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성폭력 등 피해를 입은 국군 병사 가운데 상담 또는 신고를 선택한 비율이 40%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간부의 상담·신고율은 11.1%로 병사보다도 크게 낮았다. 2차 피해가 걱정돼 신고하지 못했다는 이가 많아, 성 고충 대응 체계의 신뢰성과 효율성,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9일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군 성 고충 대응 체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국방부가 지정한 육군·해군·공군·해병대 8개 부대의 간부·병사·성고충전문상담관 160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지난 1년 간 병사들이 직접 경험한 성 고충을 유형별로 구분하면, 성희롱 3.1%, 성폭력 1.8%, 디지털 성폭력 1.8%로 나타났다. 다른 피해자의 성 고충을 목격한 비율은 성희롱 1.9%, 성폭력 0.6%, 디지털 성폭력 0.2%였다.
간부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성 고충을 경험한 비율은 성희롱 3.3%, 성폭력 1.9%, 디지털 성폭력 1.1%로 나타났다. 목격한 비율은 성희롱 5.9%, 성폭력 1.9%, 디지털 성폭력 0.4%였다.
성 고충 피해를 경험한 병사 가운데 상담, 신고를 택한 비율은 40%에 불과했다. 침묵을 택한 이유는 '신고 후 불이익이나 보복 등 2차 피해가 우려돼서', '상담을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각각 33.3%로 가장 많았다. 인권위는 이를 "병사들이 성 고충 피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후속 보복에 대한 두려움, 사안 축소 인식 등 복합적 이유로 신고를 주저한다"고 해석했다.
간부의 상담 및 신고율은 11.1%로 병사보다도 낮았다. 이들은 2차 피해 우려(25%) 외에도 군 성 고충 대응 체계에 대한 신뢰 부족(25%)과 평판 문제(25%) 등을 이유로 대응을 꺼렸다. 성 고충 문제를 심각하다고 응답한 여성간부의 비율은 12.5%로 남성간부(7%)보다 컸다.
병사들은 현행 성 고충 상담·신고 체계에 대한 문제점으로 신고자·피해자 비밀보장 미흡(30.6%)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성 고충 신고처리 절차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요소로는 '처리 기한 단축 및 준수 강화'(39.8%)와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39.5%)를 꼽았다.
간부들도 성 고충 대응 체계 문제점으로 '신고자·피해자 비밀보장 미흡'(27.8%)을,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요소로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40.4%)를 꼽아 병사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군 당국이 성폭력 대응 체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박순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성고충전문상담관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인력이 4878명으로 미국(134명)과 견줘 절대적으로 높다"며 "상담 인력 확충, 24시간 핫라인 설치 등을 통해 피해자 지원 제도의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구슬 현장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은 성폭력 신고 구조 정비, 피해자 보호조항 신설 등을 통해 기존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준다"면서도 "이런 개선은 여전히 개별 규정 보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성폭력 규율의 독립성 확보, 신고 및 대응 절차 간 관계 정립, 피해자 권리의 체계적 명문화, 2차 피해 방지 체계의 법률화 등 핵심 과제를 포괄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 내 성 고충 처리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민간 참여가 늘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 위원은 "군에서 발생하는 성 고충은 대부분 가해자가 상급자인 권력형 성 고충인 만큼 외부 민간위원이 참여해야 중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기대할 수 있으나, 현재 민간인 전문가는 징계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만 참여할 수 있고 의결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 고충 징계위원회 구성 시 민간인 전문가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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