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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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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다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학벌은 이력서에, 위트는 마음에

한국사람 둘이 처음 만나면 삼 분 안에 서로의 이력서를 다 캔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어느 학교 나왔는지, 어디 사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심지어 부모님 직업까지 훑고 지나간다. 마치 파출서 취조실에 앉은 기분이다.

반면 영국사람 둘이 처음 만나면 삼십 분 동안 날씨 얘기만 한다. "오늘 좀 흐리죠?" "그러게요, 어제보다는 낫네요." 이런 대화를 무려 다섯 번쯤 반복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겨우 좋아하는 축구팀 하나 물어보면 그게 이 나라 최대치 친밀감이다.

두 나라 다 이상하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영국 쪽은 사람 자존심은 안 건드린다. 한국식 대화는 상대의 서열을 확인하는 취조고, 영국식 대화는 상대의 기분을 다치지 않게 빙빙 도는 왈츠다.

영국에서 삼십육 년을 살아 보니 이 나라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옥스퍼드니 케임브리지니 하는 이름값은 여전히 세다. 귀족흉내 내는 이들도 있고 계급냄새 풀풀 나는 억양도 남아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걸 대놓고 자랑하면 오히려 놀림감이 된다는 점이다. "나 옥스퍼드 나왔어"라고 하면 사람들 표정이 대번에 싸늘해진다. 마치 파티에서 혼자 정장 입고 나타난 사람 보듯 한다. 반면 "옥스퍼드 다니면서 공부보다 술집을 더 열심히 다녔지"라고 하면 그제야 다들 웃으며 좋아한다.

영국식 겸손은 사실 겸손이 아니라 고도의 처세술이다. 잘난 척은 촌스러운 거고, 잘난 걸 숨기는 재주가 진짜 잘난 거다. 한마디로 영국에서 자랑질은 청바지에 넥타이 매는 격이다.

목수와 의사가 같은 동네에 사는 나라

동네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자주 본다. 의사 친구 집과 목수 친구 집을 가 봤는데, 살림살이 수준이 별 차이가 없었다. 연봉은 몇 배 차이 나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사정없이 뜯기고, 적게 버는 사람은 여러 복지로 채워 준다. 그러니 의사 집에는 책이 많고 목수 집에는 나무가 많은 것 빼고는 딱히 부러워할 구석이 없다.

의사한테서 우쭐함도 못 느꼈고 목수한테서 기죽음도 못 느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쪽은 서재가 좁고 한쪽은 창고가 좁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자녀 학원 얘기를 꺼내며 은근히 서열을 확인하려 들었을 거다. "요즘 어디 학원 보내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온 가족 성적표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영국에서는 그런 짓을 하면 "쟤 왜 저래" 하는 눈초리를 받는다. 존중이란 원래 통장 잔고가 아니라 사람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건데,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나라가 이 기본을 오히려 더 잘 지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자본주의를 발명한 나라가 자본을 자랑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셈이니, 이것도 나름 웃픈 반전이다.

그렇다고 물론 영국이 천국은 아니다

물론 영국도 속을 들여다보면 헛웃음 나는 구석이 많다. 왕실 뉴스에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걸 보면 저게 무슨 시대착오인가 싶고, 기차는 툭하면 연착에 파업이라 정시성으로는 한국 근처도 못 간다.

오죽하면 영국 사람들은 기차가 제시간에 오면 오히려 놀라서 사진을 찍는다는 농담까지 있다.

관료사회는 느려 터졌고, 병원 예약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이가 아파 죽겠다는 사람한테 "다음 달에 오세요"라고 태연히 말하는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영국을 무작정 선진국 모범답안으로 떠받들 이유는 결코 없다. 다만 딱 한 가지, 사람을 학벌과 직업으로 줄 세우지 않는 문화만큼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이 가져와 볼 만한 것

요즘 한국을 보면 이 학벌 서열문화가 오히려 더 독해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의대 쏠림 현상이니 사교육비 폭탄이니 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결국 "청소나 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다들 그 좁은 문으로 몰려가는 거란 생각이 든다.

정작 필요한 기술인력은 부족한데 다들 책상 앞으로만 몰리는 이 기형적 구조는, 누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서열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서열표를 그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두가 그 안에서 줄을 서고 있으니, 이것도 참 신기한 집단최면이다.

물론 세금구조를 하루아침에 영국식으로 바꾸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정치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 그대로 베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적어도 대화의 시작을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대신 다른 걸로 바꿔 보는 시도 정도는 해 볼 만하지 않을까. 기술직 급여격차를 조금씩 줄여 가는 정책, 직업계고 졸업생을 진짜 동등하게 대우하는 채용 관행, 그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그냥 옆 사람한테 "무슨 일 하세요" 대신 "요즘 재밌는 거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습관부터 바꿔도 세상은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전철 청소하며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런던의 청소부를 떠올려 본다. 한국이었다면 댓글 창에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지"라는 악플이 줄줄이 달렸을 거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밤에는 재즈 바에서 건반을 두드린다. 부럽다면 부러운 건 그의 재즈 실력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회의 여유다.

낮에는 빗자루를 잡고 밤에는 건반을 잡는 인생, 이걸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회라면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사회 아닐까.

결국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건 제도 하나로 되는 일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청소해요"라고 답할 수 있는 사회, 그게 진짜 목표점 아닐까.

그날이 오면 굳이 영국까지 유학 갈 필요도 없을 거다. 학벌 자랑하다 촌스럽다는 소리 듣는 나라, 위트 하나로 밥값 하는 나라가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한국은 그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액셀을 밟고 있어서, 이 글도 결국 브레이크 한 번 밟아 보자는 우려에서 나온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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