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총선 결과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브라질에서는 대통령선거 1차 투표, 하원선거, 상원 일부 선거를 동시 실시한다. 그런데 10월 4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자유당(PL)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가 현 대통령인 노동자당(PT) 소속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 후보를 200만 표 이상 앞서는 47.03%를 득표하며 1위를 기록했다. 룰라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순조롭게 1위를 기록할 것이라던 대다수 여론조사의 예측을 뒤집는 결과였다.
선거에서 결과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 다른 나라 선거 결과가 예상을 벗어났다고 충격까지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보우소나루 후보의 정체다. 왠지 익숙하게 들리는 이름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열대의 트럼프’라 불리는 극우 성향의 전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첫째 아들이다. 아버지 보우소나루는 대선 패배 후에 친위쿠데타와 룰라 대통령 암살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됐고, 27년형을 선고받아 현재 수감 중이다. 지구 반대쪽 어느 나라의 전임 대통령과 판박이다.
아들 보우소나루는 이런 아버지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분신이다. 누가 보더라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극우 정권을 재창출하려고 출마한 후보다. 그런데 이런 후보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더구나 경쟁자가 누구인가? 이미 브라질 안팎에서 ‘전설’의 반열에 오른 현 대통령 룰라다.
2022년 10월에 룰라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를 물리치고 3기 룰라 정부를 출범시킬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지긋지긋한 극우 정권을 종식시켰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그러나 4년만에 브라질 정치 상황은 다시 최악으로 치달으려 한다. 보우소나루 가문이 권좌를 탈환하기 일보직전이고, 이미 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이 제1당의 지위를 굳히는 결과가 나왔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브라질 민주주의의 구원투수로 보였던 룰라는 왜 이번 선거에서 극우 후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도대체 브라질은, 세계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21세기에 ‘가난한 이들의 정당’으로 인정받은 ‘예외적’ 좌파정당
브라질 선거 결과에 관해서는 일주일 사이에 이미 여러 논평이 나왔다. 3기 룰라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짚은 글들도 있고, 보우소나루 진영과 개신교 복음주의 사이의 밀월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사정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의 위업이다.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받아든 정치세력을 논하며 ‘위업’을 이야기하다니, 모순이 아닌가? 그러나 룰라-노동자당이 달성한 위대한 업적이 분명히 있다. 냉정한 평가를 한답시고 이 엄연한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1차 투표 결과가 전하는 교훈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오히려 이 결과가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룰라-노동자당이 무엇을 성취했는지(동시에 무엇을 놓쳤는지)는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보여주는 지도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룰라가 보우소나루를 앞선 주는 ‘붉은색’으로 표시하고 보우소나루가 더 앞선 주는 ‘파란색’으로 칠한 지도를 보면, 브라질 북부는 붉은색 일색이다. 그 중에서도 바이아나 피아우이 같은 북동부 주들이 압도적으로 붉다. 반면 중부와 남부는 온통 파랗다. 노동자당의 발상지인 상파울루나 히우그란지두술이 의외로 다 파란색이다. 특히 짙은 파란색인 주는 아마존 밀림을 끼고 있는 마투그로수다.
이것은 2006년 대선부터 일관된 패턴이다. 룰라가 거의 모든 주에서 과반을 차지했던 2002년 대선과 달리 이때부터 북부는 룰라 지지이고, 나머지 지역은 그 반대편 지지였다. 왜 북부가 이렇게 룰라-노동자당의 거점이 됐는가? 이 지역이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북부는 이탈리아 남부와 비슷한 운명이다. 과거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중심지였던 이곳은 오랫동안 농업, 목축업 외에 변변한 산업이 없었다. 대다수 주민이 농장이나 목장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하며 연명해야 했다. 그래서 많은 북부인이 남부 해안지역 대도시로 이주해 거대한 빈민층을 형성했다. 페르남부쿠 주 출신인 룰라 가족도 바로 이런 북부 이주민이었다.
룰라가 집권 1기부터 시행한 보우사 파밀리아(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등의 조건으로 빈곤층에 지급되는 가족수당) 같은 재분배 정책은 다른 어느 곳보다 북부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몰고 왔다. 정부 정책이라는 한 가지 요인만으로 수많은 가정의 소득이 빈곤선 위로 상승하는 경험을 했다. 덕분에 룰라 시대가 시작된 2000년대 초부터 북부 주들에서 자녀를 최초로 대학에 진학시키는 가구가 다수 등장했다.
