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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 세무이야기] 기업 자금은 말일에 도는데, 부가가치세는 25일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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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 세무이야기] 기업 자금은 말일에 도는데, 부가가치세는 25일 납부?

1977년 이후 멈춰 선 부가가치세 신고기한

우리 조세제도의 근간은 신고납세제도다. 정부가 아닌 납세자가 스스로 세금을 신고하여 확정한다. 그렇다면 제도 설계의 출발점도 명확하다. 납세자가 정확하게 신고할 수 있는 시간과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신고가 정확해야 납세협력비용도 줄고, 분쟁도 줄며, 세정에 대한 신뢰도 유지된다.

그런데 1977년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이후 신고·납부기한은 여전히 ‘과세기간 종료 후 25일’이다. 반면 다른 대부분의 세금은 25일이 아닌 월말이다.

그 이유는 제도가 도입된 1970년대의 환경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수기 기반의 자료 집계, 제한된 국고 운용 역량, 그리고 세정 인프라의 미성숙 속에서 조기의 세수 확보가 정책적으로 중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전자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카드 매출자료, 홈택스 기반 전자신고가 일상화되었다. 기업의 결산과 결제 관행도 월말 중심으로 고도화되어 있다. 부가가치세 신고기한만 과거의 리듬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다른 세금은 말일, 부가가치세만 25일

대부분의 세금은 일정이 ‘말일’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납세자는 월말을 기준으로 한 달의 결산과 자금 집행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납세자의 일정 관리 비용을 낮추고 자금집행의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따라서 특정 세목만 예외적으로 다른 날짜를 고집한다면 혼란은 커지고, 착오로 인한 불이익이 늘어난다.

부가가치세가 바로 그 예외다. 1월, 4월, 7월, 10월에는 회계·자금·신고 업무가 월말 리듬에서 갑자기 ‘25일 리듬’으로 바뀐다. 이 ‘5일’은 숫자상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결산과 신고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충분한 간격이다. 특히 전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에게 그 부담은 더 크다.

5일의 공백이 만드는 기업의 자금 경색

부가가치세는 소비자가 부담하고 사업자가 대신 납부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기업 간 거래가 외상과 기성, 익월 결제로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기업에 ‘현금이 쌓여 있다’는 가정이 성립하기 어렵다. 상거래의 결제는 말일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매출은 발생했지만 대금은 30일에 입금되는 상황에서, 25일까지 부가세를 납부하라는 요구는 자금 경색을 강요한다.

이에 따라 기업은 단기차입 등으로 버티게 되고, 그 금융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에게 돌아간다. 유동성이 넉넉한 대기업은 버틸 수 있어도, 자금 회전이 촘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5일의 공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디지털 세정의 역설: 신고기간은 25일, 실질은 10일

오늘날 부가가치세 신고의 핵심은 입력이 아니라 국세청 자료와의 상호 검증이다.

홈택스가 제공하는 전자세금계산서 합계, 카드 매출·매입, 현금영수증 자료 등은 신고의 기준점이 된다. 납세자의 자체 장부와 전산 자료를 대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세청 자료가 완전히 집계되기 전에는 신고가 사실상 멈출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세청 자료가 신고월 15일 이후에야 안정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명목상 신고기간은 1일부터 25일까지이지만, 실질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기간은 15일부터 25일까지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실제 업무일은 더 짧다.

이 지점에서 현행 신고기한 25일은 신고납세제도의 기본 취지를 훼손한다. 정확한 신고를 전제로 하는 제도라면, 정확하게 신고할 수 있는 시간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은 납세자에게 ‘정확성’이 아니라 ‘기한 준수’를 우선시하도록 한다.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신고할 경우 가산세 분쟁이 발생하고, 행정 비용이 늘어난다.

주요 선진국은 신고에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어

해외 주요국을 보면 한국처럼 촉박한 기한을 경직되게 고수하는 방식은 드물다. 영국은 신고기한으로 과세기간 종료 후 1개월 + 7일을 준다, 일본은 2개월, 캐나다는 1개월을 준다.

국제적 흐름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신고기한 25일에서 말일로 5일정도 늦춘다고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확성이 높아지고 납세협력비용이 줄어드는 편익이 축적된다.

반대 논리는 왜 더이상 설득력이 약한가

납부기한 조정 논의에서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국고 이자 손실, 다른 하나는 공무원 월급일이 25일이라는 점이다. 과거 국고 운용이 경직되어 있던 시절이라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5일 내외의 세수 유입 시차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국가 재정 전체에서 보면 극히 제한적이다. 반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이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적될수록 커진다. 조기 세수 확보를 위해 민간에 금융비용과 야근비용, 오류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가 과연 합리적인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또 하나의 부차적인 우려는 환급 지연이다.

수출 기업 등 환급이 중요한 업종에서는 기한이 늦어지면 환급도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도 재설계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조기환급은 현행 기한을 유지하거나, 먼저 신고한 건부터 먼저 처리하는 방식으로 환급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이는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한 과제다.

신고기한을 ‘말일’로 일치시키는 것은 제도 합리화

부가가치세 신고·납부기한을 25일에서 말일로 조정하자는 제안은 단순히 편의 제공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납세자의 자금 흐름과 디지털 자료 제공 구조, 현장 민원 분산, 그리고 신고납세제도의 기본 취지를 감안한 조세행정의 합리화다.

세금은 얼마나 빨리 걷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걷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확한 신고가 늘수록 수정·경정·불복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줄고, 성실신고 문화가 자리를 잡는다. 국가가 납세자 중심의 세정을 말한다면, 납세자가 정확히 신고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부가가치세 신고·납부기한의 조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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