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 알 마문 감독의 장편 극영화 <빨대>(영어 제목: Drained by Dreams)에 등장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셀림, 그는 10년 넘게 한국에서 산 미등록 이주민이다.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가족들의 생활비, 병원비, 집 건축비에 대한 끝없는 요청으로 귀국을 포기한다. 잠시 머물고자 했던 가구공단에서는 그를 채용하기 위해 사장과 공장장이 직접 나서서 붙잡는다. 늘 인력난에 시달리는 사업장에서 10년 경력의 숙련공인 그는 꼭 필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본국의 가족과 한국의 영세 자본가들은 셀림의 노동으로 더 나은 삶을 모색하지만, 정작 육체적, 정신적으로 녹초가 된 그의 삶은 밑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힘겨운 노동,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인종차별, 가족과 단절된 외로운 생활, 그리고 언제 단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그는 결국 출입국관리소의 토끼몰이식 단속을 피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에, 그는 죽어서야 갈 수 있었다.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섹 알 마문 감독이 묘사한 셀림의 이야기는 미등록 이주민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재현한다. 마찬가지로 필자와 연구자, 활동가들이 함께 조사 발표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과 정의로운 이주정책' 보고서(서선영·김사강·김철효·이태정·정영섭·한준성(2026)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삶과 정의로운 이주정책',우분투재단)는 영화속 셀림과 같은 미등록 이주민 10인의 생애사를 통해 이들의 삶을 더욱 깊숙이 들여다본다.
26년째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꼬빌, 그는 부모님의 생활비와 의료비, 형제자매의 결혼 비용, 조카들의 학비 등을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일하다 보니 어느 새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빅은 필리핀에 있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월급을 제때 주고, 컨테이너 기숙사를 제공해 주는 조건이 좋아 29년간 같은 침대 공장에서 일을 하며 네 딸을 대학까지 보냈다. 이제 50대 후반이 된 그는 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나 막막하다고 했다. 파키스탄 출신 아미르는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 네 명을 두고 있다. "애들은 파키스탄에 가면 못 살아요. 나는 괜찮아, 와이프도 괜찮고요. 근데 애들은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는 2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35년 이상 한국에서 미등록으로 체류한 이들 10인의 생애사는 이주의 시작, 노동, 일상, 가족, 공동체 생활을 통해 이주와 미등록 체류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본국과 한국의 경제, 법, 제도, 그리고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왜 고향을 떠나 불안정한 이주자의 삶을 지속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 국가 내에서 혹은 국경을 넘어 이동을 한다. 전 지구적 불평등으로 국가 간 경제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빈곤한 국가 사람들에게 임금이 높은 국가로의 해외 이주는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네팔,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에서 해외 이주는 개인의 선택이기 이전에 가족 경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해외 이주자 한 명의 송금으로 대가족의 교육·의료·주거에서부터 결혼·장례와 같은 주요 의례들이 이루어진다. 만약 이주자의 귀국으로 송금이 중단되면 가족들은 그동안 지속해온 일상을 멈추거나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국가는 불안정한 경제, 만성적인 실업난 속에서 자국민의 이주를 촉진하고, 해외 동포의 송금에 상당히 의존하는 재정 구조를 갖고 있다. 바로 이 구조-전지구적 불평등, 국가간 경제 격차, 송금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시아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주를 하고 또 이들이 미등록으로 체류하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이주자들이 처음부터 미등록인 채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승인된 비자로 입국 하지만, 체류기간이 끝나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미등록은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그 사람의 체류 상태이다. 체류자격은 개인의 결정으로 보이지만, 법과 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주민은 미등록이 되기도 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91년에 한국에 입국한 라주는 입국 후 3개월이 지난 후 비자가 만료되었지만, 1991년부터 1994년까지 6개월마다 비자를 발급한 정부 정책에 따라 등록 이주민이 되었고, 1994년 산업연수제도의 시행으로 비자 갱신을 위한 정책이 중단되자 2002년까지 미등록 상태가 되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시기 한시적 합법화 정책으로 다시 비자를 받아 등록 이주자가 되었다가,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현재까지 미등록 상태로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라주의 사례가 보여주듯,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산업연수제도로, 2004년 이후에는 고용허가제로 대표되는 노동이주제도가 구조적으로 미등록 이주민을 양산해 왔다. 