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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장 보낸 아이가 죽어 돌아오는...K스포츠를 보이코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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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장 보낸 아이가 죽어 돌아오는...K스포츠를 보이코트하라

[정희준의 어퍼컷] K스포츠 위기에 엉뚱한 해법 내놓는 체육계

한국 스포츠는 위기다. "엘리트 체육이 붕괴"했다. 작년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장이 한 말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유승민 현 회장도 한국 체육이 위기에 놓였다고 반복한다. 우선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다. 1986년 아시안게임 이후 한국은 중국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켜왔는데 2018년 자카르타대회 이후 연이어 일본에 뒤지며 3위로 내려앉았다.

하강하는 성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선수가 없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380명이 출전했는데 2024년 파리올림픽엔 고작 144명이 출전했다. 선수가 없어 팀 구성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대표 배출이 가능이나 하겠나.

브라질이 축구를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를 많이 하니까. 유럽이 핸드볼을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핸드볼을 많이 하니까. 쇼헤이 오타니가 일본에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를 많이 하는 나라니까. 일본이 올림픽 여자 레슬링 전체급 석권을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이 하니까. 세 살부터. 그렇다면 한때 한국의 '메달밭'이라던 복싱, 레슬링에서 메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는 안 하니까.

한국스포츠가 위기인 이유는 단순명쾌하다. 엘리트스포츠의 토대인 고교 운동부를 보자. 고교 남녀 농구 및 배구선수가 각 500명 남짓이다. 그런데 일본은 13만, 10만 명이다. 팀 수는 당연히 이와 연동한다. 우리는 여고팀이 18개인데 반해 일본은 여고팀만 3850여 개다. 더 처참한 것은 한국 여고팀 중 대회 참가엔트리 12명을 채운 팀이 고작 5개 안팎이라는 점이다.

작년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기초종목인 육상, 수영에서 우리는 각 899명, 473명인데 반해 일본은 9만2천, 2만7천 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종목이라는 축구와 야구의 고교선수는 3천 명을 넘는 수준인데 일본은 각 14만, 15만 명에 육박한다. 팀 수도 우리는 야구팀 100개 미만, 축구팀 200개 미만이지만 일본은 축구, 야구 모두 4천개를 넘나든다. 농구, 배구로 가면 더 놀랍다. 우리의 고교 배구팀은 남녀 다 합해봐야 40개, 농구팀은 50여개인데 일본은 고교팀만 각 7천여개다. 왜? 남녀팀이 따로 있으니까. 간단하다. 한국 스포츠가 위기인 것은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해법: 엉뚱하거나 멍청하거나

엘리트 스포츠가 붕괴한 근본 원인은 선수가 없어서인데 이기흥, 유승민 회장은 엉뚱한 데서 헤매고 다녔다. 분석과 해법 모두 엉망이다. 이 회장의 선택은? 국가대표 해병대 극기훈련. 요즘 선수들은 정신력이 부족하단다. 이미 2016년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목봉체조를, 2019년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공수훈련을 받은 바 있다. 2023년 한겨울 국가대표 선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해병대로 끌려갔다.

그렇다면 유 회장의 선택은? 더 기가 막힌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인 최저학력제, 결석 허용일 수, 합숙소 운영금지, 이 모두를 자신의 임기 내에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부는 모르겠고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7월 또다른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임오경 민주당 의원이 체육영재학교 설립을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공동발의했다. 이미 체육전문학교들이 있는데 국립학교를 또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는 "초·중등교육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 네 개에 빛나는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 역시 이에 힘을 싣고 있다.

교육은 필요 없고, 운동만 가르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메달리스트 출신들에 의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치킨집이 있다. 손님이 오질 않는다. 사장님은 고민에 빠졌다. 좀 더 좋은 고기, 더 맛있는 레시피를 써야 할지, SNS 마케팅을 해야 할지, 인테리어를 바꿔야 할지,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알바생을 줄일지 등 여러 방안을 놓고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적자를 줄이겠다고 "그렇다면 가격을 올리자"는 멍청한 해법을 내놓을 사장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지금 유승민, 임오경 등이 내놓은 해법이 딱 그런 경우다. 지금 K스포츠는 선수가 없어서 망하고 있는데 문제의 근본 원인 치유는 외면한 채 '성적이 안 좋아? 그럼 운동을 더 시켜!'라는 황당한 해법을 내놓는 몰상식의 수준이다.

K스포츠, 앞으로 더 씨가 마를 것이다

한국스포츠의 근간인 학원체육에 씨가 말라버린 이유가 있다. 첫째, 학원스포츠가 성적으로만 평가받게 되면서 공부는 개나 줘버리는 기형적 공간으로 변질됐다. 운동은 취미활동이어야 한다. 일본 중고등학교의 부활동(部活動, 부카츠)처럼. 그러나 한국에서 학창시절 운동을 한다는 것은 공부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미다. 아이가 훗날 운동선수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너무 크다. 어느 부모가 그런 결정을 하겠는가.

