 후원해 주신 많은 시민과 동지들, 상경투쟁단, 한화오션 앞에서 추운 밤을 뜬눈으로 함께 지새운 동지들, 조선소라는 이름으로 연대투쟁을 만들고 광장에서 거통고 투쟁과 윤석열 파면을 함께 외친 동지들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말벌 동지'를 언급하면서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흘린 김 지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고공농성장을 지켰던 조합원 동지들, 정말 고생많으셨다"며 "정말 고맙다"고 울먹이며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김 지회장은 "528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한국옵티칼 박정혜 동지, 126일째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에게 먼저 내려와서 미안하다"며 "두 동지가 땅을 밟을 때까지 거통고 하청지회도 끝까지 연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통고 조합원들의 2022년 그 뼈저린 투쟁과 아픔을 잊지 않는다"며 "이 땅의 비정규직, 이 땅의 차별과 혐오가 사라질 때까지, 거통고 지회, 금속노조, 민주노총의 자랑스러운 조합원으로서, 이 땅의 노동자로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크게 소리쳤다.
김 지회장은 발언을 마친 뒤 조합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녹색병원으로 후송됐다.


"국민주권 정부는 모든 노동자 노동 3권 보장하라"
거통고사내하청지회는 이날 단체교섭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투표를 거쳐 하청업체인 사측과 단체교섭 조인식을 진행했다. 노사는 상여금 50% 인상, 상용노동자 확대, 조합원 취업 방해 금지, 산재 예방 활동 등을 합의했다. 이로써 2016년 이후 전액 삭감됐던 상여금 550% 중, 2022년과 2025년 투쟁으로 100%가 복구됐다.
연대 발언을 한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노조법 개정, 정리해고법 철폐, 사회대개혁 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치권과 이재명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주권자 시민이 고공에서 살겠다고, 고용과 생존을 보장해달라고 처절히 투쟁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철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장은 "지금 조선업이 초호황이라고 언론은 연일 떠들어대고, 미국발 조선 호황까지 겹쳐 그야말로 막대한 돈을 쓸어 담고 있다"며 "80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한화오션에서 빼앗긴 상여금 50%와 임금을 손에 쥐지 못한다는 게 이 투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엔 진보당 윤종오·정혜경·전종덕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주영·민병덕·허성무·박해철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허 의원은 한화오션이 2022년 파업을 했던 하청지회를 상대로 건 475억 원가량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이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전했다.
사회를 맡은 이원재 금속노조 조직실장은 이들에게 "노조법 2·3조 개정 등 약속한 바를 꼭 지켜달라"며 "지금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세종호텔 문제 해결도 나서서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금속노조와 거통고하청지회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 거듭 물었다. 이들은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에서의 노조법 개정 내용이 내란수괴 윤석열 정부에서의 노조법 개정과 같아서는 안 된다"며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자 정의를 확대해 건설노동자, 화물노동자, 특수고용직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광장의 요구는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이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임금과 복지와 고용의 차별에서 일상의 차별에 이르기까지 매일 지긋지긋한 차별을 뼛속 깊이 경험하며 일한다"며 "나중은 없다. 정부와 국회는 더는 주저하거나 유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라"라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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