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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을 메꾸는 것은 AI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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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을 메꾸는 것은 AI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서리풀연구通] 아프리카 베냉 사례로 본 'AI 의료 만능론'의 허점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AI 기본 사회' 기조 아래, 그 의료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AI 기본 의료' 정책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고 인프라를 개선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장밋빛 낙관이 두드러진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4월 "AI 기술을 보건의료 전반에 도입하여 지역·필수·공공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의료 취약지에 근무하는 이들의 반응은 싸늘했는데, 진료할 사람도 기본적으로 부족할뿐더러 환자의 의료 정보를 기록하는 전산시스템(EMR)도 낙후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국내 의사 커뮤니티 플랫폼 메디게이트에서 올해 실시한 온라인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의료기관에서 AI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 중인 비율은 19.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도입된 영상판독 AI(73.9%) 마저도 정확도 부족과 답변 검증의 번거로움에 대한 불편함 등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 현장에서 낮은 AI 도입률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 AI 보건의료인 직무교육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역량이 현장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며 그동안 수도권에 집중됐던 의료 AI 경험 및 리터러시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진료 효율성과 의료접근성 차이를 줄이고, 지역 간 의료 질 격차를 좁히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AI 수용성을 높이고, AI와 관련한 인프라를 개선하기만 하면 의료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의료 공백이 해결되는 것일까? 오늘 아프리카 베냉 지역을 중심으로 AI 의료시스템이 실제 임상의들에게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살펴본 연구를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 알고리즘 윤리와 의료 다원주의 - 자동화와 세계적 불평등 사이에서 돌봄을 제고하다).

아프리카 베냉은 1960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기에 의료 체계는 유럽에 기초하고 있다. 보건시스템은 국제기구와 원조 기구들로 인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의료기기 시장 성장률이 연평균 6%에 달하는 국가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구소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인력과 인프라를 AI로 보충하려고 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두 나라의 역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자원부족을 기술로 대체하려는 논리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베냉의 의료 현장 실태를 살펴보면, 병원들은 의료 장비가 부족하고, 정전도 잦으며 안정적인 공급망이 부재할뿐더러 부족한 의료 인프라를 AI 도구가 실제상황에서 채워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베냉에서 의료 인프라를 포함한 제도적 공백을 메워주는 것은 비공식적 임상 네트워크였다. 간호사와 기술인력들은 메신저를 통해 선배∙동료에게 자주 자문을 구했고, 농촌 진료소는 도시 병원과의 개인적 인맥을 통해 해결했다. 지역사회 보건요원들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환자의 중증도 분류와 상담을 진행했는데, 이는 단순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암묵적 지식과 상황에 민감한 추론, 공동체적 책임에 의해 형성된 돌봄의 토착적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었다.

AI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한 물리적 인프라를 차지하고서라도 임상의들은 AI 시스템 사용을 보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AI 알고리즘 고유의 표준화된 지표들이 임상 환경과 충돌하여 상황적 필요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아 말라리아 응급 분류 과정에서 간호사들이 임상적 판단을 할 때 모바일 분류 애플리케이션에 내장된 의사결정나무를 사용하기 보다는 부모의 설명, 신체적 단서, 과거 병력, 맥락적 정보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 더 빨랐고, 초음파 진단 분야에서도 도시 주변 지역의 기사들은 영상분류도구의 일관성 없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결과값을 쓰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비공식적인 동료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것을 택했다. 농촌지역 산모건강관리 분야의 지역 보건요원들도 위험예측도구가 생의학적 지표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실제 환자의 상태를 분류할 때 유용하지 못하다고 인식했다.

이들은 디지털 분류 도구보다 서술적 설명, 신체검사, 동료와의 상담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국 임상적 의사결정에서의 정당성이 기술적 정교함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장의 취약성, 사회적 배경, 물질적 제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의료 취약지의 의료기관은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어 기기 자체도 구형이거나 데이터 시스템 간 연결도 취약하다. 공공의료기관 의사가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원격으로 자문받는 시스템과 임상 네트워크가 더 시급하다고 지적한 것처럼, AI 기술 도입만으로는 의료 공백과 의료 지역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다. 누군가는 AI 기술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부언하지만, 애초에 의료 취약지에 사람이 없는데 AI 기술로 뭘 한단 말인가. 또한 의료에서 중요한 임상적 추론은 단순히 데이터 누적을 통한 표준화로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임상의 조건은 다양하며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의 서사(narrative) 역시 다양하기에 상황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원래도 낙후되고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데이터값이 불완전하거나 해석이 불확실한 결과를 내놓는 AI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임상적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AI 기술에게 주겠다는 것이고, 현장의 취약성, 사회적 배경, 물질적 제약에 대응해왔던 기존 의료진 능력을 무시하는 행위다. 기존에 지역 상황과 맥락에서 수행해왔던 의료 업무 흐름의 리듬을 AI 시스템에 맞추겠다는 것은 AI 시스템을 보조도구로 쓰겠다는 기존의 취지에서 전도된 것이 아닌가?

의료서비스 질을 올리는 것은 사람이지 기기가 아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의료진이 하나하나 모든 걸 입력해야 하는 상황, 혹은 AI가 예측한 나의 응급상황이 예상과 달리 갑자기 악화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AI가 나의 고통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제시한 치료마저 효과적이지 않은데 이를 토로할 의료진이 보이지 않아 환자가 방치된다면 어떤가?

누군가는 환자는 의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자의 고통을 설명하고 들어줄 수 없는 상태는 치료가 아니다. AI가 의료공백을 메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없는 곳에서 그 공백을 고착화하는 기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처럼, 막연한 AI 만능설에 취하기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의료 불균형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대로 직시할 때다.

* 서지정보

Maccaro, A. (2026). Algorithmic ethics and healthcare pluralism: rethinking care between automation and global inequality. AI & SOCIETY, 1-12.

▲병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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