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KBS <시사기획 창> '적십자와 붉은 황금' 편에서는 최근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사업 관련 논란들에 대해 심층 보도했습니다. 방송은 면역진단장비 입찰, 혈액백 입찰, 국가혈액관리 시스템 등을 둘러싼 논란과 적십자사의 입장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면역장비 입찰을 둘러싼 논란 중 방송을 통해 처음 제기된 문제와 관련해 혈액 진단 관련 전문가가 <프레시안>에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이 전문가는 방송을 통해 제기된 의혹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현재 2번의 유찰 끝에 애보트사와 수의 계약을 추진 중인 면역장비 입찰이 사실상 애보트사에게 특혜를 주는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관련 전문가가 소수라는 업계의 특성상 기고자는 실명과 직함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글을 통해 기고자가 혈액 분야에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도 확인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부득이하게 '진양성'이라는 가명으로 기고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저는 지난 7일 KBS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2018년 대한적십자사 면역장비 평가결과와 관련한 문제점에 대해 국민들께 설명을 드리고 적십자사에게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방송에서는 적십자사의 음성검체를 사용하여 면역장비를 평가하였더니 5000개 검체 중에서 5개가 C형간염 진양성으로 재판별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국민들이 적십자사의 검사 시스템에 대하여 불신과 함께 불안감을 나타냈습니다.
우선 C형간염에 대해 약간의 사전설명을 하겠습니다. C형간염에 걸리게 되면 우리 몸에서는 C형간염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C형간염항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항체를 검출하는 검사를 C형간염의 진단에 이용합니다. 그런데 C형간염항체는 검사방법에 따라 검출되는 시기가 다릅니다. 가장 먼저 개발된 효소면역법이라는 검사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감염된 후 약 80일이 지난 다음부터 검출이 됩니다. 그리고 화학발광면역법이라는 검사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보다 조금 빠른 60일 경부터 검출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 화학발광면역법이 효소면역법보다 ‘민감도가 높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감염된 후 만들어지는 항체의 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더 낮은 농도의 항체를 검출할 수 있는 검사법이 감염 시점 기준으로 더 빨리 검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혈자의 혈액검사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기가 늦어질수록 선별검사에서 놓쳐져서 환자에게 수혈되는 혈액의 수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4년 대한적십자사의 검사시스템의 문제가 노출되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어떤 항체 검사법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있었습니다. 당시 검토에서 고려된 것은 각 시약의 민감도와 시약가격이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막 C형간염 핵산증폭검사가 도입된 시기였습니다. 핵산증폭검사는 항체가 아닌 바이러스를 직접 검출하는 검사법이기 때문에 항체검사보다 훨씬 빠른 감염 후 15일 전후부터 양성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검사법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또한 고려 요소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화학발광법을 사용하는 시약제조사는 애보트사와 후지레비오사가 있으며, 나머지 시약제조사들은 모두 효소면역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약가격은 화학발광법이 훨씬 높습니다.
당시 혈액관리위원회는 화학발광법의 민감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핵산검사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보완이 되고, 핵산검사에서 음성이면서 항체검사만 양성인 경우에는 대부분 과거의 감염 흔적으로 보아야 하고 실제적인 수혈감염의 위험성이 없기 때문에, 항체검사 시약의 민감도의 차이는 무시하고 가격경쟁입찰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검사장비와 시약을 도입하여 사용한 지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2018년 대한적십자사는 C형간염 시약 평가를 함에 있어 화학발광법으로는 양성이고 효소면역법에서 음성인 5개의 검체를 평가에 사용하였고, 그 결과를 판정함에 있어 효소면역법이 양성검체를 잡아내지 못했다고 하여 부적격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난 12년 동안 적십자사 자신들이 견지해 왔던 기준을 부정하고,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평가에서 5000건당 5개의 검체가 항체검사만 양성으로 나왔으므로, 헌혈 건수를 연간 300만 건으로 기준하면 비슷한 검체가 연간 3000건 검출된다고 볼 때 지금까지 최대 3000X3=9000명 가량의 환자가 이런 혈액을 수혈 받았을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이 검체들을 정말 위험한 검체로 보고 있다면 12년간 매년 최대 9000명의 수혈자에 대한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헌혈 한 건당 세 명의 수혈자가 발생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 검체들이 실제적인 위험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면 새삼 이런 기준을 적용하여 오직 한 업체만 적격으로 판정하는 것은 공평성의 측면에서 볼 때 부당한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금보다 헌혈자 선별기준을 강화하여 지금부터는 오직 항체만 양성인 헌혈자까지도 부적격으로 처리하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안전기준상의 변화이므로 당연히 혈액관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인 추세는 항체만 양성인 혈액까지 확인검사를 통해 부적격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지 오래 되었고, 이런 추세를 따라 우리나라도 얼마 전 항체검사 확인검사를 폐지하였습니다.
이 확인검사라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효소면역법과 화학발광법 모두 처음 검사를 해서 양성으로 나온 혈액이 모두 진짜 양성은 아닙니다. 이 중에는 실제로 C형간염은 아닌데 검사에서만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위양성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이것을 가려내기 위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C형간염 항체 확인검사라는 것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핵산검사가 발전함에 따라 C형간염 항체 확인검사의 효용성이 없어지게 되어 이 검사법은 의료계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이 결과를 가지고 시약의 성능을 결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번 평가에서 화학발광법만 양성으로 나온 5개의 검체를 잡지 못했다고 해서 해당 시약을 부적격 판정하는 것은 부당하며, 만약 12년 이상 견지해 온 이 원칙을 바꾸고자 한다면 사전에 혈액관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입찰에서 결과적으로 한 업체만 특혜를 받았고, 수의계약을 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약가격도 올라갈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에 대하여 적십자사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C형간염항체 검사에 있어 화학발광면역법이 효소면역법에 비하여 높은 민감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것을 동일한 기준으로 시약평가결과 판정에 적용하는 것이 공평한 기준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적십자사가 효소면역법을 12년 이상 사용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2) 1과 같은 중요한 기준 변경에 대해서는 혈액관리위원회가 결정하도록 심의 요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1과 같은 기준으로 시약평가를 하면 당연히 화학발광면역법을 사용하는 검사시약만이 적격 판정을 받아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이 될 것이 자명한데 그로 인하여 시약가격 상승 등의 결과로 이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는가?
(3) LG 등 효소면역법 시약들이 양성으로 검출하지 못한 항체양성 핵산음성 검체 5개가 수혈되는 경우 수혈감염의 위험성이 있는가? 있다면, 지금까지 12년 이상 이런 검체들이 많았을 것인데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만약 없다면, 굳이 이 검체를 양성으로 잡지 못했다 하여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이상 우선은 C형간염에 대해서만 설명을 했습니다만, 추후 기회가 되는대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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