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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나서도 산업재해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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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명이 나서도 산업재해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허술하고 엉성한 노동안전 통계, 해답 찾을 수 있나

노동문제로 업을 삼은지 올해로 30년째지만,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사상 최초로 대통령까지 나서 산업재해를 살피지만,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말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행정 현실과 노동안전을 노동자의 권리이자 국가와 자본의 의무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풍토가 문제로 보인다.

생각보다 풍부한 노동안전 인력과 자원

노동자 교육을 위해 해외출장을 다닌지 올해로 20년째다. 노동 관련 제도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에 없는 것은 없다. 동남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그렇고 서구 선진국과 비교해도 그렇다. 법과 제도, 기관과 인력, 그리고 예산과 자원은 해외와 비교할 때 차고도 넘친다. 노동안전 분야가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이 부족하다고 난리지만, 사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 관련 기관의 인력, 고용노동부가 관리·통제하는 민간의 안전관리업체 및 보건관리업체와 관련 협회들, 이에 더해 전국의 대학들과 사설 직업교육기관에 우후죽순처럼 설치된 안전보건 관련 학과 등등. 파악하기로 노동안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수는 보수적으로 잡아 전국적으로 5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주요 활동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상근자 수를 더하면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업으로 삼는 직업군 규모는 1만 명은 족히 될 것으로 판단된다. 양적으로는 가히 세계 최고 규모라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산업재해 대책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안전에서 '양질 전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의 노동안전 실태에 적용하기 딱 알맞다. 법령은 대단히 촘촘하다. 3000명 근로감독관 중 안전감독관이 3분의 1에 달한다(한국의 근로감독관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다). 고용노동부 산하에 안전보건공단 등 관련 기관이 즐비하다. 고용노동부는 민간의 안전관리업체와 보건관리업체에 대해 '갑'의 위치에서 관리·통제 하고있다.

산업재해 관련 의료기관과 의사 등등 안전보건에 관련된 기관 및 인력과 자원을 따져가면 그 리스트는 끝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많은 구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이를 한 데 꿰어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지금껏 없었다(혹자는 고용노동부 산하에 산업안전보건청을 세우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한다. 그 사정은 이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른 기회에 논술한다).

고용노동부의 'divide & rule' 전략

왜 그럴까. 산업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가 이들 법령과 기관과 인력과 자원의 현황을 몰라서 이들 구슬을 한데 꿰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고용노동부가 의도적으로 이들 법령과 기관과 인력과 자원을 분단·차단시켜왔다고 본다. 일종의 'divide & rule' 전략인 것이다.

법령과 제도 간에 칸막이를 치고, 기관과 기관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인력과 인력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자원과 자원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무엇보다도 법령-제도-기관-인력-자원 사이에 칸막이를 치면서 의도적으로 법에 명시된 '산업안전보건관리체제'를 분단·해체시키는 'divide & rule' 전략을 구사해온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자행해온 의도적인 칸막이 분단 전략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2024년 산업재해현황'을 꼼꼼히 살피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허술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노동안전 통계

'2024년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사망자수는 2098명으로 전년 대비 82명(4.2%) 증가했다. 산재사망은 사고로 인한 사망과 질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나뉜다. 2024년 산재사고 사망자는 827명(39.4%), 산재질병 사망자는 1271명(60.6%)이다.

우리가 흔히 언론에서 접하는 산재 사망은 사고사망인데,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질병사망은 사고사망보다 21.2%포인트 높다. 질병 사망자가 사고 사망자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고용노동부가 관련 통계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고사망'과 '질병사망'을 검색해 그 결과를 살펴보면, 산재로 인한 질병사망 문제를 고용노동부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적으로 293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 관련 요인으로 사망했다. 이들 업무 관련 사망의 대부분(260만 명, 89%)은 직업성 질병에 의한 것이며,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은 33만 명(11%)이다(ILO. A call for safer and healthier working environments, 2022).

ⓒ윤효원

위의 국제비교를 보면 한국의 사고 사망자 수가 국제평균보다 28%포인트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질병 사망자 수는 28%포인트 낮다. 이 두개의 28%포인트의 격차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산재사고 사망자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해석과 한국의 산재질병 사망자 통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산재로 인한 부상자와 질병자 통계는 부존재

ILO에 자료에 따르면 산재질병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장시간 근무로 인한 심혈관 질환인데,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현황'은 광부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진폐를 산재사망의 가장 큰 원인로 지목하고 있다(506명. 39.8%). 대한민국에서 광업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였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사망자수만 따지는데(자살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산재 통계에서 제외하는 현실은 논외로 하자), 동시에 중요한 지표는 부상자와 질병자 통계다. 그런데 이것을 '2024년 산업재해현황'에서는 따로 확인할 길이 없다. 왜나햐면, 재해자라는 개념에 '사망자+부상자+질병환자'를 한데 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노동안전에서 사망자 문제의 심각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비치명적(non-fatal) 산업재해라 불리는 부상자와 질환자, 즉 산재로 인한 비사망자 문제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더해 치료비와 생계비 그리고 사회복귀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출처: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현황'에 나온 통계를 바탕으로 필자가 작성. ⓒ윤효원


