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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고등학생 심야 학원 허용' 조례, 교육 현장 다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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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고등학생 심야 학원 허용' 조례, 교육 현장 다 망가진다

['청소년 심야 교습 허용 조례 반대' 연속기고] ② 20여 년 학원 운영 원장의 반대 "청소년 건강·교육 현장 엉망돼"

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최근 서울특별시의회에서 고등학생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2시까지 허용하는 조례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이 조례는 '타지역과의 형평성'과 '학생의 학습권'을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20년 넘게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직접 지도해 온 학원장의 눈으로 보면 이는 학생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선택이라기보다, 경쟁을 더 늦은 밤으로 밀어내는 결정에 가깝다. 나는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자 고등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 이 조례에 강력히 반대한다.

나는 현재 시행 중인 밤 10시 학원 교습시간 제한에 찬성해 왔다. 이 기준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 그리고 학부모와 교육 현장이 감당해야 할 경쟁 압박 사이에서 어렵게 형성된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합의를 12시까지 연장하는 순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입시 경쟁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서 12시는 결코 '선택의 상한선'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두 곳의 학원이 12시까지 수업을 시작하면, 다른 학원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2시는 선택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아니라, 모두가 맞춰야 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학생은 원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남게 된다.

특히 고3 수험생의 경우, 12시까지의 학원 수업은 곧바로 수면 부족으로 이어진다. 실제 귀가와 정리 시간을 고려하면 취침은 새벽으로 밀리기 쉽고, 이는 집중력 저하와 정서 불안, 만성 피로로 이어진다. 현장에서 수많은 학생을 지켜보며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취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휴식과 회복이 보장될 때 학습 효율은 높아진다. 밤 11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학생은 이미 극도의 피로 상태에 빠진다. 졸음을 참으며 억지로 앉아 있는 것이 과연 학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조례는 학부모에게도 새로운 부담을 전가한다. 12시 연장이 제도화되면, 자녀를 10시에 귀가시키는 것은 더 이상 만족하기 어렵다. "다른 아이들은 12시까지 하는데 우리 아이만 일찍 오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은 가정으로 옮겨간다. 이는 자율의 확대가 아니라, 선택의 여지 없이 12시까지 학원에 남게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딸을 둔 부모로서 이런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와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서울 대치동 한티역 인근 학원가의 밤 풍경. ⓒ문성호(토끼풀)

학원 현장의 붕괴 : 강사·직원 노동권 침해

이 조례가 간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와 직원들의 노동권 침해다. 12시까지 수업이 허용되면, 강사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다. 수업 정리와 학생 상담, 학부모 응대까지 고려하면 실제 퇴근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다. 이는 명백한 심야 노동이며, 강사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심각하게 해친다.

학원 차량 운전기사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12시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을 각 가정까지 데려다 주는 시간까지 고려할 때 운전기사의 퇴근은 새벽 2시를 훌쩍 넘긴다. 이런 심야 노동을 매일 반복하는 것은 인간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지금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며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학원 종사자들에게만 심야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소규모 학원의 생존 위기

특히 소규모 학원의 경우 이 조례는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대형 학원은 그나마 강사를 교대로 배치하고 차량 운영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있지만, 소규모 학원은 그럴 여건이 전혀 없다. 원장 혼자서 강의와 운영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은 소규모 학원에서 12시까지 수업을 한다는 것은 곧 원장의 하루가 새벽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인건비다. 12시까지 수업을 운영하려면 추가 강사를 고용하거나 기존 강사에게 심야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차량 운전기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규모 학원은 이런 추가 인건비를 감당할 재정적 여력이 없다. 결국 소규모 학원은 12시 수업을 포기하거나, 원장과 강사가 자신의 건강과 삶을 희생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는 교육 서비스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학생들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여건도 문제다.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 학생들을 귀가시키려면 충분한 차량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규모 학원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의 안전마저 위협 받게 된다.

갈등과 상처만 남는 교육 현장

12시까지 수업이 허용되면 학부모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다른 학원은 12시까지 하는데 왜 우리 학원은 안 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칠 것이고, 학원은 어쩔 수 없이 12시 수업을 개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간에 강사들은 지친 몸으로 졸고 있는 학생들을 깨워가며 수업을 해야 한다. 학생은 자고 싶고, 강사는 가르쳐야 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을 다그치며 억지로 공부시키는 일이 교육이 될 수는 없다. 이는 학생과 강사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서로를 원망하고, 지치고, 관계가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리 없다.

▲고등학생 학원 심야 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지난 17일 밤 서울 성북구 노원 학원가에서 조례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심야조례폐지공대위

사교육비 증가 악순환 교육 본질 되물어야

12시 연장 조례는 결국 대한민국의 사교육비를 더 증가시킬 것이다. 수업 시간이 늘어나면 학원비도 오를 수밖에 없고, 학부모들은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그 비용에 비례해 학생의 성적이나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로와 스트레스만 누적될 뿐이다. 이는 가계에 부담을 주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해친다.

교육은 단순히 시장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입시라는 구조적 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적 기준이 사라질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부담은 학생과 가정, 그리고 교육 종사자에게 집중된다. 밤 10시 제한은 이러한 과잉 경쟁을 완충해 온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였다. 이를 12시로 연장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권을 넓히는 선택이 아니라, 경쟁을 더 늦은 밤까지 끌고 가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교육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돼야 한다. 학생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학원에서의 학습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과도한 입시 부담을 완화하고 공교육과 사교육의 균형 잡힌 역할이 이루어져야 한다.

20년 넘게 교육 현장을 지켜온 학원장으로서, 그리고 고등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 분명히 말하고 싶다. 서울시의회의 고등학생 학원 12시 연장 조례는 학생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학생의 건강을 해치고, 교육 종사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며, 소규모 학원을 무너뜨리고,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잘못된 결정이다. 이 조례는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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