최근 법무부의 통계월보 (법무부 2026년 8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총 체류 이주민 2,874,763명 중 12%인 344,864명이 미등록 이주민이다. 공식 통계조사에서 빠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대략 이주민 8명 중 1명이 미등록 상태라는 사실은 명백한 제도적 결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올해 8월까지 미등록이 된 등록 이주민 중 가장 많은 수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들(E-9)이다.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은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체류자격이 박탈되기도 하며, 4년 10개월의 제한된 체류기간은 한국에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사람들을 미등록 상태로 만든다. 이와 더불어, 유학생 및 난민 정책의 문제로 유학생 비자를 소유한 노동자들(D-2, D-4)과 난민 신청자들(G-1) 또한 미등록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민의 숫자는 세종시 인구수와 비슷하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이주민이 한국에서 미등록으로 체류가 가능한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지속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층으로 분절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제조업·농업·건설·돌봄 등 선주민이 기피하는 업종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주노동시장 내부도 작은 셀로 분절되어 있고 위계가 만들어지는데, 이주민의 체류자격, 국적, 젠더 등에 따라 일하는 업종, 사업장, 사업장 내 업무가 나눠진다. 가장 열악하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사업장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거나 선호하지 않고, 그 빈자리는 임시체류비자 소유자 혹은 미등록 이주민으로 채워진다.
대기업, 중소기업, 하청, 하청 아래 또 하청으로 구성된 피라미드 착취형 산업 구조에서 특히 영세한 사업장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 사업주에게 미등록 이주민은 가장 저렴하며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내 지속적인 수요에 맞춰서 정부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이들을 암묵적으로 양산했고, 경제 불항 시기에는 비인간적인 단속과 추방으로 숫자를 줄이려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노동시장의 요구, 그리고 정부의 비현실적 정책으로 수십 년째 이주민 8명 중 1명 혹은 그 이상이 미등록인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 중 5년 이상 장기 체류한 사람들의 숫자는 약 20만 명이고, 그 중 10년 이상 거주자는 약 4만 8천 명이라고 추정한다.(이철승 2026 외국인 미등록체류자 '불법체류자 취업자 고용주' 해소방안 제안, 외국인력통합지원 TF 회의자료)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 생애사 연구 참여자들은 초국적 가족 부양, 본국의 자녀 교육,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한 책임 등으로 하루하루 일하며 지내다 보니 1년이 되고, 또 다른 1년이 지나고 어느새 긴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5년까지 한국에 살면서 임금체불, 인종차별, 단속의 폭력과 공포의 경험 등 악몽 같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지나온 시간만큼 노동자로, 지역 주민으로 이들의 삶도 한국에서 지속된다.
특히 장기간 노동을 해온 이들은 이제 숙련공이자 해당 분야의 기술자가 되었다. 아미르는 건축, 라주는 용접, 이은혜는 제품 제조, 채드는 기계 자수, 꼬빌은 페인팅 분야의 기술자로 분야도 다양하다. 한 사업장에서 29년을 일한 빅과 같은 사람도 있다. 체류 자격으로 인해 직업을 바꾸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랫동안 비슷한 노동을 하면서 몸에 밴 기술로 숙련공이 되었다. 이들은 팀장이나 과장 등 회사 내에서 관리자 역할을 한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은 대부분 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거주를 했다. 법적 지위의 부재로 인해 노동, 주거, 의료, 교육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공공 제도와 공식적 지원체계에 접근하기 어렵다보니 이들에게 지역 내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동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수십 년간 한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며 지역 사회 단체, 이주민 공동체, 지역의 선주민과의 호혜적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같은 마을에서 29년을 살아온 빅,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으로 강제 추방을 앞두고 있던 그는 "지난 30년 동안 이 나라는 단지 내가 머물렀던 곳이 아니라, 나의 두 번째 고향이었습니다. 이곳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공간입니다...저는 이주민지원센터와 신앙공동체에서 함께 나누었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지지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집'이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받아들여지고, 격려받고, 믿음 안에서 더욱 굳건해질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긴 편지를 남겼다. 이 글은 소박한 일상을 유지하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지역,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 동료들, 그리고 공동체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를 전달한다.
