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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부시-김정일 3자가 'X파일' 열어야"

새 연재 : 안병진의 X파일 이야기 <1> 케네디의 유산 속으로

새 학기 개강을 얼마 앞두고도 초지일관, 아직도 강의 준비를 하지 않고 미적대던 차에 예상치 못한 축복의 선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바로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진 것이다. 독자들은 왜 그것이 축복이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필자의 노동이 전혀 투여되지 않고도 새 학기에 교양 과목으로 개설할 한국정치론의 교재의 절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비밀도청 X파일'은 최고의 정치학 교과서**

사실 정치학자들의 어떠한 논문보다도 생생하게 한국사회 권력의 실제 작동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파일이야말로 정치학 교과서이자 나아가 향후 세계적 연구의 소재까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생각해보라. 전근대적인 로비 수법과 포스트모던한 디자인 경영이 기이하게 결합된 삼성의 '퓨전 경영'은 기존 경영학이나 사회학의 상식을 깨는 퍼즐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독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한국의 X파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미국 백악관의 X파일에 대한 연구다. 흔히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기자들은 음험한 닉슨의 워터케이트 사건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야당인 민주당을 도청하다 결국 발각돼 낙마한 사건 말이다. 사실 닉슨은 그간 한국의 보수주의적 집권 세력들이 여러 모로 벤치마킹 한 스승 같은 존재다. 그는 권력의 불법 도청 스캔들의 원조일 뿐 아니라 또한 한국 민주주의에 지뢰 같았던 북풍 수법의 원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사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또 하나의 전혀 다른 X파일 사건이 곁가지로 묻어져 있다. 바로 '케네디 X파일'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1973년 7월 16일 미국 상원 워터게이트 위원회에서 시작된다.

당시 이 위원회에서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대해 증언하러 나온 대통령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는 닉슨이 백악관에 비밀리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회의와 전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폭로하여 미국 전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증언은 결국 닉슨을 추락시키는 결정적 도화선을 제공하게 된다.

***"케네디가 비밀리에 도청을 했다니…그것도 백악관에서…"**

그런데 그 다음날 새로운 충격적 폭로가 이어졌다. 케네디 도서관 관장인 댄 펜 주니어는 케네디 행정부 시절에도 그러한 비밀도청 테이프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통령병 환자로서 음흉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닉슨과 달리 '영원한 미국인의 연인' 이미지의 케네디와 불법도청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이었다. 케네디의 측근 중 한 사람인 아더 슐레진저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케네디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왔다 (Stern 2003).

하지만 케네디 행정부의 '왕수석'이라 할 수 있는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이미 형의 죽음 직후부터 이 비밀 테이프의 녹취 작업을 지휘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이 테이프는 케네디 도서관으로 옮겨져 1983년부터 단계적으로 녹취 내용이 공개되기에 이른다. 97년엔 62년 10월 16일부터 29일까지의 700페이지 분량의 백악관 회의 내용이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했다. 이 공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던 소위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전모를 이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닉슨처럼 권력 유지와 주변 통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기질을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케네디가 도대체 왜 그런 관음증의 시선을 즐겼던 것일까? 케네디의 비서를 지냈던 에버린 링컨은 이를 피그스만 사건의 영향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피그스만 사건이란 케네디가 집권 직후 CIA 등 강경파들의 조언을 부주의하게 수용해 쿠바를 침공했다가 대부분 죽거나 포로로 잡히는 등 미국 역사상 최대의 치욕스러운 패배를 기록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 후 케네디는 측근들이 이전 회의에서 작전을 지지했던 발언들에서 발을 빼는 것을 보고 분노했는데 그런 것이 회의 녹음의 동기가 아니겠느냐고 그녀는 추정하고 있다(ibid., xxi).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동기에 대한 단서는 케네디가 유명한 역사광이란 사실이다.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과거 1차대전의 원인을 다룬 저명한 역사서 '10월의 총성'을 먼저 집어 들어 사색에 잠겼을 정도로 탁월한 역사학자의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이었다. 따라서 현재 많은 학자들은 케네디의 비밀도청 동기는 치밀한 역사기록을 남겨 나중에 걸출한 회고록을 남기고 싶은 욕망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록 그는 비운의 암살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 어느 대통령의 회고록보다 역사적 가치가 훨씬 더 높은 기록을 남겨 결국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실현한 셈이다.

***'케네디 X파일'에는 케네디의 두 얼굴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도 '자고나면 생기는 수만 가지 음모론'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듯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인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색안경을 낀 수만 가지 음모론 가설이 난무하는 법이다. 특히 닉슨의 보좌관 출신으로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였던 윌리암 새파이어처럼 미국인들 앞에 닉슨의 이미지만 구겨지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보수주의자들은 이 테이프가 선택적으로 취사된 사기극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게도 했다.
사실 24시간 가동되는 미디어의 시선에 거의 모든 것이 노출되는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케네디가 테이프의 유출 가능성을 고려해 발언을 '조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미디어 정치가 만개하지 않았던 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케네디는 자신과 동생 등 최측근 한두 명, 그리고 비밀장치를 설치한 비밀정보요원 로버트 보우크만이 알고 있는 이 X파일의 존재가 새어나갈 가능성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지력이 좋은 그는 놀랍게도 자신이 암살될 가능성은 암시한 적이 있지만, 설마 그의 정적 닉슨의 워터게이트의 불똥으로 이 비밀테이프가 완전히 출판까지 될 줄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방학 내내 방대한 녹취록을 꼼꼼히 읽어보면서 새파이어의 사기극 주장과 정반대로 너무나도 편집되지 않은 내용의 거칠음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테이프는 물론 새파이어가 질시한 케네디 형제의 명민함, 합리성, 신중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들의 아둔함, 비합리적 편견, 무모한 강경함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전자는 제3차 세계대전 전야라는, 보통 사람은 감내할 수 없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케네디가 균형감각과 신중함을 잃지 않고 택한 창조적 해법들을 말한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 중에 미국의 한 고위관료는 새벽까지 피 말리는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다 길가 가로수를 차로 들이박았을 정도로 극도의 긴장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동시에 후자는 쿠바 미사일 위기 오래 전에, 이러한 3차대전 위기의 맹아를 스스로 만들어갔던 케네디의 어리석은 편견과 강경한 군사주의적 공습 유혹에 이끌린 관점의 문제를 말한다. 더구나 이 테이프를 보면 미국이 자랑하는 리버럴 개혁파들의 위선과 도덕적 마비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위기 해소 후에 자신들을 마치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부각시켰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위기 기간 동안 자주 마초주의자로서 강경한 군사주의적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조작된 폭파극을 벌여 쿠바 침공의 명분을 만들자고 수 차례 주장하기도 했다(나중에 베트남 침공을 유발한 통킹만 사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집행되었다면 그들은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조작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현재의 부시 대통령의 선구자로서 명백하게 전범의 리스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진면목을 비춰주는 거울"**

