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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동네에서 완성된다…그러려면 지역정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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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동네에서 완성된다…그러려면 지역정당이 필요하다

[복지국가SOCIETY] 지역정당 없는 한국정치, 주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우리 동네에 꼭 필요한 일이 있다. 버스 노선을 이용자 특히 사회적 약자 편의로 손 보는 일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길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 사라지는 가게와 학교를 지키고, 난개발을 막고, 돌봄과 의료의 빈틈을 메우는 일일 수도 있다. 주민들은 문제를 알고 해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어디로 가는가. 민원과 청원으로 접수되지만 지역의 의제가 꾸준한 정책이 되고 예산과 결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좁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다. 시장·군수와 지방의원을 주민이 직접 뽑지만, 지방정치의 무대는 여전히 중앙정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지역의 살림살이보다 중앙정치의 구도와 정당 간 공방이 선거판을 뒤덮는다. 후보의 이름과 공약보다 어느 당의 공천을 받았는지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는 있는데 지역정치-주민자치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셈이다.

이 모순을 바꾸자는 제안이 지역정당이다. 지역정당 운동은 단순히 새로운 정당 하나를 더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주민이 자기 지역의 문제를 직접 의제로 만들고, 정책을 토론하고, 후보를 내고, 선거 뒤에도 그 약속을 점검하는 정치적 통로를 열자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정당체제를 지방분권형 민주주의로, 중앙당 종속의 지방자치를 주민주권 지방정치로 바꾸자는 정치개혁의 과제다.

정당의 문턱은 왜 이렇게 높은가

현행 정당법은 정당이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설치하며, 각 시·도당마다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두도록 한다. 전국 규모의 정당을 기본형으로 삼은 이 요건은 지역에서 출발해 지역의 지방선거에 참여하려는 정당에는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1962년 군사정부 시기에 만들어진(지역 주민의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거세하기 위한) 제도의 틀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반론도 있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주의가 심해지고, 지역의 이해관계가 국가 전체의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지역 연고에 기대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그리고 오늘날 지역주의는 전국정당들의 집권욕에 의한, 주민의사 왜곡으로서의 지역감정 조장・심화의 결과다. 하물며 지역주의를 막기 위해 지역에서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될 권리까지 제한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물론 지역정당을 허용한다고 지역주의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금지한다고 지역주의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지역정당을 사실상 배제하는 정당법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전국정당 요건에 대해서는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으로 남았지만, 다수 재판관이 정당 설립의 자유와 정치적 다양성, 지방정치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위헌 의견은 지역주의 문제를 정당에 대한 일률적 규제로 해결하기보다 정치문화적 접근으로 다뤄야 한다고 보았다(올해 5월 서울탈시설장애인당이 관계 활동 조직들과 함께 다시 위헌소송을 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 판단은 논쟁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국회가 제도를 다시 검토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정당법을 바꾸는 일은 지역정당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기존 정당을 배척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정당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결사, 곧 독일 같은 지방유권자단체 등 다양한 정치결사가 제도 안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입구를 넓힐 것인가의 문제다.

지역에서 이미 시작된 정치

지역정당은 법적 지위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현실에 없는 존재가 아니다. 은평민들레당,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등은 지역의 의제를 놓고 주민들과 토론하고 활동해 왔다. 봉산 개발과 서울혁신파크 보존, 주민자치와 도시재생처럼 지역의 삶에 직접 닿는 문제들이 이들의 정치적 출발점이었다. 주민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온 활동과 절실한 요구, 바람이 정권이나 지방권력의 교체와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을 담아낼 정치적 그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 밖에서 활동하는 대가는 작지 않다. 정당으로 등록할 수 없으니 정당이란 이름을 쓰는 일부터 제약을 받는다. 공적 지원이나 상근 조직을 갖추기 어렵고, 구성원들은 생업을 마친 뒤 저녁과 주말을 쪼개 활동한다. 선거가 다가와도 후보를 내고 주민에게 정책을 설명할 제도적 통로가 제한된다. 정치적 책임은 요구받으면서 정당으로 활동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이다.

지역정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라는 뜻은 아니다. 작은 조직도 폐쇄적 인맥정치에 빠질 수 있고, 지역의 특정 이해만 대변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정당의 핵심은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주민에게 열려 있고 주민의 필요와 요구를 모으고 그 요구를 정책화하며 정책으로 경쟁하고 권력의 행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 시작한 정치가 주민에게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에 관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제도와 조직(정치결사체)을 보장해주고 그래서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 주민에게 책임지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길을 열 것인가?

