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여자, 1인칭 주인공, 1인칭 관찰자.
총 3부로 구성된 조세인 작가의 에세이는 각 장이 주는 인상이 자못 상이하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글이 맞나 싶도록. 인물의 다각적인 면모를 입체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장마다 시점을 달리한 소설을 읽는 듯하다. 꽤 오랜 시간 조세인 작가와 소설을 나누었던 내게, 최근 출간된 그녀의 소설 같은 에세이 <1인칭 여자 시점>(글을낳는집>은 그렇게 읽혔다.
에세이의 한 꼭지가 넘어갈 때마다, 나는 큰 산 계곡 줄기를 거슬러 오르듯 구불구불한 시간의 궤적을 훑었다. 조세인과의 첫 만남. 내 집에 찾아온 뜻밖의 손님이었던 조세인은 20대 후반이었다. 서글서글한 남편, 어린 딸과 함께 우리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며칠을 머물렀다. 변죽 좋은 남편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치던 예의 그 '상냥함' 덕에 나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혹은 서가에 꽂힌 소설들 덕분이었을까. 조세인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우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녀는 양파처럼 여러 층위의 자아를 품은 친구였다.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하고, 그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20대에 자발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선택했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또래 그 누구보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거듭 뒤돌아보며 머뭇대던 친구였다. 안정이라는 울타리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틀을 벗어난 지극한 자유를 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에 등장하는 문장을 빌리자면, 결국 그녀 자신이야말로 '차가움과 따뜻함'이 한데 얽혀 있는, '살짝 미쳐서 더욱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셈이다.
왜 '여자'에 천착할까? 나와 세인은 여성이다. 지난 10년의 거대한 시류 이전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해온 동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단 하나의 시선으로 모두 담아낼 수는 없듯, 또한 서로가 지나온 환경과 경험이 달랐기에 우리 사이에도 선뜻 접점을 찾지 못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1부 '1인칭 여자 시점'에서 조세인 작가는 자발적으로 안정적인 틀을 선택했으면서도 동시에 지극한 자유를 열렬히 열망하는 이중적 욕망을 투명하게 내보인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양가적 감정은, 그녀의 상냥함 이면에 스치던 공허와 갈증을 비로소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왜 결혼했어? 답답하지 않아?" 친구가 그녀에게 던진 이 질문이야말로 1부 '1인칭 여자 시점'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다. 그녀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주는 안온함 안에서, 자기 심연에 자리한 마녀성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해 왔다. 안정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지극한 자유를 갈망했다. 어쩌면 이는 성별과 시대, 지역을 뛰어넘어 수많은 이들이 바라고 또 좌절해 온 모순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고전 비극의 원형이자,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매혹적인 서사로 변주되는 삶의 영원한 주제.
기혼이 그렇게 갑갑하면 왜 비혼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쉽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명확해진다. 작가가 중간중간 짚어내는 유년의 기억들은 그녀가 왜 제도와 틀을 쉽게 벗어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확보해준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아버지의 부재. 홀로 남겨진 남매를 굳건히 키워낸 어머니.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자신들을 떠날까 두려워했던 소녀는 이제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애틋함, 감사를 품은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성장기의 기억은 세인이 무모하게 틀을 깨고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비단 효나 의리 같은 관습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를 향한 마음과 더불어, 세인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따뜻하고 상냥한 천성이 차갑게 미쳐보고 싶다던 욕망을 단단히 눌러 앉힌 것이다.
'1인칭 여자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걸쳐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부드러운 죽처럼 술술 넘어갔다. 담백한 필치로 등장인물들의 출렁이던 삶과 희노애락을 다정한 문장으로 걸림없이 녹여냈다. 꽤 오랜 시간 세인과 우정을 나누며 전해 들었던 주변 여성들의 삶이 관찰자의 눈을 통해 밀도 높게 포착된다. 세상의 외지고 낮은 곳에서도 오롯한 자신을 잃지 않았던 이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간 위안부 할머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해혼식을 올린 수피, 암 진단을 희소식으로 받아들이며 존재 그대로의 행복을 전하고 떠난 자영처럼 말이다.
삶을 저마다의 형태와 빛깔로 빚어가는 여자들 가운데, 20대 끝자락과 30대 초입에 만난 세인과 내가 있다.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 욕망을 나누었던 나와 세인은 어느덧 불혹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마침내 오랫동안 써 내려간 기록을 한 권의 에세이로 엮어낸 세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각자의 오롯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담아내길 응원한다.
오늘을 살아내는 개별적인 '여자'들의 서사는 멈추지 않고 이어질 테니. 비록 몸통은 땅속 깊이 박혀 있을지라도 가지와 잎새를 나부끼며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 나무처럼. 40대 중반,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가다듬은 우리의 양가적 욕망이, 청량한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무처럼 지혜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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