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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처럼 멀어진 철도역… 자동차 지배 사회의 허술한 철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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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처럼 멀어진 철도역… 자동차 지배 사회의 허술한 철도 정책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자동차 지배 사회에 던지는 전현우의 유쾌한 도발 <외톨이 역을 떠나며>

내가 철도에서 일을 시작했던 90년대 중반의 한국 철도망은 1945년 해방 당시의 철도망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속도로를 포함해 비약적 확대를 거듭한 도로망과 비교하면 철도는 더욱 왜소해 보였다. 당연히 철도 수송분담률은 신기록을 경신하듯 떨어졌다. 낡은 시설, 긴 소요 시간은 시민들의 철도 이용 의지를 빼앗아 갔다.

더럽고 불편한 철도가 외면받고 적자가 쌓이면서 투자 부실로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대책이 필요했다. 정부는 철도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했다. 영국과 일본에서 시도된 민영화는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양산업이 된 철도를 더 이상 정부가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국영 한국 철도는 IMF 이후 민영화 추진에 이어 고속철도 분리 운영 시도가 노무현 정부에서 제동이 걸린 뒤 공사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고속철도가 도입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갔다. 박근혜 정권에서 황당한 논리로 추진됐던 고속철도 분리 운영이라는 괴이한 정책이 다가오는 9월 10년 만에 바로잡히는 걸 제외하면 철도는 발전해 왔다.

계속된 철도 투자로 경부 고속선의 단계별 개통과 기존선 개량, 새로운 노선이 속속 생겨났고 지금도 여러 노선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이 같은 흐름과 앞으로 예고된 정부의 철도 투자 계획을 보면 한국의 모빌리티 환경에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매우 꺼림칙하다. 식도 가득 무언가 걸린 것같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장이 더부룩한 느낌이다. 한국철도가 또는 한국의 모빌리티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이런 불편함에 대해 철학적, 지리적, 사회적, 환경적, 철도 공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철도 연구자 전현우의 <외톨이 역을 떠나며>이다. 2020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그해 한국출판문학상 학술저술상을 받은 <거대도시 서울 철도>와 2022년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 찾기>에 이은 철도 3부작 최종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새로운 철도 노선이 계획됐다거나 건설됐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아졌다. 준공을 알리는 커팅식 사진을 올리며 장밋빛 미래가 다가올 것처럼 포장된 뉴스와는 달리 새로 만들어진 역들은 공허해 보였기 때문이다.

1830년대 철도를 놓는 이유와 2020년대의 철도를 놓는 이유는 다르다. 지금은 기후 위기 시대,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섭씨 40도의 한여름 폭염을 노멀로 받아들이고 있는 때다. 철도는 자동차 이동을 줄이는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 철도의 확산은 그 지역의 자동차 이용을 줄이거나 억제하는 기점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황망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새로 만들어지는 상당수 역이 외톨이 역이 됐다. 역이 시민들 삶의 공간과 뚝 떨어져 존재한다.

철도가 도로와 비교할 때 갖는 압도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역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철도 이용률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철도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공간과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 존재해야 한다. 단거리나 국내선 항공과 철도 효용성을 비교할 때 철도는 도시와 도시의 중심을 직접 잇는데 항공은 도심 – 외곽 공항 – 외곽 공항 – 도심으로 이어져 교통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 시간이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 만들어지는 상당수 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들어서면서 철도의 장점을 훼손시키고 있다. 철도역을 공항 가듯 만들었다.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할 철도가 자동차 이용을 촉발하는 도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 전현우의 <외톨이 역을 떠나며> 표지. ⓒ민음사

책의 첫 문장은 "주차장이 협소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라는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포항역에 도착했을 때 본 현수막 글이다. "주차장도 없이 어떻게 기차를 이용하라는 건지…" 저자는 주차장이 없어서 기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 된 현실의 에피소드로 여정을 시작한다.

저자는 "지금의 포항역은 승용차 통행을 늘리는 자동차 지배의 세포다"라고 단언한다. 친환경 모빌리티 인프라였던 역이 사실은 자동차 지배 구조의 일환이라는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터미네이터에 맞서 인간들이 만든 반군 지하 기지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사실은 인간 소멸을 목적으로 한 인공지능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한국의 많은 이상한 역, 예를 들면 경주, 울산, 오송, 공주를 비롯한 신설되거나 개량된 노선에 들어선 역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고 이에 대한 비판적 칼럼도 여러 차례 쓴 바 있다. 역과 철도 노선이 인간의 생활공간에서 멀리 쫓겨난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지역 간의 갈등, 정치권의 개입, 철도공단의 건설비 부담을 낮추는 싼 토지 보상비, 건설 용이성, 주민들의 이설 또는 유치 요구, 문화재 보호, 정책 당국의 장기 비전 부재 등 단정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혼재해 있다. 일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빼고는 출발부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예정하고 있었다.

몇몇 곳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철도로 기능할 수 있는 노선을 주민들의 요구로 걷어내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철도를 기피 또는 혐오시설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 또한 이 같은 태도를 당연시한다. 선거철만 되면 물 만난 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철도 지하화 논리도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혐오스러운 철도에 대한 대안 공약이다. 천문학적 공사비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철도를 사라지게 하겠다는 정치인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철도 노선과 역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해야 할 것들은 빠져있었다. 철도가 한국 모빌리티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미래지향적 분석과 대안 모색은 없다. 정책 당국의 허술한 전망과 계획 속에 수백억이 들어간 철도 노선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몇 년 만에 폐쇄되는 것도 목격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철도가 새로 부설된다면 기존 교통체계와는 어떤 관련을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보완하고 협력해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성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교통에 대한 이해, 철도에 대한 이해, 환경에 대한 이해, 지역에 대한 이해가 도시 공학과 연결돼야 한다. 철도는 설계하고 건설하면 끝난다는 도그마적 기술 관료주의로 접근하면 안 된다. 한 번 건설하고 나면 보통 100년을 넘겨 이어가는 인프라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나 요구를 넘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철도 노선 계획 단계부터 철도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자동차 과두 지배체제가 만든 오래된 기획이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욕망과 편의성만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무한 성장 신화의 모빌리티에 대한 반영인 자동차 지배 현실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려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자 경고이다. 인간들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재조직된 사회이므로 자동차에 지배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이 같은 현실을 자연스러운 사회적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동차 지배에 반하는 생각들–도심 속도를 제한하거나 도로의 일부를 트램이나 버스에 양보하거나 도로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은 매우 불손한 반사회적 도전이다. 민식이법의 불편함–부당함이 아니라 불편함이다-을 성토하는 주장은 많은 지지를 받는 현실이다.

<외톨이 역을 떠나며>는 철도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모빌리티 현실이 어떤지를 조망한다. 또 철도가 많은 한계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이야기가 단지 철도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딛고 있는 지평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전문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읽는 재미가 넘쳐나는 책이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기록한 덕분에 기행문 같은 생동감이 있다. 관찰 대상에 대한 묘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경쾌함과 인문적 향취를 만끽하게 한다.

책의 부제는 "에너지 위기, 지방소멸, 기후변화를 넘는 길을 찾다"이다. 인류가, 한국 사회가 맞닿아 있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사안이지만 지금 나와 연결된 것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지 않을까.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길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정작 그 길로 한 걸음 같이 내디딜 수 있는 동행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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