첫째, 정당법의 진입 요건을 바꿔야 한다. 중앙당 소재지와 시·도당 수, 당원 수 요건을 완화해 지역 기반 정당도 전국정당과 같은 법적 틀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전국정당과 별도로 시·도 또는 시·군·구 단위 지역정당의 등록 경로를 두고, 해당 지역의 지방선거에 참여하도록 하는 이원화 모델이다. 정당이 아닌 일정 요건의 정치적 결사(독일의 지방유권자단체 등)에 지방선거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어느 모델을 택할지는 공론과 입법 논의를 통해 정하되, 지금처럼 사실상 문을 닫아 두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지역정당 허용을 선거제도와 지방자치 개혁에 연결해야 한다. 후보를 낼 수 있어도 표가 의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치적 다양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역의 대표성이 선거 결과에 반영되도록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지역구, 비례 의원 비율을 1:1이나 2:1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포함), 후보 추천 방식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지방의회가 중앙당의 공천을 기다리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의제를 놓고 경쟁하는 주민의 정책공론장이 되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의 활동을 전국적인 연대로 묶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정당 운동은 각 지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어져 왔지만, 경험과 자원을 나누고 공동의 입법 요구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역별 준비모임과 시민사회, 주민자치·분권 단체, 법률가와 연구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사례를 공유하고 공동 의제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의 작은 목소리를 전국의 제도개혁 요구로 연결하는 일은 어느 한 지역의 힘만으로 하기 어렵다.

넷째, 지역정당이 무엇을 할지 주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당을 만드는 일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에 관한 문제 요구와 해결의 직접 당사자화하도록 지원하고 조직하고 연대해야 한다. 돌봄·의료·교육·주거·먹거리·교통·환경·일자리·지역경제처럼 주민의 일상에서 출발해 의제를 정하고, 공개 토론과 주민 참여로 정책을 만들며, 예산과 의정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견인해야 한다. 당원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회의와 숙의의 장(주민포럼, 주민대회 등)을 마련하고, 재정과 의사결정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역정당의 정당성은 이름이 아니라 이런 실천에서 나온다.

지역정당은 전국정당을 없애자는 제안이 아니다. 전국정당과 지역정당, 다양한 시민의 정치적 결사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주민의 선택권을 넓히자는 제안이다. 지역주민이 지역정당이나 다양한 지역 정치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지역문제를 해결하는데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역정당의 허용은 정치개혁 전체를 대신하지 않지만, 그 개혁을 지역에서 시작하게 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민주주의는 동네에서 완성된다

독일과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는 지역 기반 정당이나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단체가 활동한다. 각 나라의 제도와 정치문화가 다르므로 해외 사례를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정치적 결사가 반드시 전국 규모의 정당 하나로 통일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보여준다. 한국 역시 지역의 조건에 맞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개혁은 중앙정치의 대결을 조금 완화하는 데서 그칠 수 없다. 주민의 삶과 멀어진 정치를 다시 가까이 가져오는 일, 지역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경쟁하도록 하는 일, 주민의 말이 민원으로 끝나지 않고 정책과 예산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 지역정당은 그 변화를 위한 하나의 제도적 통로다. 허용만 하면 저절로 좋은 정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허용조차 하지 않은 채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역정당 허용은 법 조문 몇 개를 고치는 일만이 아니다. 중앙에서 정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정치를 넘어, 주민이 직접 선택지를 만드는 정치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법 개정안을 구체화하고, 관련 선거법과 정치자금 규정을 함께 정비하며, 국회 안의 발의와 심사 경로를 열어야 한다. 동시에 지역의 작은 실천들을 전국적 연대와 공동행동으로 묶어 법 개정의 사회적 힘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과 연대는 서로를 기다리는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함께 추진해야 할 두 축이다.

동네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이다.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선거 때 잠깐 찾아오거나 경조사, 조기축구회, 각종 지연-혈연-학연-직능-지역 행사를 죽어라 밝히는 정치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주민과 함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을 요구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다. 지역정당의 가능성을 묻는 일은 결국 누구에게 정치를 맡길 것인가, 그리고 주민이 정치의 주체가 될 길을 어디까지 열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지방자치 30년을 넘어 이제는 지역에서 정당과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할 때다.

그 첫걸음은 지역정당을 허용하는 법・제도를 만드는 일, 그와 함께 각 지역운동이 지역에서 정치결사체의 조직・진지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이러한 법·제도 개선과 지역진지 구축 등 주객관적 조건·역량을 위한 상시적인 전국적 교류・연대를 활성화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 10월에 지역정당 연속 집담회를 가지니 뜻있는 분들의 동참을 기대하며, 자세한 내용은 지역재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역정당 '직접행동영등포당'이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생태 전환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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