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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거리에 나서는 여성들…"성평등, '나중에'로 미루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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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거리에 나서는 여성들…"성평등, '나중에'로 미루지 말라"

[12.3 비상계엄 1년] ⑥ 광장 이끈 여성·소수자, 평등 정책 부진 우려

12월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에, 그리고 1972년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8일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11명의 전직 대통령(윤보선, 최규하 제외) 중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비상계엄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전히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민의힘에서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비상계엄이 우리에게 준 의미, 그리고 청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청년 여성들을 주축으로 하는 시민 160여 명과 67개 단체가 모여 이재명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날의 구호는 "여자라서 죽는 나라에 국민주권정부는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망가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앞장섰음에도 여성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2024년 탄핵광장의 상징이 왜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왜 그토록 많이 불리었는지 기억합니까? 한창 시험기간이었던 그 겨울, 저와 친구들은 응원봉을 챙겨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우리에겐 학점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소신이 있었고, 같은 생각을 하는 2030 여성을 광장에서 참 많이도 봤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현 정부는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려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달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남성들의 표심을 돌릴 생각으로 정당한 요구에 대해 의도적인 무시를 하는 것이라면 그만두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한승연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회원)

같은 달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이재명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62개 단체는 "지금의 정부에서 '성평등'은 여전히 '나중에'로 미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평등이 국정운영의 핵심 가치로 자리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총체적인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통한 민주주의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성평등가족부에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특별히 주문한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역차별 조사'라니, 도대체 이 정권의 입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차별이란 애초에 명백한 차별이 존재할 때 그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생겨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은 역차별을 주장한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명백히 존재하는 차별이란 무엇입니까.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 혐오, 폭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차별을 운운하기 전에 정부는 이 명백한 차별과 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청년 여성들을 주축으로 하는 시민 160여 명과 67개 단체가 모여 이재명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날의 구호는 "여자라서 죽는 나라에 국민주권정부는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망가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앞장섰음에도 여성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탄핵광장의 주역은 여성·소수자, 그들이 외친 '차별 없는 세상'은 어디로

거리에 나와 성평등 정책을 촉구하는 여성들은 다름 아닌 이재명 정부 탄생의 주역들이다. 1년 전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여성들은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등 민주시민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가장 먼저 달려나갔다. 광장의 상징은 촛불에서 청년 여성들이 들고 나온 '응원봉'으로 바뀌었으며, 여성과 소수자들의 요구로 집회는 차별을 지양하는 문화가 조성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광장을 수놓은 응원봉을 언급하며 '빛의 혁명'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광장이 새 정부에 가장 많이 바란 과제는 다름 아닌 '평등'이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구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지난 2월 10일부터 3월 6일까지 온라인 공론장 '천만의 연결'에 등록된 시민의견 651건을 분석한 결과, 시민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사회대개혁 과제는 '차별금지와 인권보장(31%)'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윤퇴청)이 지난 1월 1일부터 13일까지 광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10~30대 청년 954명을 대상으로 어떤 모습의 한국사회를 바라는지 묻는 질문에서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포용사회(61.1%)'라고 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윤퇴청 대표 및 비상행동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재정 불평등물어가는범청년행동 공동대표는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프레시안>과 만나 "소수자 간의 연대, 그리고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염원이 광장이 주요한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1년 동안 광장과 관련한 활동을 해오면서 확신하게 된 점은, 광장을 이야기하면서 시민들이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바랐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배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단언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구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지난 2월10일부터 3월6일까지 온라인 공론장 '천만의 연결'에 등록된 시민의견 651건을 분석한 결과, 시민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사회대개혁 과제는 '차별금지와 인권보장(31%)'으로 나타났다.ⓒ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역설적이게도 광장의 염원 아래 탄생한 이재명 정부는 평등 정책에서 가장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 주요 요직 전원이 남성이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후로 남성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이른바 '역차별론'을 제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과거 한 개신교계 행사에서 "모든 사람이 동성애를 택한다면 인류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은 성평등가족부의 주무과가 남성들의 '역차별' 인식을 다루는 성형평성기획과가 된 것을 두고 '성차별 피해를 겪은 여성을 제쳐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부터 윤 전 대통령 파면까지 틈날 때마다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는 A(20) 씨는 "6개월 된 이재명 정부의 정책을 확실하게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그것과 별개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장 의아했던 점은 성평등가족부가 남성 역차별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에요. 물론 남성들이 겪는 차별도 존재해요. 하지만 이것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편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사회 기저에 깔린 여성혐오와 같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여성들이 지금까지도 목소리 내는 이유는 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편견과 차별을 없애자고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를 남녀 갈등이라고 평가하면서 남성들을 먼저 챙기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뭐 하는 짓인가' 싶어요. 유리천장처럼 여성들이 겪는 차별부터 제대로 해결한 다음에야 남녀 갈등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성소수자도 이재명 정부의 평등 정책에 만족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박형대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 부대표는 <프레시안>에 "소수자 정책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윤석열 정부에 비하면 이번 정부에서는 평등 정책이 제정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면서도 "혐중 등의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성소수자 관련 정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언제까지 외면하려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기뻐하며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내란 수습에 급급한 상황 이해하지만, 광장을 지킨 소수자 목소리 잊지 말길"

비상계엄 선포 1년, 이재명 대통령 당선 6개월만에 조속한 평등 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두고 일각에서는 '비상계엄으로 인해 망가진 국가 체계를 수습하기 급급한 정부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가족부를 무력화한 윤석열 정부에 비하면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강화한 현 정부의 기조가 훨씬 여성친화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광장을 지킨 여성들이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남태령 집회를 주도했던 청년 여성 농민 향연(활동명, 본명 김후주) 씨는 <프레시안>에 "내란 청산이 아직도 너무 유효하고 필요한 구호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진전된 게 실질적으로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 빠르게 처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내란세력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어 답답한 면들이 있다"고 했다.

또한 "현 정부가 윤석열 정부 몇 년간에 걸쳐서 무너진 국가를 보수하고 있고, 때문에 민주당이라고 해도 경제 부양 등의 보수적인 정책을 중점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여성 정책과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서는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몇몇 진보적 의제들을 조용히 처리하고 있는 점도 있어 광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평등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결국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꾸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나온다. 향연 씨는 "광장이 끝났다고 표현하지만, 광장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게 느껴졌고,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들이 자기 자리에서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너무 절망하지도 낙관하지도 말고, 차분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 했다.

다만 광장에 모였던 이들은 평등사회를 바란 광장의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성계가 광화문에 모여 정부에 요구한 성평등 정책은 △차별금지법 제정 △비동의강간죄 개정 △성매매여성 불처벌 △친밀한 관계 폭력 처벌법 제정 △모두에게 평등한 가족구성권 보장 △안전한 임신중단과 재생산권 보장 △성차별 없는 노동권 보장 등 8가지다.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요구해 온 정책들이 민주시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부대표는 "이재명 정부는 광장을 몇 달 동안 지킨 분들이 누군지 잊은 것 같다. 젊은 여성들이 광장을 지켰고 성소수자들이 광장을 지켰다. 이주민들이 광장 지켰고 엄청 가난한 사람들, 학생들, 청년들, 빈민들이 광장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중요시 한다는데,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평등과 복지는 과연 경제성장과 관련 없다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요. 평등 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압박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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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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