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 휴전을 선언했지만 양국 해상봉쇄 대결은 격화하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나라들의 난처한 상황은 계속됐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기뢰 제거에 6달이 걸릴 수 있다는 보도 등 해협의 이른 정상화에 대한 기대도 낮아지는 중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기한이 다음 달 1일에 만료된다는 지적이 나와 관심이 쏠린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를 보면 22일(이하 현지시간) 이란혁명수비대(IRGC)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두 척을 나포해 이란 영해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나포된 화물선 'MSC 프란세스카호'와 '에파미논다스호'가 허가 없이 운항하고 항행 보조시스템을 조작해 해협을 은밀히 빠져 나가려 시도하며 해양 안보를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AP> 통신을 보면 라이베리아 선적 에파미논다스호의 관리 회사 데크노마르는 해당 선박이 오만 해안에서 "유인 포함으로부터 접근 및 발포"를 당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공격으로 이 선박의 함교가 파손됐다고 설명했다. 파나마는 파나마 국적 프란세스카호에 대한 "불법 나포"를 규탄했다. 통신은 이날 프란세스카호 나포 전 또 다른 화물선도 공격 당해 해상에 정지됐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 방송은 발포 공격을 받은 이 선박의 이름이 '유포리아호'라고 설명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은 2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완전한 휴전은 해상봉쇄와 세계 경제에 대한 인질극이 중단되고 모든 전선에서 시오니스트(이스라엘)의 전쟁 도발이 멈출 때만 의미가 있다"며 "휴전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위반되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 해상봉쇄 범위를 아시아까지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로이터> 통신은 미국, 인도 해운 소식통 및 서방 해양 안보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군이 최근 며칠간 인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근 아시아 해역에서 이란 국적 유조선 최소 3척의 항로를 우회시켰다고 보도했다.
소식통과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이 중 한 척은 초대형유조선 '딥시호'로 원유를 일부 적재한 상태였으며 일주일 전 말레이시아 해안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고 한다. 최대 적재량 100만배럴인 좀 더 작은 유조선 '세빈호'도 적재량 65%를 채운 상태에서 차단됐다. 이 배는 한 달 전 말레시아 해안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200만배럴 원유를 가득 적재한 이란 국적 초대형유조선 '도레나호'도 차단됐는데 이 선박은 3일 전 남인도 해안에서 마지막 목격됐다고 한다. 미 중부사령부는 2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도레나호가 인도양에서 봉쇄를 위반하려 해 미 구축함의 호위를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부사령부는 지금까지 이란 봉쇄 조치 일환으로 미군이 선박 29척에 회항 및 항구 귀환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해운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란 국적의 또 다른 유조선 '데르야호'도 미군에 차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선박은 지난 17일 인도 서부 해안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고 한다. 통신은 데르야호가 지난 19일 미국의 이란산 원유에 대한 임시 제재가 만료되기 전 이란 석유를 인도에 하역하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양쪽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상대방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경쟁하는 중"이라며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수로에서 무력 외교가 펼쳐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WP "미 국방부 '기뢰 제거 6달 소요' 의회 보고"…21일 호르무즈 통과 선박 단 1척
호르무즈 해협에 설치된 기뢰 제거에 6달이 걸릴 것이라는 보도도 나와 휴전 뒤 선박 통행 즉시 원활화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다. 22일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가 전날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이러한 전망을 공유했다고 해당 논의에 정통한 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고엔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에 설치한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6달이 소요될 수 있으며 미국과 이란 전쟁이 끝날 때까진 그러한 작전이 수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신문은 이는 "평화 협정 체결 뒤에도 휘발유 및 유가가 장기간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최근 징후"라며 "이번 분쟁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 올해 말이나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세 당국자는 의원들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과 그 주변에 20개 이상의 기뢰를 설치했고 일부는 GPS 기술을 통해 원격 배치해 미군이 배치 과정을 탐지하기 어렵게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나머지 기뢰들은 이란군이 소형 선박을 이용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휴전 선언이 무색하게 호르무즈 해협 경색은 심화 중이다. 22일 <뉴욕타임스>(NYT)는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1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이 한 척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전쟁 이후 하루 평균 해협 통과 선박이 8척 가량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쟁 이전엔 하루 130척 가량의 선박이 이 해협을 지났다.
EU "5년 새 화석연료 수입 의존 쓴맛 두 번·자국산 청정 에너지 전환을"
호르무즈 해협의 신속한 정상화 전망이 흐려지고 유가 상승이 지속되며 유럽에선 대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1일 독일 최대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항공유 절감을 위해 10월까지 항공편 2만편 운항을 감축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에 자국산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유럽인들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에 대한 대가를 두 번째 치르고 있다"며 "중동 분쟁 확전 뒤 EU는 높은 가격 탓에 에너지 수입에 240억유로(약 41조6000억원)를 추가 지출했지만 받은 연료 양은 한 톨도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지정학적 상황은 청정·안전 에너지로의 전환 가속이 경제·안보에 필수적이라는 걸 냉엄하게 상기시킨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80% 이상이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기 때문에 해협 장기 폐쇄로 아시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해상 대결 격화가 군사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레바논 휴전도 위태롭게 지속 중이다. <로이터>는 레바논 고위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22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공습으로 현지 취재 중이던 레바논 신문 알아크바르 기자 아말 칼릴(43)이 숨지고 동행한 프리랜서 사진가 제이나브 파라즈가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알타이리 마을 인근에서 취재하던 중 앞차에 이스라엘 공습이 떨어지자 근처 집으로 피신했지만 이 집 역시 이스라엘 공습 대상이 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백악관, 이란 최근 선박 나포 "휴전 위반 아니다"
다만 백악관에선 일단 휴전 지속 의지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이 나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미 폭스뉴스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선박 나포 행위를 휴전 협정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 배들은 미국 배도, 이스라엘 배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란이 "해적질"을 벌이는 것이지 "해협을 장악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 "3~5일 마감시한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마감 시한을 설정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그가 시간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마감 시한을 공지하지 않아 휴전이 사실상 무기한으로 여겨진 가운데 미 매체 <악시오스>가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연장 용의 기한이 3~5일 정도라고 미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해상봉쇄에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월1일로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전쟁 벌일 수 있는 '60일' 마감
한편 22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1973년 전쟁권한법에 의해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벌일 수 있는 60일 시한이 5월1일에 끝난다고 지적하며 전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후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신문은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미 60일 초과 군사 행동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은 대통령이 의회에 서면 증명할 경우 추가 30일 연장을 허용하지만 그 목적을 안전한 철수로 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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