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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집에서도 존중받기 위해 저항하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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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감집에서도 존중받기 위해 저항하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다

[기고] 노동탄압과 성희롱에 맞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머슴을 하더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를 말할 때 자주 쓰이는 속담이다. 김경숙 씨는 대기업 기아자동차에 다니니, 그중에서도 노동자가 1만2000여 명이 넘어 기아자동차에서도 제일 큰 공장인 화성공장에 다니니 이런 말에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남들이 부러워할 수도 있는 대감집에서 경숙 씨는 두 달 넘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 탄압, 여성 청소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성추행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대감은 물론이고, 자기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많은 노동자는 관심을 주지 않지만, 경숙씨는 꿋꿋하다.

▲노동탄압과 성희롱에 맞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온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김경숙 씨는 기아차 화성공장 '보광'이라는 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다. 2013년 '청윤'이라는 청소 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는데 그동안 업체가 몇 번 바뀌었다. 2014년 부당해고 된 후 소송과 투쟁을 거쳐 6개월 후 복직됐다.

복직 후 경숙 씨는 가장 먼저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과 샤워장, 화장실을 마련해 달라고 원청과 하청에 요구했다. 그 넓은 현장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경숙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2013년에 입사했는데 당시에는 휴게실이 없어 남자 화장실 한 칸에서 박스를 깔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고단한 몸을 쉬게 했습니다. 계단 밑 통풍도 안 되는 좁고 어두운 곳이지만 문이라도 달아 내어주면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현실이었습니다. 2015년 용역업체의 계약직에서 용역업체의 정규직이 된 후 제일 먼저 청소 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을 만들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기아자동차의 매출이 50조다, 뭐다 그랬습니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여성 화장실이 조금 더 생기긴 했다. 이후 경숙 씨는 조용히 살았다. 앞장서는 사람에 대한 수군거림, 불편한 시선, 험담을 견딜 내공이 없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기분이었고, 힘들어진 집안 사정 때문에,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벅찼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한창이었을 때였지만, 경숙 씨는 옆으로 물러나 있었다. 법원은 식당·청소·경비 노동자는 불법파견이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비정규직지회는 이것을 바꿀 힘이 없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온화

일상적인 성희롱·성추행과 부당한 업무 지시

정규직화에서 제외되었다고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계속 정규직화를 바라서가 아니라, 이 현장이 소중한 삶의 터전이고 밥줄이기 때문이다. 경숙 씨는 비정규직으로 남은 600여 명 대부분 그런 생각일 거라 했다.

묵묵히 참고 일만 했다. 운동하는 원청 직원들을 위해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주기도 했다. 자존심에 금이 갔지만, 동료 언니는 "네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이 바닥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잘 보여야 한다"라고 했고, 괜히 분란을 만들까 봐 참았다. 동료 언니가 그만두고 나서야 그 일을 중단했는데, 단칼에 거부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겁함과 초라함에 지금도 마음이 상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밥 먹자', '술 먹자'라며 추근대기 일쑤인 원청 직원, 바지를 샀는데 바짓단을 수선하게 접어줘 달라면서 근육 좀 만져 보라는 직원, 노래방에서 성추행을 하는 직원들을 보고도 참고 살았다. 참고 살자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복이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괴롭힘은 경숙 씨가 당했는데 오히려 험담을 늘어놓는 원청 직원들이 있어 원청 직원들을 카톡방에 초대해 항의하고, 경고하기도 했다. 관리자들에게도 항의해 봤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2023년부터 신축 건물에서 새로운 업무가 발생하면 지회와 협의하지 않는 일방적 업무 지시가 잦아졌다. 올 2월 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은 새로 지어진 건물의 청소 구역을 정하면서 기존에 맡지 않았던 구역을 맡으라고, 산업폐기물까지 다 치우라고 지시했다. 깨진 유리나 금속도 그렇지만,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산업폐기물 등은 더 무겁고 더 위험하다. 그래서 이런 산업폐기물 등은 원청 직원들이 별도의 처리반을 만들어 다른 장비를 써서 맡아 왔다. 부당한 업무지시라 거부했더니 업체는 노무사를 붙여 노동강도를 측정하는 감시성 현장 실사를 하겠다고 했다. 정규직들에게는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경숙 씨만 아니라 동료들도 이미 업무 범위가 너무 넓고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버티기 힘든 지경이다. 친환경 전기차 공장이 곳곳 들어서고, 쓰레기는 갈수록 늘어났다. 하지만 사측은 원을 조금도 늘려 주지 않았다.

업체 정년은 60세, 경숙 씨는 정년까지 4년 정도 남았다. 그냥 더 참고 조용히 살까, 고민도 했지만, 정년이 많이 남은 동료들을 보면서 맘이 달라졌다. 골병드는 게 청소 노동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샤워장 청소, 습진차 청소, 복도 청소를 분리해 인력을 투입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다 청소하게 만들어 노동강도를 높였다. 매년 사상 최고의 실적을 갱신한다는 기아자동차가 비정규직을 대하는 태도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투쟁 과정에서 경숙 씨는 그동안 당했던 성희롱도 제기했다. 원청 협력지원센터 센터장은 처음에는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를 중지한다는 것이 조사 중간 결과라 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현장 안의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은 은폐된다. 힘들게 제기해도 뭉갠다. 함께 싸우고 있는 다른 청소노동자는 고충처리위원회의 결과를 항의하러 갔다가 소장과 주임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들은 여태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김경숙 씨ⓒ이온화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일터 돼야

경숙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쉽게 투쟁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경숙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청소노동자입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가래침과 담배 재떨이를 닦아내고, 넘쳐나는 똥.오줌을 두 손으로 닦아내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청결한 건물과 청결한 화장실을 만드는 일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5년 지금은 달라졌을까요? 글로벌기업 기아는 땀에 절어 속옷까지 젖어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위해 호스 달린 샤워기가 있는 공간 하나도 마련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원청과 하청은 정육점의 고기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깁니다. 청소노동자가 최하위등급이라며 임금을 책정합니다. 총무성 업체다, 생산 비연계 업체다, 하며 이중 삼중의 차별을 합니다. 저는 10년 넘게 일했지만, 잔업·특근 수당을 합해야 겨우 최저임금을 넘습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도 비슷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기아차의 주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기아차에서 일하는 구성원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경숙 씨와 동료들은 조합원을 탄압하고, 부당 업무지시를 자행하며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업체 소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부당업무 지시 완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투쟁이 두 달을 넘었지만, 풀린 건 하나도 없다. 업체 사장은 "회사를 건들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 주겠다"라고 협박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도 점검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는 현장에서, 정규직 노조나 비정규직 노조나 다 예전 같은 힘과 활기가 없는 조건에서, 경숙 씨와 동료들이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다행히 2주에 한 번씩 연대하는 노동자 시민이 화성공장을 찾아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다. 노동탄압과 성희롱에 맞서 싸우는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투쟁 3차 연대선전전은 8월 6일 화성공장 북문에서 열린다.

2차 선전전에서 만난 경숙 씨는 대공장의 겉과 속은 다르다는 것,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인권도, 노동권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더 힘을 내 노동자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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