지난 파리올림픽에서 '서부의 하버드'라는 미국 스탠포드대의 학생들은 39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국가 순위 10위에 해당한다. 하버드대 학생들도 메달 7개를 획득했다. 이 학생들 중 프로선수나 감독, 코치 등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을 학생은 몇이나 될까. 아마 없을 것이다. 기업에 취업하거나 엔지니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으로 갈 것이다. 일본의 대학생 메달리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학창시절 운동은 취미활동이지 직업이 아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조차.

둘째, 운동 시키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선수가 지불해야 하는 돈이 월평균 75만 원이다. 고3이 될수록 비용이 높아진다. 서울의 한 야구부는 연 2억5천만 원을 학부모로부터 걷는다고 한다. 개인 비용 제외하고 그 정도다. 한 학생이 연 1천만 원 정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이상이다. 팀스포츠도 과외를 한다. 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모두 초등학교부터 별도의 개인 레슨을 한다. 학교에 등록금 내고, 운동부에 월회비 내고, 개인 코치에게 또 준다. 사교육의 사교육이다. 이런 나라는 한국 외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폭력의 일상화이다. 초등학교부터 성인, 프로까지 욕설, 폭행, 성폭력, 따돌림, 온갖 가혹행위와 심지어 자살이 난무한다. 201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조재범 코치 성폭행사건, 2020년 철인3종 최숙현 선수와 2022년 K리그2 16세 유스팀 선수의 극단적 선택 등이 사회적 충격을 줬지만 바뀐 게 없다. 체육인들이 사회적으로 경시되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7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운영하는 손축구아카데미 코치진의 폭력 및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코치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개XX', '벙어리', '미친놈', '돌대가리', '또라이'라 부르며 정서적으로 학대했고 'X발', '죽여버린다', '꺼지라고', '꼴값 떨지 마' 등의 욕설과 폭언을 했으며, 손 감독은 선수에게 발길질까지 했다. 분노를 누르며 조사를 해봤다.

7월 16일 청주 유소년 축구클럽 감독은 8살 아이를 폭행하고 8명의 아동을 학대해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음날인 17일 의정부 태권도 관장이 초등생 관원들을 폭행해 검찰에 송치됐다. 또 그 다음날 18일 김해시 태권도장은 도복을 개지 않았다는 이유로 6살 아이를 폭행해 송치됐다. 아이에게 도복 접는 걸 한 번 보여주고 그대로 못 따라하자 때렸다. 51개월 아이다.

12일 양주시 태권도 관장은 네 살 최도하를 돌돌 말아 세워놓은 매트에 거꾸로 집어넣어 27분간 방치해 심정지에 이르게 했다. 도하가 "꺼내주세요", "살려주세요"를 애타게 외쳤지만 무시했다. 아이는 깨어나지 못하고 11일 뒤 사망했다. 관장은 도하에게 총 140회에 걸쳐 신체적 학대를 했고 또 다른 아이에겐 30회에 걸쳐 때리는 등 신체적 학대를 했을 뿐 아니라 26명의 아동에 대한 학대 혐의도 드러났다. 태권도장이 폭력의 백화점이다. 지난 11일이 도하의 6번째 생일이었다. 도하 어머니는 관장이 지금까지도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2024년 7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에서 선수 수가 가장 많은 축구와 태권도의 30대, 40대, 50대, 60대 지도자들이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저지른 폭력이 이 정도다. 그렇다면 올해는 다를까? 최근 접한 사건만 해도 철인3종 중3 남학생의 중2 여학생 성폭행, 중학교 씨름부 친형제 감독의 2학년생 삽으로 폭행, 여자축구 지도자의 여고생 성폭력, 대학 농구부 선배의 후배 폭행 및 가혹행위, 중학교 농구 경기 중 상대 선수 폭행, 태권도 사범의 초등생 강제 추행 및 성폭행 등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들이 피해자다. 체육계는 아이들 하루 종일 운동만 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이런 처참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외국에선 칭찬받는 시간, 한국에선 두려운 시간

외국에서 아이들에게 운동하는 시간이란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시간이다. 신나는 시간이고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 운동 시간이란 일상적 폭력을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두려운 시간이다. 외국은 선수는 풍년, 관중은 만석인데 우리나라는 선수 부족에 시달리며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해야 한다. 외국에서 운동이 개꿀맛인데 한국에선 죽을 맛이다.

지난 달 부산에서 열린 전국체전 기념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위해 나선 올림픽 메달리스트 하형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앞으로 한국 스포츠는 우리 메달리스트들이 이끌고 가겠다"는 취지의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K스포츠, 참 고생이 많다.

▲17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서울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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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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