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면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이 성과급으로 1인당 최대 6억 원을 받는다고 한다. 같은 시기, 서울의 한 중소기업이 연봉 4000만 원 사무직 한두 명을 뽑자 1800명이 몰렸다. 반도체는 역대급 호황인데, 청년 취업자는 44개월째 줄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43.9%까지 떨어졌다(국가데이터처, 6월).
승자독식 블랙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구조가 바뀐 것이다. 과거 세계 최대 기업 US스틸과 GM은 수십만 명을 고용했다. 오늘의 세계 최대 기업 엔비디아는 4만2000명으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만든다. 한국도 같다. 기업이 매출 10억을 올릴 때 따라오는 일자리는 2005년 20명에서 2022년 8명으로 반 토막 났고, 그나마 반도체는 2.1명에 불과하다(한국은행). 예전 기업은 벌면 사람을 뽑았다. 임금이 가계로 흘러 소비가 되고 다시 매출이 됐다. 지금은 그 통로가 막혀 간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을 줄인다. '고용 없는 성장'이다.
그 최전선에 청년이 서 있다. 지난 4년 사라진 청년 일자리의 98.3%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한국은행). 미국도 똑같다. AI 고노출 직종에서 22~25세 초년생 고용만 13% 줄었다(스탠퍼드대). 경력자는 오히려 늘었다. 청년부터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판이 바뀐 것이다. 이 위기는 AI 하나 때문에 갑자기 온 게 아니다. 디지털화·자동화로 일자리가 바뀌는 동안 교육은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했다. 그 미스매치가 쌓인 자리에 AI의 충격이 겹쳤다. 그래서 청년 고용은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
청년에게 필요한 '숙련의 시간'
왜 하필 청년의 5년인가. 20대의 4~5년은 첫 직장, 첫 프로젝트, 첫 실패, 첫 숙련이 쌓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비면 이후 10년, 20년이 함께 흔들린다. 구직이 1년 늦으면 이후 실질임금이 6.7% 줄어든다(한국은행). 한 번 늦은 출발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10년 뒤 세상이 좋아진다 한들, 지금 20대가 잃어버린 5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청년의 결정적 5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뭘 하자는 건가. 청년에게 '숙련의 시간'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지금 일자리 절벽 앞에 선 청년에게 필요한 건 평생 직장이 아니라 '숙련의 기회'다. 숙련된 사람은 AI와 함께 일하지만, 그 기회조차 못 얻은 청년은 AI에 밀려난다. 몇 달짜리 체험 인턴 말고, 미래 핵심 분야에서 실제로 일하면서 이론과 AI 활용 교육을 함께 받는 3~5년의 '청년 숙련일자리', 'K-숙련트랙'을 만들자. 대기업이나 중견중소 유니콘 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 중심으로 시행해서, 여기서 숙련된 인재들이 양질의 중소기업, 창업 등으로 흐르게 하자.
독일이 이런 도제 시스템 '아우스빌둥'으로 청년 실업률을 유럽 최저로 지켜 왔다. 수료자 10명 중 8명이 훈련받은 기업에 바로 채용되고, 몇 년 뒤엔 상당수가 같은 업종 다른 기업의 숙련 경력직으로 일한다(독일 IAB). 한 회사의 채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숙련 인프라인 것이다. 그냥 두면 6개월짜리 체험 인턴 100개로 끝날 일자리를, 사회가 지원해 3~5년짜리 숙련 일자리 500개로 바꾸자.
'청년숙련일자리', 'K-숙련트랙'은 청년과 기업과 사회에 모두 유익하다. 우선, 청년들에게는 좋은 일자리에서 숙련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넓어진다. 기업은 대학과 현장의 미스매칭을 해결할 수 있다. 이 숙련트랙을 거친 청년들은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이다. 대기업은 자신들의 현장에 필요한 인재 채용에서 경우의 수가 넓어지고, 중소기업도 훈련된 경력직 인재를 공급받을 수 있다. 경력직 청년 중에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지면 창업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민관 컬래버, 미래투자기금
돈은 어디서 나오나. 이재명 대통령이 "추가 세수를 전략적인 미래투자 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좋은 출발이다. 다만 지속하려면 세수만으론 불안정하다. 발상을 조금 바꿔 보자. 세금이 아니라 '출자'다. 국가가 초과 세수로 마중물을 대고, 반도체 특수의 주인공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기업, 뜻있는 자산가가 참여하는 민관 컬래버 '미래투자기금'을 만들자. 출자에는 세제 혜택과 회수의 길을 열어 주면 된다.
국가와 기업이 함께 지분을 갖는 '인재 공동투자'다. 세금이 한 번 걷으면 끝인 일방통행이라면, 출자는 지분과 권리를 받고 위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는 순환이다. 왜 반도체 기업인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가장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표적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함께하자는 상생의 제안이다. 기업에도 남는 장사다. 지금 기업이 가장 목마른 인재가 AI를 다룰 줄 아는 숙련 경력직인데, 이 기금이 바로 그 인재를 길러 산업 전체에 공급한다. 국민이 세금으로 도로를 깔고 인재를 길러 오늘의 반도체 신화를 함께 일궜듯, 이제 그 신화가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흐르게 하자.
AI 미래 불안 돌파할 스크럼, 스스로 짜자
어떻게 시작하나. 크게 벌일 것 없다. 시범사업이면 된다. 국가와 몇몇 기업이 공동출자해 '청년 숙련 일자리 1기'를 시도해 보고 성과를 검증하자. 되면 넓히고, 5년 안에 상설 제도로 만들자. 청년에게 흘러간 돈은 숙련이 되고, 숙련은 생산이 되어 산업으로, 세수로, 다음 세대의 기회로 되돌아온다. 청년 투자야말로 가장 확실한 '순환 투자'다. 올해 안에 '청년미래투자 특별법' 논의를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2030에게 말하고 싶다. 이 판을 바꾸는 힘은 정치가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 정치는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표가 모이는 곳, 에너지가 모이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다. 당신은 이 대전환의 청구서를 가장 먼저 받아 든 세대다. '청년의 결정적 5년'을 지키자고, 미래 전략을 세우자고 정치를 향해 요구하라. 당신이 말하기 시작하는 것, 그게 이미 사회적 합의의 시작이다. 우물은 함께 판다. 당신이 삽을 들면, 정치는 따라온다. AI 시대의 미래 불안, 돌파할 스크럼을 스스로 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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