빈곤 가구가 북동부에 집중돼서 그렇지 이것은 단순한 ‘지역’적 현상만은 아니다. ‘계급-계층’적 현상이 ‘지역’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가령 성별 측면에서 룰라-노동자당은 2006년 이후 꾸준히 반대편보다 더 많은 여성 표를 확보해왔다. 브라질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빈곤과 실업, 생활고에 더 많이 노출돼 있으며, 그래서 룰라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그 결과, 2006년 이후 룰라-노동자당이 남부에서 인기를 잃었음에도 남부 여성들 사이에서만은 득표력을 유지했다.
소득 수준으로 봐도 양상이 비슷하다. 2022년 대선 결선을 앞두고 여론조사기관 Datafolha가 실시한 조사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눈 유권자 집단 중 오직 최하위 집단(소득이 최저임금의 2배 이하)에서만 룰라가 자이르 보우소나루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57% 대 36%).
중간의 두 집단(소득이 최저임금의 2-5배인 집단, 최저임금의 5-10배인 집단)에서는 룰라가 보우소나루에게 10-15% 포인트 정도 밀렸고, 최상위 집단(소득이 최저임금의 10배 이상)에서는 최하위 집단과 정반대 양상이 나타났다(34% 대 59%). 말하자면 2022년 대선에서도 룰라는 전국에 걸쳐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저소득층이 지지해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 노동자당은 남부, 특히 상파울루 주의 공업도시들에서 조직 노동자를 기반으로 출발한 정당이다. 창당 이후 20여 년 동안 이 당은 상파울루, 히우그란지두술 같은 남부 주들에서 조직 노동자와 중간계급의 동맹을 구축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2026년 총선을 계기로 극적인 지지층 재배열이 벌어졌다. 룰라-노동자당은 남부 중간계급의 지지를 잃은 반면 가난한 북부 주들과 남부 빈민층에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 1930년대 미국에서 뉴딜을 통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층이 재배열된 사례에 필적하는 거대한 전환이었다.
즉, 노동자당은 당대 다른 나라 좌파정당들의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난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이 시기에 대다수 좌파정당들이 대졸 고학력층, 지식 중간계급의 정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계급, 특히 하위 프롤레타리아트와 좌파정당의 거리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 그래서 토마 피케티는 ‘브라만(유식계급) 좌파’라는 고약한 별명을 붙여주기까지 했다(<자본과 이데올로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
그러나 노동자당만은 정반대 길을 갔다. 중간계급의 지지를 잃은 대신 하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이 되었다. 룰라-호세프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심각한 한계가 있었음에도, 그 한계가 누적된 결과가 이번 선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음에도 룰라-노동자당의 지난 20여 년을 일단은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출용 농업-목축업의 성장이 만들어준 반룰라 진영의 힘
그럼 이런 룰라연합을 거의 제압할 만큼 강력한 반룰라연합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노골적인 파시즘을 내세우는 보우소나루 가문을 정점에 둔 또 다른 연합은 어떤 집단을 바탕으로,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구축됐는가?
짧은 글로 다루기 힘든 주제다. 가령 저소득층이 룰라-노동자당을 열렬히 지지하는데도 바로 그 위 계층, 한국식으로는 ‘차상위계층’이라 할 집단은 오히려 보우소나루연합의 표밭이 된 미묘한 사정을 짚어야 한다. 이 집단 내의 젊은 세대는 다름 아니라 2000년대에 1, 2기 룰라 정부의 재분배 정책 덕택에 고등교육을 받은 빈곤 가정 자녀들이다. 이들은 2010년대 초에 월드컵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졸업 후에 영세자영업자나 플랫폼노동자로 떠밀리고 나서 극우 포퓰리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곡절 많은 이야기다.
