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재고와 광주제일고의 경기에서 낯뜨거운 장면이 나왔다. 배재고 일부 선수가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친 것이다. 불과 한 달여 전,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홍보 문구가 5·18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터였다. 구호는 특정 지역과 역사적 비극을 겨냥한 조롱으로 받아들여졌다.
배재고는 사과문을 냈고, 광주일고의 공식 항의에 따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5월 충암고와 광주일고의 경기에서도 충암고 선수가 "내란의 요람"이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발언의 사실관계와 맥락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던진 질문만큼은 이미 분명하다. 교육의 장이어야 할 고교 스포츠에서, 상대의 지역과 역사적 상처를 자극하는 언어가 어떻게 선수들의 집단 구호가 될 수 있었는가.
나는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이 고교·대학 팀과 겨루는 유튜브 예능 〈불꽃야구〉를 보면서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 고교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팀 사기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대선배인 상대 선수를 묘하게 '긁는' 구호를 함께 외치는 모습 때문이었다. 혈기 넘치는 학생들의 장난으로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장난이 반복되고 제지받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것은 팀의 문화가 된다. 이번 사건은 그 불편함이 단순한 세대 차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나는 미국에서 24년 가까이 생활해 왔고, 두 딸이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하는 과정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미국 스포츠 문화가 언제나 모범적인 것은 아니다.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도발이 끊이지 않고, 선수들 사이의 트래시 토크도 존재한다. 중요한 차이는 야유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유니폼을 입고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에게 관중보다 훨씬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는 데 있다.
미국 고교 스포츠의 규칙과 지침을 마련하는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NFHS)은 2026년 고교야구 중점 지침에서 이른바 '벤치 자키잉(bench jockeying)'을 명시적으로 경계한다. 더그아웃에서 상대 선수나 심판을 향해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조롱하고 위축시키며 당황하게 하려는 행위는 교육 기반 스포츠가 요구하는 행동 기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위반에는 상황에 따라 경고, 벤치 제한, 퇴장이 뒤따른다. 지침은 고교야구의 목표가 승리만이 아니라 인격 형성과 스포츠맨십, 상호 존중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치어리더 같은 공식 응원단도 예외가 아니다. NFHS는 응원단에 '적절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요구하며, 상대를 창피하게 하거나 조롱·비하하려는 응원을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로 규정한다. 할리우드 영화 〈브링 잇 온〉에는 치어리더들이 상대의 외모를 거침없이 비하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두 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는 철저한 영화적 과장이다. 실제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가 다쳐 쓰러지면, 나는 치어리더들이 곧바로 응원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자기 학교 응원석의 조롱이 도를 넘으면, 마칭 밴드가 연주 볼륨을 높여 그 소리를 물리적으로 덮어 버리기도 한다. 그 순간 응원단은 군중의 감정을 부추기는 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절제시키는 교육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미국 대학 스포츠에서도 '기관의 통제와 책임', 그리고 '스포츠맨십과 윤리적 행동'은 핵심 원칙으로 다뤄진다. 선수의 잘못을 개인의 일탈로만 돌리고 학교와 지도자가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클렘슨대와 사우스캐롤라이나대의 미식축구 경기에서 벌어진 대규모 난투극이다. 당시 두 대학은 출전 자격을 얻고도 스스로 포스트시즌 보울 경기 참가를 포기했고, 관련 선수들에게는 출장 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경기 양상이 미식축구를 넘어 대학의 품격과 신뢰의 문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도 치열한 라이벌전은 있다. 내가 석사 과정을 밟은 클렘슨대에서는 라이벌전 주간에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마스코트 모형을 불태우는 '코키의 장례식'을 연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도 거대한 호랑이 조형물을 태우는 '타이거 번'으로 맞선다. 얼핏 거칠어 보이지만, 이는 경기 전 정해진 공간에서 학교가 관리하는 상징적 의식이며, 무엇보다 선수가 아니라 학생과 팬의 몫이다. 경기 중 더그아웃이나 필드에서 상대 선수의 출신 지역과 역사적 상처를 겨냥해 집단으로 모욕하는 행위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라이벌전에 풍자와 도발이 있을 수 있고, 스포츠의 열기를 모두 점잖은 박수로 바꿀 필요도 없다. 다만 넘지 말아야 할 선과 지켜야 할 주체는 분명하다. 첫째,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관중과 동일한 방식으로 상대를 조롱할 수 없다. 특히 더그아웃과 경기장에서 이뤄지는 조직적인 상대 비하는 스포츠맨십 위반으로 제재받는다. 둘째, 아무리 상대를 깎아내려도 인종·종교·성별·성적 지향, 그리고 공동체의 비극을 끌어와 모욕하는 언어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유니폼을 입은 선수와 공식 응원단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학교의 이름이 붙는다.
이번 일을 몇몇 학생의 철없는 행동으로만 끝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배우며 다시 성장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 처벌만으로 교육이 완성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감독과 코칭스태프, 학교, 대회 주최 기관은 다른 차원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구호가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지도자들은 알고 있었는지, 현장에서 왜 즉시 중단시키지 못했는지, 평소 어떤 스포츠맨십과 역사·인권 교육이 이뤄졌는지를 밝혀야 한다.
재발 방지책도 사과문 한 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선수와 지도자에게 적용할 응원·언행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고, 상대 비하와 역사 왜곡, 지역·인종·성별에 대한 혐오 표현을 명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둘째, 심판과 경기감독관에게 즉각적인 중단과 제재 권한을 부여하고, 위반이 반복되면 지도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셋째, 모든 고교 야구부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스포츠맨십·인권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학원 스포츠의 본질은 이기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최선을 다해 겨루고, 승패와 관계없이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연장이다. 학생들이 입은 유니폼에는 학교의 역사와 명예,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수준까지 함께 새겨져 있다. 학생은 용서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학생을 그렇게 응원하도록 내버려 둔 어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논란이 몇몇 선수에 대한 비난으로 소진되지 않고, 한국 학원 스포츠가 '유니폼의 무게'를 다시 가르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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