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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딜레마'로 걸어가는 국힘, '바이든-날리면' 선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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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딜레마'로 걸어가는 국힘, '바이든-날리면' 선거가 열린다?

[박세열 칼럼] 체급 키운 '넘버쓰리' 이진숙, 국힘 선거 전략에 도움 안되는 이유

윤석열 정권 4년 남짓 시간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사건을 말하라면, 주저없이 '바이든-날리면' 사태를 꼽을 것이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의 '존재의 지평선' 너머를 보여준 것으로 기념비적이라 할 만 하다. 대선과 집권을 거치면서 은폐돼 왔던 어떤 것이 모종의 계기를 맞아 '팝업'처럼 튀어나와 전국민을 놀래킨 것이다. 이를테면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태도는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나, 이태원 참사, 한일 외교, 우크라이나 전쟁, 김태우 사면 출마 등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모순과 부조리의 원형(元型)과도 같은 것이다.

윤석열의 입에서 나온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바뀌는 순간, 집권당은 부화뇌동을 시작했다. 권성동은 "MBC는 대통령 발언을 왜곡하여 국민을 속였다. 대국민 보이스피싱"이라고 주장했고, 외교부는 MBC에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다. '언론 기술자' 류희림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JTBC에 주의 결정을 내렸고 KBS는 아예 '사과문'을 제출했다. YTN은 민간에 팔린 후 신임 사장이 취임해 직접 방송에 출연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친위 쿠데타'에 앞서 윤석열 일당이 벌인 '언어 쿠데타'는 백주 대낮에 무슨 이솝 우화에나 나올법한 해프닝으로 사람들의 감각을 뒤틀고 흔들어댔다. 이 정권의 기괴함이 탈은폐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언론사가 '바이든'으로 보도했지만, 윤석열은 MBC를 콕 찍었다. 그러면서 엽기적인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출근길 도어스태핑을 갑자기 중단하더니 MBC를 대통령 순방 전용기 탑승 명단에서 배제했다. 윤석열 정부의 시스템이 공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사적 보복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방송 쪽을 손 좀 봐야겠구나'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몫의 최민희를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 거부하면서 '방통위 전쟁'을 일으켰다.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날리면'의 '나비효과'를 떠올린 이유는 최근 이진숙 씨의 행보를 보면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구강 시스템 에러를 옹호하는 대열 중에는 이진숙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정을 향해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대신 "원점 타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MBC를 응징해 주셨으면 한다. 시청을 거부하고 광고를 주지 않는 등 방법은 많다"고 나섰다. 그는 "대통령실의 단호한 조치는 지난번 MBC가 언론 역사에 기록될 오보+조작 방송을 했을 때 취해졌어야 한다. 그때 MBC는 명확히 들리는 단어와 불명확한 단어가 섞여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이에 자막을 달아 '특종'이랍시고 난리법석을 피웠다"고 비난했다. MBC 언론인 출신이라는 사람 둘(김은혜와 이진숙)이 '바이든-날리면'이라는 현대판 우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이진숙은 정치권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방미통위)로 확대 개편하는 법안에 대해 "제 생각에 오직 이진숙이란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주장했고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이진숙이란 사람이 방통위에 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했다"고도 주장했는데, 절반만 맞는 말이다. 애초 이진숙이라는 인물 자체가 윤석열의 '방송 장악'을 위한 이동관의 대체제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대체제도 아니고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에 이은 '후후순위' 대체제였다.

당시엔 누가 그 자리에 앉든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민주당)의 탄핵이 예고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진숙은 '넘버 쓰리'로서 기꺼이 '카미카제'가 되는 길을 택했다. 윤석열에게 이진숙은 '전시 소모품'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이 내란으로 감옥에 간 지금, 이진숙이 모종의 정치적 기회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기자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실패해 왔던 스스로를 '정권의 표적'으로 갑자기 부풀리면서 '셀프'로 체급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이진숙은 '방송장악' 논란이 일던 박근혜 정부에서 MBC 임원으로 승진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2014년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를 낸 보도국을 책임졌던 보도본부장으로 더 기억된다. 이진숙은 2019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지만, 그가 가진 '꿈의 크기'에 비해 당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진숙은 2020년 총선과 2022년 지방선거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예비후보(대구시장 후보)로 등록했으나 공천도 못 받았다. 정치의 꿈을 포기하지 않던 이진숙은 2021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캠프 언론특보로 들어 갔지만, 일주일만에 해촉되며 초라한 입지를 재확인했다.

당시 이진숙과 함께 보수 우파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서 활동한 KBS 피디 출신인 최철호나, MBC 기자 출신 권재홍, 방송과 전혀 관계 없는 민영삼 같은 인물이 방송 유관기관으로 줄줄이 영전하고 김장겸 전 MBC 사장 같은 인물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을 때도 이진숙은 사실 '찬밥' 신세였다. '1소모품'인 이동관과, '2소모품'인 김홍일이 탄핵을 피하려 사퇴한 자리에 들어선 '넘버 쓰리' 이진숙의 미션은 '2인체제'라는 기형적 형태를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이진숙은 '윤석열 정부의 일원'이라는 느낌보다는 '3번째 소모품'의 느낌이 컸다. 이동관, 김홍일과 달리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탄핵 전 사퇴'를 하지 않았던 건, 추정컨대 이미 윤석열이 '내란'으로 사태를 일거에 해소하려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찬밥' 이진숙이 갑자기 '보수의 여전사'로 떠오른 상황을 설명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능력을 발휘된 게 아니고, 정치적 지형이 변한 것(윤석열 탄핵과 극우의 득세)때문이다. 철지난 '반공주의'와 '색깔론'으로 무장한 이진숙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진숙이 '윤어게인'을 등에 업고 '윤석열의 비밀 병기'로 우뚝 서고 있는 모양새다. '이진숙의 대학 후배'인 전한길은 "이진숙이 대구시장에 나오면 양보하겠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체포된 자리에서 수갑을 들어올리며 "이재명이 시켰냐, 정청래가 시켰냐"고 기염을 토한 이진숙은 자신이 정치적 운명을 적극 개척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진숙의 이 착각이 국민의힘에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진숙이 내년 지방선거의 주요 인물로 떠오르면 국민의힘은 또 다시 '윤어게인'의 프레임으로 걸어들어간다. 민주당이 좋아할만한 구도다.

정치권에 입문한지 6년 간 권력의 언저리를 떠돌다가 '전시 소모품' 수준의 장관 자리를 차지한 그 '근성'은 인정할만 하다. '바이든 날리면'으로 시작된 윤석열의 '대MBC전쟁'의 부스러기와 같은 인물이 '탄압받는 여전사' 이미지를 입고 중앙무대에 올라선 것도 평가해 줄만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가 대구시장이 되든, 대구 지역에서 공천을 받든, 국민의힘은 '이진숙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벌써 일부 극우 커뮤니티에선 '이진숙 대망론', '이진숙 대통령'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의 입에서 시작된 '바이든-날리면'의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마침 이진숙과 같은 MBC 출신인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도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있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정정한 장본인이다. 내년 지방선거 판이 열리면, 이 두 MBC '기자 출신'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KB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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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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