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괴물을 만든 소녀, 19세기 영국을 흔든 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괴물을 만든 소녀, 19세기 영국을 흔든 펜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대중문화의 원조, 페미니즘 선구자 메리 셸리

열아홉 살 소녀의 무서운 상상력

1816년 여름, 스위스의 한 별장에서 열아홉 살 처녀가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괴담을 지어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메리 셸리(1797-1851). 그녀가 그날 밤 꾸어낸 악몽 하나가 훗날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문학과 사회풍조를 뒤흔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에 대한 경고장이자,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은밀한 항의서였으며, 무엇보다 "창조"라는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열아홉 살 처녀가 쓴 글치고는 너무나 묵직한 주제의식이 아닌가.

괴물 탄생, 영국 문학계 발칵

메리 셸리가 1816년 여름 스위스에서 구상한 "프랑켄슈타인"을 1년여 만에 완성하여 1818년 익명으로 출간했을 때, 영국 문학계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두고 "불경스럽다", "혐오스럽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정작 독자들은 열광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출간될 때 작가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연히 남성 작가가 썼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깊이 있고 철학적인 작품을 여자가, 그것도 미혼모가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는 더욱 술렁거렸다.

"젊은 처녀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메리 셸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사회의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학만능주의에 던진 차가운 시선

19세기 초 영국은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도취되어 있었다. 증기기관이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공장에서는 기계소리가 요란했다.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바로 이때 메리 셸리는 "잠깐,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과학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과연 인간에게 축복일까?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녀는 과학자의 오만함과 책임감 부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놓고는 "아, 이거 내가 원한 게 아닌데?"라며 손을 털고 도망친다. 전형적인 무책임한 남성의 모습이다. 임신한 여성을 버리고 떠나는 남자들처럼 말이다. 메리 셸리 본인도 유부남이었던 퍼시 셸리와의 사이에서 혼외 관계로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으니, 남성의 무책임함에 대한 이런 비판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여성작가의 은밀한 반란

메리 셸리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 사회에서 여성은 "집 안의 천사" 역할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착하고, 순종적이고, 말없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메리 셸리는 달랐다. 그녀는 펜을 들고 남성들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철학적 사유와 사회 비판에 뛰어들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그녀가 그려낸 괴물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은유였다. 여성, 노동자, 가난한 자들처럼 말이다.

특히 괴물이 "나는 왜 이렇게 못생기게 태어났는가? 왜 모든 사람들이 나를 혐오하는가?"라고 탄식하는 대목은, 당시 여성들이 사회에서 느꼈을 소외감과 절망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메리 셸리는 또한 "최후의 인간"이라는 작품에서 전염병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상황을 그렸는데, 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불안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 것이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 도시 인구 집중으로 인한 전염병 확산 등 현실적 위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딕 소설의 여왕이 되다

메리 셸리의 등장은 영국 고딕 소설 장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기존의 고딕 소설들이 유령이 나오는 낡은 성이나 초자연적 현상에 의존했다면, 메리 셸리는 과학과 현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공포를 창조해냈다.

이는 곧 "과학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발점이 되었다. 훗날 쥘 베른이나 웰스 같은 작가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메리 셸리가 닦아놓은 길 덕분이었다. 영국이 과학소설의 종주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열여덟 살 소녀의 상상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던 셈이다.

사회개혁의 씨앗을 뿌리다

메리 셸리의 작품들이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문학사적 의미를 넘어선다. 그녀의 소설들은 당시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독자들은 과학 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환경 보호 운동이나 생명윤리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또한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메리 셸리 자신도 남편 퍼시 셸리(1792-1822)와 함께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했다.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노동자 권익 보호 등 진보적 가치들을 옹호했다. 그녀의 문학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사회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의 선구자

오늘날 메리 셸리는 초기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에서 보여준 문제의식은 훗날 버지니아 울프나 시몬 드 보부아르로 이어지는 여성주의 사상의 출발점 중 하나였다.

특히 창조와 출산이라는 주제를 남성의 관점에서 다룬 것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의 자궁을 거치지 않고 생명체를 만들어내려 하는 것은, 남성들이 여성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려는 욕망의 은유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한 실패로 끝난다. 이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은밀하지만 신랄한 비판이다.

대중문화의 원조가 되다

메리 셸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괴물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영화, 연극, 만화의 소재가 되고 있다. 영국은 물론 전 세계 대중문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원작의 복잡하고 철학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단순한 괴물 이야기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셸리가 제기한 핵심 질문들 - 과학 기술의 한계, 창조자의 책임, 소외된 존재들의 아픔 - 은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위대하다

메리 셸리는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쓴 작가가 아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 사회가 가진 모순과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한 선각자였다.

그녀가 열아홉 살에 쓴 "프랑켄슈타인"은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인공지능과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메리 셸리의 경고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결국 메리 셸리가 영국 역사와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 모든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정말 그럴까?"라고 물었고, 그 질문을 통해 사회 변화의 물꼬를 터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메리 셸리를 기억해야 한다. 괴물을 만든 소녀가 아니라, 세상을 깨운 작가로 말이다.

▲메리 셀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