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은 올해 3번째 관악시민대화포럼이란 행사를 가졌다. "광장의 불빛으로 다시 마을을 밝힌다"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시민대화에서는 주거, 돌봄, 기후문제, 지역네트워크, 시민활동 등 다양한 주제로 모두 8개의 대화마당이 열렸다. 광장의 불빛을 다시 관악의 마을로 가져와 보다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관악시민대화포럼은 관악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이 지역 과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매년 11월 첫 주 일주일 간 열리는 '열린 시민 대화의 장'이다.
관악시민의회도 이 대화모임의 한 주제로 열렸다. 지난 11월 12일 관악구 시민사회와 시민의회를 학습·연구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서울대 정치학과가 마련한 '시민의회' 세션은 내년 1월로 예정된 관악기후시민의회의 첫 공개 프리뷰 행사였다. 단순한 설명회를 넘어, 시민의회를 관악에서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함께 고민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번 프로젝트의 산파 역할을 한 이는 시민참여·직접민주주의 분야의 전문가인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다. 그는 '시민의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해 실제 작동할 모델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여러 학부·대학원생이 폭넓게 참여해 기획팀의 동료가 되었고, 필자 또한 그 구성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학생, 대학원생들은 단순한 수강생이 아니라, 시민의회의 설계·운영·실행·연구보고까지 함께 책임지는 '동료 기획자'다.
프리뷰 행사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학생들이 준비한 '설계', '모집과 홍보', '연구' 세 팀의 결과물을 주민들 앞에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관악구청과 구의회, 관악시민사회단체, 주민들이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시민의회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논의와 고민의 깊이를 더하는 자리였다.
지금 왜 '시민의회'와 '기후'인가?
관악기후시민의회는 단순한 정책 프로그램도, 일회성 행사도 아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선거민주주의를 참여민주주의로 확장하기 위한 관악 시민사회와 서울대의 공동 실험이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실제 정책 형성과정은 여전히 좁고 제한적이다. 많은 시민은 선거 때 한 표를 던지는 것만으로 지역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반복해왔다. '선거일 하루만 주인이 되고 다음 날부터 객체가 되는' 정치 구조를 더는 그대로 두기 어렵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지방선거는 생활밀착형 정책과 지역 문제를 직접 다루기 때문에, 시민의회가 실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그 효과를 체감하기에 훨씬 적합한 공간이다. 또한 지역 차원의 숙의와 참여 경험이 쌓여야만 중앙정치로 확장될 민주주의 혁신의 기반이 마련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의회는 총선보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더욱 깊이 있는 실험이 가능하다.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학습한 뒤 공정하게 구성된 숙의 과정을 거쳐 정책 권고안을 도출하는 절차는 단순히 제안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다. 이는 주민이 스스로 '정치의 주어'가 되는 중요한 민주주의 훈련이다.
12.3 계엄 사태 1년이 다가온다. 그날의 상처와 책임을 다루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는 갈등과 분열의 구조적 문제 또한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따라서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은 숙의와 경청을 중심에 둔 정치적 상상력의 회복이다. 시민의회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시민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듣고 배우고 토론하며 합의의 방식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작은 학교다. 이 과정 자체가 국민통합의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번 시민의회의 핵심 의제는 '관악의 기후와 탄소중립'이다. 서울대는 서울에서 수년 째 에너지 소비량 1위 기관으로 기후대응 기술 개발과 탄소중립 실천이 중요한 과제다. 관악구는 몇 년 전 폭우로 반지하 가구가 침수돼 한 가족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은 지역으로, 기후위기의 현실을 몸으로 겪고 있다.
대학과 지역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관악구'라는 생활 기반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기후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 역시 양쪽 모두의 과제다. 기후위기는 기술이자 생활의 문제다. 폭염, 난방비, 에너지 수요 증가, 건물·교통 전환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어 시민의 경험과 판단이 정책 과정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의회는 어떻게 꾸려지나?
관악기후시민의회 시민의원은 유권자 중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발한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널리 사용하는 방식으로, 성별·연령·직업, 나아가 정치성향에서도 인구 구성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뒤따른다. 특히 정치적 편향 시비를 넘어서기 위해 11:11의 구성을 갖는 현 관악구 의회의 협조를 구해 시민의원을 모집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30명을 고려했으나, 프리뷰 행사에서 주민 의견을 반영해 5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전반도 재조정되어, 네 차례 회의에서 매주 6시간 이상 충분한 논의와 숙의 시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보강했다.
시민의회는 내년 1월 매주 토요일(12, 17, 24, 31일) 총 네 차례 진행된다. 참여 시민은 △기후·에너지 관련 정보를 사전 학습하고 △심층 토론을 통해 관악과 서울대의 기후대응·탄소중립 실천 과제를 찾고 △우선과제를 선정하며 △정책 권고안을 만들어 공개 발표한다. 마지막 회차에는 현직 구청장과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예비후보자들과 더 많은 시민 참관인들이 참여하는 공개발표회도 예정돼 있어, 정책 권고안의 실질적 효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실험이 만들어갈 변화
이번 프리뷰 행사에서 공무원, 시의원, 시민, 학생이 함께 나눈 의견들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가 공감한 지점은 명확했다. 바로 "관악의 기후 문제와 탄소중립 과제를 시민이 직접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며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훈련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공동의 기술이다. 관악기후 시민의회는 그 훈련의 첫 무대이며, 관악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출발선이다.관악시민의회 참여자는 관악구 주민들과 서울대 구성원으로 한정되며 12월 12일까지 모집해 1월부터 시민의회가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관악기후시민의회(☞사이트 바로가기 : gwanakcitizenassembly.mixon.io), 시민의회전국포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민의회가 가지는 평등성의 원칙에 따라 참여자들은 참여수당과 활동증서를 받을 수 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수많은 선거와 정책 그리고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왜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핵심적인 이유는 시민들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과 참여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회는 부족했던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시민이 직접 정책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혁신적 민주주의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회는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불평등, 세대갈등, 연금개혁, 정치개혁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영역에서 국민적 합의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관악에서 쏘아올리는 작은 실험이 전국의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혁신적 민주주의 실험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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