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참 바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늘 당하고만 살았다. 착한 것과 바보는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착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혼자 속앓이를 한 적이 너무나 많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는데, 늘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본인의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일반적으로 바보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혹은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모두 스스로 바보라고 하고, 김수환 추기경은 자화상을 그려놓고는 거기에 ‘바보야’라고 써 놓았다. 위대한 종교가가 스스로 바보라고 한 것은 자신을 낮추어 표현한 것이지만, 필자의 경우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잘난 척하다가 당하고 마는 진짜 바보다.
은퇴한 지금은 혼자 글 쓰는 시간이 많아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지만, 과거에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는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맨날 사람들 만나고 다녔다. 논문도 써야 했고, 저서도 내야 했다. 여기저기 강연회 쫓아다니면서 잘난 척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대학에 근무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함께 학문을 연구할 것처럼 했지만 은퇴하고 나니 남은 제자도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동행할 것처럼 하더니, 남은 것은 “돈 꿔 달라”는 말과, 차용증 없이 꿔 준 탓에 받지 못한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 뿐이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동료 교수들도 가난한 필자에게 잠시만 돈을 융통해 달라고 하고는 아직도 갚지 않은 것이 부지기수다. 필자가 돈을 잘 빌려주게 생긴 모양이다. 돌아보면 그들이 필자보다 훨씬 잘 살았는데, 몇 백만 원 떼어먹고 재벌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개중에는 미안해서 가끔 전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꾸어준 돈을 받기는 이미 글렀다. 오호 애재라!
바보는 예전부터 사용해 온 말이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일컫는다. 떡보(떡을 잘 먹는 사람), 울보(잘 우는 사람), 잠보(잠을 많이 자는 사람), 늘보(행동이 느리거나 게으른 사람)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보’는 ‘사람의 뜻을 지닌 말’이다. 그렇다고 뭔가에 정통한 것은 아니고 습관적으로 뭔가를 잘하거나, 지나치게 뭔가에 빠져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젊은 시절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로 근무하던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본 적이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 차례였는데, 필자가 “군바리들 다 나오세요!”라고 했더니 육사를 나온 친구들이 ‘군바리’라고 했다고 투덜거렸다. 우리말에서 ‘바리’라는 말도 사람을 의미한다. ‘부리’, ‘비리’와도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혹부리’, ‘악바리’, ‘학비리’ 등이 그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고등학생을 ‘고삐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렇다면 ‘바보’는 무슨 뜻일까? ‘밥 + 보 = 바보’라고 본다. 즉 ‘밥’의 ‘ㅂ’이 뒤의 ‘보’와 어울려 ‘말음탈락’이 된 것이다. 이것을 다시 풀어본다면 ‘밥만 먹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고 풀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밥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성인들이 바보를 추구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벗어나서 바보처럼 사는 것이 오히려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 가수의 노래에 ‘바보처럼 살았구려’라는 노래가 있다. 필자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그 노래를 틀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바보처럼 살았지만 남에게 크게 해를 끼친 적은 없다. 그래도 선거판에서는 상대 후부가 필자를 ‘죽일 놈’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10년을 넘게 면 단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부동산 투기하느라 시골 땅을 샀다고 비방한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이제 바보의 예문을 몇 가지 보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태호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아?
태호는 약간 바보스러워 보이지만 늘 사리에 맞는 말만 했다.
그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히죽히죽 웃어 대는 바보가 되어 돌아왔다.
와 같이 쓴다.
바보처럼 사는 것이 좋은지, 바보의 삶이 좋은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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