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세 시, 전주한옥마을에서는 풍물패를 앞세운 전통연희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주관 단체의 안내에 따르면 남천교에서 경기전까지 700미터 남짓한 구간에서 행렬과 마당놀이가 한 시간가량 이어지고 길을 걷던 관광객도 행렬에 함께할 수 있다. 표도 객석도 없는 공연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혹서기만 쉬고 매주 이어져 온 이 퍼레이드는 올해 10월 31일이 마지막 공연으로 예정돼 있다.
지난해 이맘때 칼럼에서는 지하철 환승음악과 KTX 안내 선율처럼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국악을 살폈다. 이번에는 거리와 광장, 생활공간에서 직접 관객을 만나는 연주자들의 이야기다. 공연장을 넘어 우리 음악이 사람들과 어떻게 마주치고 있는지 따라가 보려 한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거리공연
거리공연은 이제 즉흥적인 버스킹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울시의 거리공연 사업 '구석구석라이브'는 올해 영상심사와 대면 오디션을 거쳐 657개 지원팀 가운데 150팀을 선발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과 DDP, 덕수궁 돌담길, 서울숲, 여의도한강공원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연말까지 약 2,000회의 공연을 계획했고 10월 19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1500회 이상이 진행됐다. 선발과 장소 배정, 일정 관리까지 공공기관이 맡는 거리공연이다.
선발된 150팀의 구성은 음악 72팀, 기악 33팀, 퍼포먼스 30팀, 그리고 서울시가 '전통' 분야로 분류한 15팀이다. 열 팀 중 한 팀꼴이다. 이 비중만으로 국악의 거리공연 여건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야외 공연은 국악에 마냥 편한 무대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몇 분 안에 붙들어야 하고 주변 소음이 큰 곳에서 가야금이나 대금의 섬세한 소리를 전하려면 음향 보강이 따로 필요하다. 반면 풍물에는 길을 이동하며 장단을 치는 길굿과 집집을 도는 지신밟기처럼 마을의 열린 공간에서 펼쳐 온 연행이 많다. 이동하며 연주하고 관객과 어울리는 이 형식은 거리공연에 그대로 살려 쓰기 좋다.
광장을 채우는 풍물 : 축제의 계절
올가을 축제에서도 풍물과 연희가 무대에 올랐다. 충북 영동에서는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제57회 영동난계국악축제가 레인보우힐링광장 일원에서 열려 정통 국악과 퓨전 국악 무대, 전국풍물경연대회 등 주요 공연을 무료로 선보였다. 충남 논산의 강경국가유산야행은 8월 28일과 29일, 9월 4일과 5일 나흘간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열렸는데, 논산시 발표에 따르면 방문객이 8만 3천여 명이었다. 거리에서는 버스킹이 이어졌고 8월 28일에는 논산전통두레풍물보존회도 공연했다. 근대 거리의 밤 풍경 위에 지역의 풍물 장단이 얹히는 장면이다.
거리 위의 전통음악은 모습도 바뀌고 있다. 지난 17일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열린 '2026 한강 청년 버스킹 축제'에는 비보잉에 국악과 타악을 결합하는 '라스트릿크루'가 출연진으로 참여했다. 학교와 기업을 찾아가는 공연도 하는 팀으로 한복과 탈, 부채 같은 전통 요소를 브레이킹에 결합한다. 전통 공연인지 비보이 공연인지 가르기 어려운 무대지만 야외에서는 그 경계가 흐린 쪽이 낯선 관객에게는 오히려 들어서기 쉬운 문이 되기도 한다.
생활공간으로 찾아가는 국악
야외로 나오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공연이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경기아트센터는 문화적 배려가 필요한 지역과 기관의 신청을 받아 전문 공연단체를 보내는 찾아가는 문화복지 공연을 운영하고 서울시 거리공연단도 어르신 복지시설 방문 공연을 함께 추진한다. 국악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공연이 복지시설과 공동주택 같은 생활공간으로 들어가도록 지원하는 사업들이다.
지역문화재단이 아예 악단을 꾸린 경우도 있다. 강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강남국악관현악단은 지난 6월 24일 창단식을 열었다. 만 39세 이하 청년 국악인을 중심으로 한 20명 규모로 정기공연과 함께 코엑스와 강남스퀘어, 선정릉 같은 지역 거점을 찾아가는 공연을 추진하며 10월 3일에는 마루공원에서 창단기념 무대를 선보였다. 연주자를 데리고 동네로 직접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는 재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리와 공연장을 오가는 길
6월 칼럼에서 국악 공연장의 '심리적 문턱'을 이야기했는데 거리에서는 그 문턱이 한결 낮다. 예매할 필요도, 전통공연을 꼭 보겠다 미리 결심할 필요도 없이 지나가다 잠시 머물러 들으면 된다. 공연장을 찾지 않던 사람도 거리에서는 국악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운영의 과제도 분명하다. 먼저 음향이다. 한강 버스킹 축제의 현장 보도에는 무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관객 의견이 실렸다. 야외에서는 주변 소음과 관객의 위치를 고려해 음향과 악기 편성을 따로 설계해야 한다. 다음은 정기적인 공연이다. 축제는 그 기간에 많은 사람을 모으지만 그 관심이 평소의 관람으로 이어지려면 철마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다음 공연으로의 안내다. 거리공연단에 뽑힌 전통 팀이 국악당 기획공연에 서고 풍물경연대회의 수상 단체가 지역 재단의 정기 무대에 오르며 거꾸로 시립국악단의 연주자가 광장에 나서는 일이 서로 이어지면 연주자는 설 무대가 늘고 관객은 다시 들을 기회를 얻는다. 거리공연의 성과를 공연 횟수와 관객 수로만 측정하지 말고 그 뒤에 다른 공연을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이 가을, 길에서 만나는 우리 소리
가까운 일정 몇 가지를 적어 둔다. 오는 24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국악로축제가 열려 판소리와 배뱅이굿, 사물놀이와 판굿 등이 예정돼 있다. 국립국악원이 1955년 자리 잡았던 운니동 주변에는 국악 교육기관과 전수소, 악기점이 모여 있었고 그 인연으로 돈화문로 일대는 1994년부터 '국악로'로 불려 왔다. 같은 날과 31일 오후 5시에는 서초동 국립국악원 야외 연희마당에서 민속악단의 '연희판판'이 열린다. 마당을 여는 문굿으로 시작해 연희꾼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굿으로 끝나는 구성이며 관람료는 1만 원이다. 전주한옥마을의 토요일 퍼레이드는 31일이 올해 마지막 공연으로 예정돼 있고 11월 15일 DDP 어울림광장에서 열리는 서울시 '나도 버스커 페스티벌'은 10월 30일 오후 5시까지 참가 신청을 받아 영상심사로 14팀을 뽑는다.
이번 주말 길을 걷다 어디선가 우리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잠시 발을 멈추어 보자. 그날 들은 가락과 연주자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면 우리 음악과의 다음 만남도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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