또한, 이미 우리에게도 상당히 알려진 개신교 복음주의의 역할도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우연치 않게도 북부 주들은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지만, 남부 대도시, 특히 히우지자네이루 같은 곳의 빈민 지역에서는 주민의 30% 이상이 오순절교회 신자다. 그리고 페트라 코스타 감독의 2024년작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이 잘 보여주듯이, 오순절교파 목사들은 보우소나루연합의 막강한 ‘유기적 지식인들’이다. 남부 대도시 빈민 중 다수는 목사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룰라에게 투표하거나, 룰라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목사님 말씀에 따라 보우소나루에게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는 여전히 이번 선거에서 보우소나루 진영이 기선을 제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소수 기득권층과 남부 중간계급, 영세자영업자와 개신교 신자인 일부 빈곤층이 뭉치는 것만으로는 룰라연합(조직 노동자와 민주주의 쟁점에 민감한 일부 지식중간계급 그리고 거대한 빈곤층의 연합)에 육박할 수는 있어도 이를 넘어서기는 힘들다. 게다가 룰라연합에 비해 구심력이 취약한, 가장 부유한 자들과 일부 가난한 자들의 일시적 제휴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반룰라연합이 확대되고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결정적인 요소가 추가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아마존 밀림 지대를 끼고 있는 주들(앞에서 말한 마투그로수가 대표적이다)의 수출용 농업-목축업 연합이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여주는 지도에서 브라질 남서부가 짙은 파란색을 띠는 이유는 이 수출용 농업-목축업 연합이 반룰라연합의 굳건한 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는 2000년대부터 중국에 농산물, 광물을 수출하면서 한 동안 호황을 누렸다. 이 시기는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제1차 ‘핑크색 물결’, ‘좌파 붐’과 겹쳤다. 1, 2기 룰라 정부를 비롯한 남미 좌파 정부들은 이러한 1차 산품 수출 호황으로 얻은 수익을 재분배 정책 재원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굳이 부자 증세나 과감한 확장 재정 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재분배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즉, 수출용 농업, 목축업의 급성장은 지구 자본주의가 안겨준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룰라 정부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수출용 작물은 중국에서 가축 사료로 쓰이는 콩(대두)인데, 보우소나루 정부 이전에 이미 룰라-호세프 정부에서 콩 재배가 급속히 확대됐다. 2005-2020년 사이에 대두 재배 면적이 2천만 헥타르 증가했고, 이는 한반도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규모다.
어디에서 이런 광활한 새 재배지가 나왔겠는가? 거대한 아마존 밀림 말고 ‘노는 땅’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수출용 농업, 목축업은 몇몇 거대 기업의 지배 아래 있고, 이들은 밀림을 태워 재배지, 방목지를 늘렸다. 당연히 이에 맞서 생존권, 생명권을 지키려는 자기 보호 운동이 시작됐다. 아마존 선주민들, 소농들, 생태운동가들이 나섰다. 그러자 룰라-호세프 정부도 뒤늦게나마 부랴부랴 열대 우림 파괴를 막는 편에 섰다.
하지만 이미 수출용 농업-목축업 자본이 강력하게 성장하고 난 뒤였다. 이들은 보우소나루 정권 시기에 전에 없던 자유를 누렸고, 이제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해 반격에 돌입하고 있다. 이들 수출용 농업-목축업 연합이 반룰라연합의 중심에 서자 반룰라연합의 내구력과 확장력이 완성됐다. 물론 아마존 인근 주들에도 선주민이나 생태운동 지지자들 같은 룰라-노동자당 지지층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 농장, 목장에서 일하거나 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상당수 주민이 보우소나루연합의 열혈 지지층이다.
이 대목에서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마치 21세기 벽두에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이 중국발 1차 산품 호황에 편승했듯이, 이재명 정부도 반도체 호황을 ‘비빌 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를 이어나가기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남발한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들이 실제로 추진되고 나서 새롭게 등장할 이해관계는 과연 한국의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상당수 시민이 미래에 단기적 이익을 위해 동료 시민들의 이의제기를 묵살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선택할 수 있는 비극적 가능성을 애써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이번 브라질 선거 결과를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가 놓쳐서는 안 될 물음이다.
결선투표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물론 결선투표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1차 투표 이후 실시된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룰라 진영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근거도 있다. 브라질은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데도, 이번 총선에서 무려 3천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논평가들은 1차 투표에서 보우소나루 후보가 얻은 표는 보우소나루연합이 모을 수 있는 최대치였던 데 반해 룰라가 받은 표는 최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기권자 중에 룰라 지지 성향 유권자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이 유권자들이 보우소나루 2기 정부는 어떻게든 막겠다며 결선투표일에 투표장에 나온다면? 그때는 대선 1차 투표에서 여론조사기관들의 전망이 뒤집힌 것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또 다른 이변이 생길 수도 있다.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와 몇 주 뒤 있을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함께 극우 파시즘의 전 지구적인 행진이 주춤하도록 만드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다시 냉정히 돌아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엄중하다. 비록 룰라가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더라도 룰라 4기 정부는 보우소나루 가문의 정당(자유당)과 그 동맹 세력이 다수를 점한 상하원과 마주해야 한다. 더구나 4년 뒤에는 룰라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수 없고(헌법의 3연임금지 조항) 노동자당만이 아니라 브라질 좌파 전체가 룰라 ‘이후’의 지도자를 마련하지 못한 처지다.
2030년에는 룰라 진영에 더 이상 룰라가 없을 테고, 반대편은 극우파가 평정한 상태 그대로일 것이다. 이번 대선의 최종 결과에 상관없이, 브라질의 민주정 전체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룰라의 기적적 승리조차 실은 붕괴 전에 그나마 4년의 소중한 시간을 번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게 과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의 이야기일 뿐일까? 슬프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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