1991년에 입국한 라주는 35년 동안 한국 땅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여덟 번 바뀐 것을 경험했다. 오랜 기간 한국에 체류하며 자국민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동생들과 조카들에게 도움을 주는 '큰 삼촌'으로 지내고 있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라주는 대구 지하철 화재 때 같은 국적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성금을 모아 대구에 보냈고, 최근에는 혼자 사는 80대 한국인 집주인이 수술을 받고 거동을 잘 못하게 되자, 한 달 넘게 집주인의 식사를 챙기고 병원을 함께 다니며 돌보았다.
이은혜도 1990년대 후반부터 정착한 지역에서 다양한 국적의 주민들과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왔다. 특히 여성 이주민 공동체와 지역에서 식당, 옷가게 등을 운영하는 한국인 여성들은 2024년에 이은혜의 아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 함께 슬픔을 나누고 위로해 준 든든한 이웃들이었다. 그녀의 경험은 이은혜가 단순히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역사회 속에서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일상에서부터 여성들의 연대를 실천해 온 주민임을 보여준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산업현장을 지켜온 숙련공이자 기술자이고, 지역사회의 이웃이며, 약자들의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으로 존재한다. 최근 이민정책은 이주민의 사회통합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이들이야말로 가장 잘 통합된 사람들이 아닌가? 국가는 왜 지역사회 주민이자 누군가의 오랜 이웃을 내쫓으려 하는가?
다시 영화 <빨대>의 주인공 셀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 죽어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마치 영화 속 상상의 장면 같은 셀림의 죽음은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해 10월 대구의 한 공단에서 단속을 피해 몸을 숨긴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뚜안이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뚜안의 충격적인 사망 이후에도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생애사 연구의 참여자였던 빅과 채드도 보고서가 채 마무리되기 전 단속되어 본국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필자의 오랜 친구인 꼬빌은 언제 본국에 갈 생각이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죽어야 갈 수 있어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악몽같은 현실을 상기시키는 그의 쓴 웃음이 가슴에 깊은 통증을 남긴다.
빅, 채드, 꼬빌 그리고 10만 명이 넘는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들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로, 소비자로, 지역주민으로 살아가며, 공동체와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법적 체류 자격이 없지만 수십 년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권리없는 소속(belongingness without membership)'의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이들에게 체류권, 그리고 사회적 성원권의 법적 인정은 마땅한 권리이다.
필자와 공동 연구진은 미등록 이주민의 체류권이 상설 체류안정화 제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등록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체류안정화 정책은 일정 요건을 갖춘 신청자에게 갱신 및 전환이 가능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공공 정책으로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단발성(one-shot)의 대규모 특별(extraordinary) 체류안정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 요건을 갖춘 미등록 이주민에게 신청할 수 있는 창구를 상시적으로 열어 두는 방식이다. 전자가 '예외적' 조치로 시행되는 데 비해, 후자는 '상설' 제도이다. 또한 전자가 경제적 필요, 체류관리, 인도주의 등 여러 요소를 절충한 단발성 정책에 가깝다면, 후자는 신청자가 거주 사회와 형성하는 유대와 애착, 사회적 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만큼 체류권에 대한 법적 인정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스페인의 '아리이고(arraigo, '뿌리 내림'이라는 뜻의 스페인어)'가 상설 체류안정화 제도의 사례이며, 올해 스페인은 100만 명 규모의 미등록 이주민의 정규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체류안정화 정책을 통해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경우에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포용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파드론(Padron), 그리고 캐나다의 '묻지도 말고 답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DADT)' 정책은 시와 위탁 기관 직원들이 개인의 이민 신분을 질문하는 것을 금지하고(Don't Ask), 나아가 수집된 정보를 이민 당국 등 외부 기관에 유출하지 않도록 차단하여(Don't Tell) 미등록 이주민이 공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이주민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여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며, 이주민과의 적극적 공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이다.
수십 년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과 사회적 기여를 고려할 때, 체류안정화를 단순히 행정적 예외 조치나 시혜적 구제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의 생애사가 보여주듯, 장기거주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체류권에 대한 법적 인정의 상당한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정부는 누구보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미등록 이주민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의 건강한 노동과 삶이 불안과 악몽에 잠식되지 않도록, 폭력적 단속으로 또 다른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류안정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이민정책의 전향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바로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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