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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호르무즈까지…왜 파병 문제는 민주정부에서 유독 불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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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호르무즈까지…왜 파병 문제는 민주정부에서 유독 불거지나

[원동욱의 외교광장] 평화를 약속한 정부가 전쟁의 문턱에 서는 역설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정부들이 정작 해외 파병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파병이 민주개혁정권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을 대규모로 파병한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역사를 돌아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왜 평화를 강조하는 정부가 미국의 전쟁에 협력하는가?

왜 군사적 자율성을 말하는 정부가 동맹의 요구 앞에서 파병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왜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야당 시절의 반전과 평화의 언어가 국가안보와 동맹의 언어로 바뀌는가?

김대중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 역사적 사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각각의 국제정세와 파병의 성격은 달랐지만, 그 결정들이 드러낸 구조적 긴장은 서로 닮아 있다.

문제는 특정 대통령의 신념이나 용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국내 정치에서는 권위주의적 질서를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대외 안보정책에서는 냉전과 동맹 중심의 사고를 얼마나 극복했는가 하는 데 있다.

국내에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국제정치에서는 강대국의 전쟁 논리에 순응하는 것, 바로 이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의료지원단과 공병부대 등의 파견을 결정했다. 9·11 테러 이후 국제적 반테러 연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열었던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정책의 핵심 축으로 유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더욱 첨예한 논쟁을 불러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전쟁의 정당성과 국제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이 거셌음에도 정부는 서희·제마부대에 이어 자이툰부대를 파견했다. 파병부대의 임무는 재건과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설정되었지만, 그 결정은 미국 주도 전쟁에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논쟁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자주국방과 동북아 균형자 구상은 한미동맹의 현실적 제약과 충돌했다. 국내적으로는 탈권위주의와 정치개혁을 추진했지만, 국제정치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호르무즈 파견 결정 역시 유사한 긴장을 보여준다. 2020년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정식 참여하지 않는 대신,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독자적 작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외교적 부담을 줄이려 했지만, 중동의 군사적 긴장에 한국군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논란이 뒤따랐다.

세 정부의 결정은 동일하지 않다. 전투 참여 여부와 임무, 국제법적 맥락도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세 사례 모두 동맹 관리라는 국가적 과제와 평화 지향이라는 정치적 가치가 충돌할 때 정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 아덴만 인근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 ⓒ해군

야당 시절 민주당의 평화주의와 집권 이후의 안보 현실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야당은 전쟁의 부당성을 비판할 수 있지만, 정부는 동맹의 유지와 외교적 비용, 안보 위협까지 계산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파병 문제는 단순한 해외 군사활동을 넘어 한미동맹의 신뢰 문제로 연결되곤 한다.

파병을 지지하는 측은 이러한 안보 현실과 국제적 책임을 강조한다. 반대하는 측은 설사 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개별 전쟁에 대한 군사적 협력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구별해야 할 것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정부가 국제정치의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언제나 파병이라는 결론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군사적 지원 외에도 외교적 중재, 인도적 지원,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 등 여러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다.

동맹이란 모든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백지수표가 아니다. 동맹의 목적은 국가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데 있지, 동맹국이 수행하는 모든 군사행동을 뒷받침하는 데 있지 않다. 동맹을 지키기 위해 파병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동맹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한국의 파병 결정을 미국의 압박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외교안보 엘리트와 관료들이 미국의 요구를 전달받기도 전에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경향이다.

미국이 요청하기 전에 미국의 불만을 걱정하고, 미국이 제재하기 전에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며, 미국이 보복하기 전에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결정 구조에서는 군사적 협력의 필요성을 따지는 논의보다 협력을 거절했을 때의 비용을 강조하는 논의가 앞서기 쉽다. 파병을 하지 않을 경우의 위험은 상세하게 설명되지만, 파병했을 경우 발생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될 수 있다.

이것은 동맹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을 운영하는 국가의 전략적 사고와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다. 더구나 민주개혁정부는 극우보수정부와 달리 자신의 대미 안보정책에 대한 신뢰를 입증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서 개혁을 추진할수록 대외적으로는 동맹에 충실하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유인이 커지는 역설이다. 이를 일종의 '안보 신뢰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민주개혁정부의 파병 동기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민주개혁정부가 왜 동맹의 요구 앞에서 오히려 신중한 거리두기를 어려워하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가설임은 분명하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파병 논의는 과거의 문제를 다시 현재의 문제로 불러냈다. 미국의 군사적 협력 요구가 제기되면서 한국은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 한미동맹,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국제법적 정당성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한국의 중대한 국익이다. 원유 수송로의 불안정은 한국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과 특정 국가의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상선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 해상정보 공유, 외교적 중재, 다자적 통항안전 협정과 군사작전 참여는 목적과 법적 성격, 위험 수준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정부는 파병의 필요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군사적 수단이 다른 대안보다 효과적인지, 국제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한국군이 분쟁 당사자로 인식될 위험은 없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주지하듯 우리 헌법 제5조는 국제평화의 유지와 침략적 전쟁의 부인을 명시하고 있다. 제60조 제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한다. 이는 해외 군사활동이 행정부의 외교적 재량만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는 헌법적 원칙을 보여준다.

물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군사활동이 언제나 부당한 것은 아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인도적 구조, 국제법에 부합하는 집단안보 활동은 구별하여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파병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떤 전쟁과 연결되는지 더욱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되찾는 데서 시작했지만, 민주주의가 외교안보 영역까지 충분히 확장되었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 있다.

외교안보는 전문성과 기밀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민적 토론과 민주적 통제에서 멀어지기 쉽다. 특히 파병 문제는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정책결정 과정이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국회의 역할마저 사후적 승인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파병은 단순한 외교적 거래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국제적 책임,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위험을 결정하는 행위다.

민주개혁정부라면 파병에 관한 판단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 전쟁의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군사적 대안과 비군사적 대안을 비교하며, 국회의 실질적 통제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흔히 오해되듯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것 자체가 아니다. 미국과 협력할 때는 협력하고, 한국의 국익과 국제법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때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동맹이 강할수록 무조건적인 동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라면 서로 다른 판단과 이해관계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개혁정부의 역사적 과제는 국내의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의 힘을 어떻게 대하고, 국가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며, 평화의 원칙을 어떻게 실제 정책으로 구현할 것인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평화는 선거 때 내세우는 아름다운 구호가 아니다. 동맹의 요구와 충돌하고, 외교적 부담이 커지며, 당장의 정치적 손실이 예상되는 순간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묻는 일이다.

그렇다고 평화의 원칙이 모든 군사적 협력을 거부하라는 뜻은 아니다. 평화를 위한 국제적 책임과 타국의 전쟁에 대한 무비판적 동참을 분별하는 능력, 바로 그것이 성숙한 민주국가의 외교적 역량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국제정치의 변방에서 강대국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경제력과 군사력, 외교적 자산을 갖춘 국가로서 국제질서의 형성과 평화의 유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병을 통해 동맹의 신뢰를 증명하려는 오래된 관성적 사고를 넘어,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 있는 외교를 통해 국가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투표권을 돌려주는 데서 시작하지만, 국민의 동의 없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 데서 더욱 깊어진다.

우리가 민주개혁정부에 던져야 할 질문은 단지 왜 파병했느냐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약속했던 정치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는 과연 어떤 외교안보의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왔는가?

그리고 다음번 동맹의 이름으로 파병을 요구받을 때, 대한민국은 과연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민주개혁정부의 진정한 시험대는 평화를 말할 때가 아니라, 평화와 동맹의 요구가 충돌하는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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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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