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세청은 과세자료 처리 기간을 단축해 납부지연가산세 부담을 크게 줄였다고 발표했다. 평균 처리 기간을 전년 대비 25일 단축했고, 그 결과 납부지연가산세 부담이 약 425억 원 경감됐다는 설명이다. 과거 과세자료 처리 지연으로 본세보다 가산세가 더 커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가산세 부담 완화를 목표로 한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성과를 납세자 권익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납부지연가산세는 정말 줄어든 것일까
‘납부지연가산세를 경감했다’는 표현은 과세자료 처리 지연으로 인한 납세자 부담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가산세를 없앤 것이 아니라 줄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담의 규모가 완화되었을 뿐, 과세자료가 신고기한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뒤 처리되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현재의 경제 환경과 맞물릴 때 더욱 민감해진다. 고환율 기조의 장기화는 수입 원가와 물류비를 자극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소비 침체까지 겹치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가계 전반의 납세 여력은 크게 위축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세자료 처리 속도와 범위가 함께 확대될 경우, 납세자 입장에서는 세무조사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세 부담이 증가했다고 체감할 가능성이 크다. 과세 방식이 조사이든 자료 기반이든, 결국 세금 고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과세자료는 신고 이력과 거래 기록이 비교적 명확한 납세자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성실하게 신고해 온 납세자일수록 체감 부담을 먼저 느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성실납세자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구조로 비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불복건수는 줄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과세자료 처리 성과를 평가할 때 처리 속도나 가산세 감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과세자료 처리 건수 대비 불복건수, 그리고 불복금액의 규모가 함께 제시될 필요가 있다. 불복건수는 행정 판단에 대한 납세자의 수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고, 불복금액은 그 판단이 납세자에게 얼마나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처리 속도는 빨라졌지만 불복건수가 늘어났다면, 이는 과세의 신속성은 개선됐으나 납세자의 수용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불복건수는 줄었지만 불복금액이 커졌다면, 소수 납세자에게 부담이 집중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지표 없이 처리 실적만 강조할 경우, 성과의 이면에 존재하는 납세자 부담은 가려질 수 있다.
따라서 과세자료 처리 정책의 효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산세 감소, 본세 증가, 불복건수 및 불복금액을 함께 공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과세자료 처리는 언제까지여야 하는가
과세자료 처리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년 대비 단축 여부나 과거 평균과의 비교는 행정 효율이 개선되었는지는 보여줄 수 있지만, 납세자의 부담이 실제로 해소되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기준 자체가 늦어져 있다면, 여전히 납세자에게 부담이 되는 과세도 ‘성과’로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바람직한 접근은 과세자료 처리에 대한 적정 기준 시점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세자료 발생 시점이나 법정 신고기한을 기준으로 1년 이내 처리 여부를 핵심 지표로 삼는 방식이다. 이 경우 평가는 ‘얼마나 빨라졌는가’가 아니라, ‘납부지연가산세가 부담으로 인식되지 않는 시점 이전에 처리되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게 된다.
아울러 가산세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뿐만 아니라, 과세자료 처리로 인해 본세가 얼마나 더 부과되었는지, 즉 세수 변화도 함께 설명될 필요가 있다. 가산세 감소와 본세 증가를 함께 놓고 볼 때에만 납세자 부담이 실제로 완화되었는지, 아니면 부담의 형태만 달라졌는지를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다.
성과평가가 납세자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과세자료 처리 속도 개선의 이면에는 직원 성과평가 체계의 영향도 존재한다. 성과평가는 행정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한 수단이지만, 징수와 과세는 민원 강도와 불복 가능성이 높은 업무라는 특수성이 있다. 특히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체납과 분쟁이 동시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리 건수나 속도 중심의 평가가 과도하게 작동할 경우, 현장에서는 납세자와의 갈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성과평가는 단순한 실적 지표를 넘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합리적 판단과 납세자 소통을 유지하는 공무원의 노력이 함께 평가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는 납세자 부담 완화뿐 아니라, 세무공무원의 근로 의욕과 행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하다.
과세자료 처리 속도 개선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조세행정의 평가는 ‘얼마나 빨라졌는가’가 아니라, ‘언제까지 처리되어야 납세자에게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가’라는 기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고환율, 소비 침체, 물가 상승이라는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는 행정 효율성 못지않게 납세자가 체감하는 부담과 인식이 중요하다. 절대적 기준에 기반한 과세자료 처리, 불복 지표의 투명한 공개, 그리고 현장 여건을 반영한 성과평가가 병행될 때, 이번 개선은 단기 성과를 넘어 납세자 신뢰를 높이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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