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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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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기고] 직장 선택의 자유 불허하는 고용허가제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A 씨가 일하는 사업장은 작업환경이 열악하다. 일이 고된 데다 상사는 툭하면 짜증을 내고 A 씨를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게다가 회사는 5개월 전부터 경영 사정이 악화되었다는 이유로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늦게 주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신뢰는 물론 의욕마저 상실한 A 씨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또 다른 직장에 취업을 알선 받기 위해 고용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고용센터 담당자로부터 A 씨는 사직이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 기존 직장으로 돌아가서 계속 일해야 하고,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A 씨의 사직에 동의하지 않았고, A 씨의 사직 사유가 사직을 허용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A 씨는 고용센터 담당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19조에 분명 '근로계약에 명시된 근로조건이 사실과 다를 경우에 근로조건 위반을 이유로 즉시 근로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근로계약서에 임금지급일이 검은 글씨로 명확히 못 박혀 있지 않던가. 본인이 그만두겠다고 하는데 고용센터에서 무슨 권한으로 사직을 금지하고, 원래 회사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하기에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갔다. 꾸역꾸역 근로계약기간을 다 채운 A 씨는 다시 고용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지금 회사의 사장이 추가적인 계약갱신을 원해서 기존 직장이 아니면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A 씨는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었지만 고용센터 담당자의 확신에 찬 말에 겁에 질려버렸다. A 씨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라도 된 것일까?

ⓒpixabay


위의 상황은 동화가 아니다. 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고있는 현실이다.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한국에 들여온 노동자들은 철저히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지배받는 '인력'으로 취급된다. 그 결과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이 경향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14여 년 동안 계속 강화되어 왔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입법자가 외국인력 도입에 관한 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는 내국인의 고용시장과 국가의 경제상황, 국가안전보장 및 질서유지 등을 고려하여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그 내용을 구성할 보다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인정된다. 따라서 그 입법의 내용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지 않는 한 입법자의 정책판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인정된다"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와 사유를 제한한 고용허가제가 직장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노동자의 국적에 따라 인간의 권리를 차등적으로 인정해도 된다는 사실을 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도입을 위한 제도로서의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지위도 아울러 규율하고 있음을 간과하거나 무시했던 것이다.

사용자의 필요가 일차적 고려대상인 '사용자 중심적 사고'는 고용노동부가 2017년 2월부터 시행하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징수"라는 용어의 사용부터가 그렇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징수"란 행정기관이 법에 다라 조세, 수수료, 벌금 따위를 국민에게서 거두어들이는 일을 지칭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숙식 제공에 관하여 "징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용자와 이주노동자 간의 관계를 '국가 대 국민'과 같은 권력관계로 본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으로 집세는 집의 크기, 위치, 주변시설, 대중교통 접근성, 집의 상태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위 지침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숙식비는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그러면서 제공되는 숙소에 대해 아무런 기준도 제시하지 않아 냉난방은 물론, 화장실이나 세면실, 잠금장치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숙소를 제공하기 일쑤다. 여러 명의 노동자들을 컨테이너박스에 합숙하도록 하면서 1인당 월 30만 원씩 가져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다른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이주노동자에겐 최저임금마저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버젓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외국인력 도입'을 규율한다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제한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독을 풀어놓는 것과도 같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가 헌법재판소가 강조한 "내국인의 고용시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가 만무하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지위는 역설적으로 이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내국인 노동자들의 협상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내국인의 노동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보호되어야 한다. A 씨를 더 이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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