2024년 산업재해 피해자 총수는 14만2771명인데, 그중 사망 피해자는 1.5%(2098명)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인 98.5%(14만673명)는 비사망이지만 부상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사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망자의 그늘에 가려 정부 정책과 언론 어디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산재 피해자의 중증 정도에 관한 정보는 부존재

또 다른 문제는 부상자와 피해자의 중증 정도를 분석한 통계가 고용노동부 산재 지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망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심신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피해자가 있을 것이고, 가벼운 부상과 질병으로 금방 현업에 복귀한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자세하고 촘촘하게 분석되지 않고, '사망자+부상자+질병환자'를 한데 섞은 재해자라는 통계로 수박겉핡기 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참고로 ILO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비치명적, 즉 비사망 산재 피해자는 3억9500만 명에 이른다.

노동통계의 함정

노동통계를 살펴볼 때 '평균의 함정'을 주의해야 한다. 평균 근로시간과 평균 임금이 대표적이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양극화라는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산재 통계와 관련해서도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말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재 통계에서 평균의 함정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산재사망률과 관련하여 1만 명당 몇 명이냐를 기준으로 잡는 '만인율'이 그것이다.

산재사망 만인율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문제는 국제기준은 10만인율인데, 한국은 1만인율을 채택하고 있어 즉각적인 비교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산업재해 통계에서 만인율을 기준으로 잡는 나라는 한국과 (노동후진국인) 미국 등 소수다.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 모두 10만인율을 사용한다.

'1만인율' 아니라 '10만인율' 사용해야

만인율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두 번째 문제는 산재 피해의 규모와 실상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사망만인율은 0.98명(사고사망 0.39, 질병사망 0.59)으로 채 1명이 안 된다. 그런데 이를 10만인율로 바꾸면 9.8명(사고사망 3.9, 질병사망 5.9)으로 10명에 육박한다.

위 그림의 Eurostat 통계는 산재 사망 중 사고 사망자 10만인율을 보여준다. EU 평균은 2명이 채 안 된다. 5명을 넘은 (한국인 대부분이 이런 나라가 있는 지도 모르는) 몰타를 제외하면, 모두 한국보다 낮다. 대한민국 언론이 재정적으로 망하기 직전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나라들도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 특히 그리스는 사고사망률이 1명도 안 된다. 혹자는 그리스의 노동통계를 못믿겠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노동통계는 믿을 수 있나.

노동안전의 3가지 관점

국제노동계는 노동안전 문제를 3가지 관점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위(behaviour)-체제(system)-권리(rights)가 그것이다. '행위' 관점은 안전보건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행위를 중시한다. '체제' 관점은 안전보건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관리체제'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같은 체제를 중시한다. '권리' 관점은 안전보건을 노동자의 권리로 존중하고 국가와 자본의 의무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안전 후진국은 주로 '행위'만 따진다. 국가와 자본은 산재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는데는 관심 없고, 오히려 피해 노동자의 실수를 찾아내 산업재해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데 과도하게 인력과 자원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 반사작용으로 노동은 국가와 자본의 '행위'의 부재를 비판한다.

경북 청도에서 일어난 철도 산재를 계기로 지금까지 산재 문제에 관심 없던 우익 언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대통령과 장관의 '행위'를 물고늘어지는 것도 또다른 일례라 할 수 있다. 노사정 모두의 행위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행위-체제-권리'라는 노동안전 삼각형의 한 변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행위'와 '체제'만 갖추면 문제가 해결될까

노동안전 중진국은 행위라는 변에 '체제'라는 변을 댄다. 각종 법령을 만들고, 체제와 체계를 만들고, 거기에 집어넣을 기관과 인력과 자원을 확보해 그 체제 안에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대한민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우리나라의 노동안전 구슬은 정부의 의지에 의해 여기저기에 분단·분산되어 있다.

정부의 의지가 그러한 배경에 노동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이윤과 이익을 빨아들이는 '노동안전'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다. 퇴직관료-변호사-노무사-학계-관계기관-관련업체에 더해 전현직 노조간부들이 이 죽음의 카르텔에서 이권을 챙기거나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의해 의도적으로 분단되고 해체된 이 '산업안전보건관리체제'의 문제는 대한민국 노동안전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죽음의 카르텔' 해체해야

마지막으로 노동안전 선진국의 실현은 안전보건 문제가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이 기업과 국가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때 가능하다. 노동정책이 경제정책과 산업정책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하고, 경제정책을 보조하는 하위 수단으로 취급받는 한,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놓고 노동안전에 집중해도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겉모습이 아닌 구조와 심층을 봐야 한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독점자본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노동정책을 경제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보는 기획재정부가 주무르는 죽음의 카르텔을 해체하는 것이 노동안전 선진국으로 향하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노동안전을 위한 구슬이 서 말이 아니라 열 말도 넘는다. 하지만 '행위-체제-권리'의 관점에서 이 구슬들을 한데 꿰려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노동안전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열 번을 집권하더라도 중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 고용노동부 2024년 산업재해 현황. ⓒ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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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의원실 보좌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IndustriALL 글로벌노조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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