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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둔하다 싶었던 그 검사, 알고 보니 가장 많은 재심을 만든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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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둔하다 싶었던 그 검사, 알고 보니 가장 많은 재심을 만든 사람이었다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정용식

일반 형사사건을 조작하고 신앙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만든 검사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정용식(鄭鏞植, 1941~) 항목에서 가장 인상적인 묘사는 피해자이자 씨알사상가인 박재순 박사의 회고였다.

"검사는 경상도 사람으로(실제로는 전남 장흥 출신)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었으며 머리가 좀 둔하다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둔해 보이는' 검사가, 책에 따르면 "재심에서 무죄가 난 과거사 사건 3건 이상을 담당한 검사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시국사건 전문 공안검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많은 인생을 조작으로 망가뜨렸다.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일반 사건과 공안 사건을 넘나든 검사

정용식은 1941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1958년 광주고, 1962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같은 해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는데, 동기로는 이재화, 김헌무(1940~), 이규명(1934~1988) 등이 있다. 1964년 군법무관을 거쳐 전주지검, 대전지검 홍성지청, 춘천지검을 돌며 검사생활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법조인맥으로도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이다. 박종철 사건과 건국대 사건을 지휘한 공안검사 최환은 정용식의 손위처남이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검사 윤석만은 손아래동서다.

세계사 속의 동류, '평범함의 가면을 쓴' 인물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 법정에서 평범하고 둔감해 보였던 것처럼, 정용식도 박재순 박사의 눈에 "머리가 좀 둔하다 싶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평범함 뒤에 가려진 것은, 위증죄로 무고한 목격자들을 구속하고 완전히 날조된 공소장을 쓰는 치밀한 실행력이었다.

1972년 춘천 강간살인사건, 시한부 검거령이 만든 인생파괴

정용식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72년 춘천역전 파출소장의 9세 딸 강간살해 사건이다. 춘천 비슬군 일대를 해결하지 못한 미제사건이 잇따르자, 내무부장관 김현옥이 "10일 내 해결"을 지시하며 관계자 문책까지 경고했다. 마지막 날 강원도경은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원섭(당시 36세)을 범인으로 검거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경찰은 고문으로 자백을 받고, 증거를 바꿔치기했다. 시신근처에서 발견된 연필이라며 제시한 것은 정원섭 아들의 것이 아니라 다른 색이었다. 혈액형 검사결과 진범의 음모(陰毛)는 A형이었으나 정원섭은 B형이었다는,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조차 수사서류에서 빼버렸다. 정용식의 검찰은 이 모든 증거조작을 알면서도 묵인했고, 정직하게 증언한 목격자 3명을 오히려 위증죄로 구속했다.

정용식은 정원섭에게 "살인범은 부인한대요. 으레 부인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부인하도록 한번 만들어본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원섭은 1973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15년을 복역하다 1987년 가석방됐고,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시국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정원섭은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명예로운 용서"를 선언했지만, 정용식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양승태(1948~) 대법원이 소멸시효 기준을 갑자기 바꿔버려, 정원섭은 단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했다.

1981년 한울회 사건, "이심전심으로 공산사회를 결의했다"

정용식의 반헌법 행위의 또 다른 정점은 1981년 한울회 사건이다. 대전의 평범한 기독교 청년 신앙모임 회원들을 충남도경이 불법감금·고문해 반국가단체로 조작했다. 정용식이 작성한 공소장은 "이심전심으로 공산사회를 이루기로 합의했다"는 식의, 법정에서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황당한 논리로 가득했다. 피해자 박재순 박사는 검사가 증거로 제시한 책이 가톨릭 출판사의 동화책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고 회고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를 사회변혁 의식화의 증거로 내세운 것이다.

1982년 아람회 사건, 백일잔치가 반국가단체가 됐다

같은 시기 정용식은 아람회 사건도 담당했다. 친구의 딸 백일잔치에 모인 평범한 사람들을 불법감금·고문해 반국가단체로 조작했다. 1심에서 무기구형을 받았던 이규호는 7년형을 선고받았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한나 아렌트가 보여준 통찰은 명확하다. 거대한 악은 광신자가 아니라 평범하고 둔감해 보이는 관료에 의해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식이 보여준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시국사건 전문 공안검사도 아니었지만, 그의 손을 거친 사건마다 무고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정용식을 떠올렸다. 화려한 직함도 없이,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많은 재심무죄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한국 공안검찰 시스템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정용식 ⓒ반헌법행위자열전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4: 검찰 2』,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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