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씨알사상연구가 박재순(1950~2026) 박사가 76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으로 떠났다. 오랜 투병 끝의 별세라고 한다. 올곧고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지인들의 말이 전해진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한신대 신학박사까지
박재순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연구교수, 성공회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씨알사상연구회 초대회장(2002~2007)을 거쳐 씨알사상연구소 소장으로 평생을 지냈다. 나는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씨알사상연구회 초대총무로 그와 함께 손발을 맞추며 일했다.
박재순은 대학 시절부터 함석헌(1901~1989)에게 직접 배우며 그가 다듬어낸 씨알사상을 학문으로 세우는 일에 삶을 걸었다.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이승훈과 유영모의 영향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삶과 사상을 형성해갔다"고 그는 생전에 필자와 한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오산학교 자체가 안창호(1878~1938)가 일으킨 구국 교육운동에서 비롯된 학교였다는 사실을 들어, 그는 씨알사상의 뿌리를 안창호에게까지 끌어올려 밝혀냈다.
감옥에서 시작해 감옥으로 되돌아간 국가
박재순의 이력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은 1980년 전두환(1931~2021) 신군부가 조작한 이른바 '한울회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2년 반 넘게 옥살이를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재판의 인물들이다. 1심 판사는 훗날 대통령 후보가 되는 이인제였고, 대법원 판사는 이회창이었다. 세월이 흘러 김대중(1924~2009) 정부 때, 박재순은 이 옥고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민주화운동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국가가 스스로 지난날의 조작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박근혜 정권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아래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이 같은 한울회사건을 다시 심리해 유죄를 확정했다. 한 사람의 삶에 '민주화운동유공자'와 '유죄 확정자'라는 정반대의 국가판결이 겹쳐 붙은 것이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다시 신청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중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마지막 싸움은 미완으로 남았다.
이 사연은 개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한 인간의 삶을 두 번 심판하면서도 두 번 다 스스로의 자기모순을 감추지 못했다는 사실자체가, 그가 평생 파고든 씨알사상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함석헌이 말한 씨알은 권력이 함부로 판결하고 함부로 지워버릴 수 있는 '백성'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생명의 주체였다. 박재순은 자신의 몸으로 그 말을 증명하며 살았다.
두물머리, 도산에서 다석, 함석헌으로
박재순은 안창호, 유영모(1890~1981), 함석헌 세 사람을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 생명철학의 흐름으로 읽어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의 만남에서 시작해 박지원, 박규수, 안창호를 거쳐 유영모와 함석헌에 이르러 완성되는 씨알사상의 역사를, 그는 '두물머리'라는 비유로 즐겨 설명했다. 서로 다른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큰 강을 이루듯, 조선 후기 실학과 개화사상과 독립운동이 마침내 씨알사상이라는 하나의 생명철학으로 합류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저서로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함석헌 씨알사상』 등을 남겼다.
그는 책상물림 학자가 아니었다.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필자와 함께 유영모·함석헌 철학 발표회를, 2009년 한일철학포럼에서 씨알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직접 조직해, 씨알사상을 세계 철학의 언어로 옮기려 애썼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광훈류의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에 빠진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며, 도산·다석·함석헌이야말로 이를 극복하고 청산한 "민주적, 과학적이며 깊은 도덕과 영성을 지닌" 생명철학자였다고 강조했다.
남은 이들
부인 박경미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신약학 교수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신학자다. 성소수자 혐오와 정면으로 맞서며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를 썼고, 남편의 투병 끝까지 곁을 지켰다. 딸 박예람이 함께 자리를 지킨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9호실, 입관예배는 9월 21일 오후 7시, 천국환송예배는 9월 22일 오전 9시에 성북교회 주관으로 열린다. (안내 바로 가기)
공소시효 없는 역사
박재순이 평생 씨름한 물음은 결국 하나였다. “국가권력이 짓밟으려 해도 끝내 짓밟히지 않는 '나'는 어디서 오는가?”였다. 2024년 12월 3일 밤,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으로 그 물음 앞에 섰다. 국가권력이 언제든 다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한 씨알들은, 함석헌이 말한 '생각하는 백성'이 왜 오늘도 여전히 필요한지를 몸으로 확인했다. 한울회사건이 그러했듯, 권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인정했던 잘못을 뒤집어 다시 유죄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박재순은 그 믿음 하나를 붙들고 씨알과 함께 평생 살다 갔다. 역사는 흐르고 사람은 가도 정신만은 남는다. 한국의 씨알사상가 박재순이 이 땅에 남긴 정신을 그리워하며 영국에서....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