이 비밀테이프는 현재 나름대로 큰 정치적 위기와 결단의 시점에 직면한 한국, 북한, 미국 3국의 지도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상 위기시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이 테이프보다 더 생생한 정보와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이 녹취본이 여타 이론서나 취재서와 전혀 다른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실제 62년 위기 정점의 백악관 회의에 '참석'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치 케네디가 냉전 시기 최대의 위기를 맞아 '10월의 총성'이란 책을 먼저 집어 들었듯이 3국의 지도자들은 공통으로 케네디 비밀 테이프를 집어 들고 사색하고 또 공통의 주제를 갖고 대화해야 한다.

거의 실현 불가능한 희망이지만 3국의 지도자들에게 이 테이프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녀야 한다. 먼저 한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의 위기에서 중요한 재량권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 간의 상호 불신과 오인이라는 중재의 악조건과 한정된 시간은 향후 전도를 낙관할 수 없게 한다. 이런 가운데 중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책 결정자들의 표면적인 레토릭뿐 아니라 그들의 무의식 구조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비록 지금의 위기와 많이 다른 맥락과 구성원의 특질이 게재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비밀테이프는 미국 정책결정자 일반의 무의식 구조에 대한 풍부한 임상 사례를 제공한다.

아울러 이 테이프는 과연 효과적이고 질적으로 우수한 의사결정과 소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산출되는 것인가 하는 중요한 화두도 제공한다. 그것은 국제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연정론 국면에도 생산적인 시사점을 줄 것이다. 더 거창하게 보면 21세기 사회발전의 핵심 비결은 바로 이 의사결정과 소통의 질과 방식에서 승부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뿌리를 둔 것이니…"**

보도된 반기문 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현재 김정일 위원장은 이미 핵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감과 미국의 강압적 외교 방식을 고려할 때 아마 그는 지금도 하루에 10번이고 생각이 바뀌고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잠시 충혈된 눈으로 현재의 장기판을 응시하던 것에서 눈을 떼고 역사적인 사색에 잠겨야 한다.

그는 지금은 잊었겠지만 북한의 핵 개발의 첫 동기는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미사일 위기 때 쿠바를 헌신짝 처럼 내팽개친 소련의 행위에 충격을 받아 핵 보유 노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광폭정치가 답게 발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당시 김 주석은 미사일 위기에서 정확한 교훈을 얻었던 것인가? 또 왜 카스트로는 당시 핵미사일 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불가침 선언이라는 거의 무의미한 구두약속 말고는 아무 것도 따내지 못 했는가? 이를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본다면 지금까지의 벼랑끝 전술의 궤도와 사뭇 다른 해법이 등장할 것이다.

물론 오늘의 미국이야말로 이 테이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가장 기대하기 힘든 당사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쿠바 미사일 위기'에 거의 무관심한 한국이나 북한과 달리, 부시 행정부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미 충분히 단물을 빼먹고 버려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집권 1기 당시 라이스 등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쿠바 위기에서 케네디의 선제공격 검토를 원용해 선제공격 독트린을 정당화한 바 있다. 그리고 집권 2기에 들어와서 부시 대통령은 케네디의 자유에 대한 수사를 활용하여 그야말로 케네디 노선의 공중납치를 감행해 왔다.

***"제3세계에 대한 미국 엘리트들의 오만과 편견은 어디서 연원하는가"**

하지만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를 제외한 미국의 엘리트들은 초당적으로 다시 케네디 테이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 테이프에는 당적을 불문하고 미국 엘리트들이 제3세계, 소위 불량국가들에 대해 갖는 엄청난 오만과 편견, 심지어 인종주의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냉전 후 지금도 변함없는 이러한 삐딱한 시선은 비단 불량국가로 분류된 나라들에게만 재앙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베트남에서의 악몽이 그러하고 현재 수렁에 빠진 이라크가 그러하다. 또 94년 제2의 케네디인 클린턴은 북한과 전쟁 일보 직전에서 멈추었고, 부시는 지금 임기 중에 소위 '북핵 이슈'를 방기하거나 지연시켜 북한의 핵 제조의 가능성을 더할 나위 없이 도와 왔다.

물론 3국의 지도자들이 필자의 희망사항을 조금이나마 따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미국의 사학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이 비밀 테이프의 녹취본에서 보다 더 정확한 내용을 추출하려고 케네디도서관 서고 한 구석에서 씨름하고 있다. 사실 한 시간 테이프 분량을 녹취하는 데에는 100시간의 엄청나게 지루한 노동이 소요된다. 때로는 기침 소리와 잡음들 속에서 중요한 대화의 내용들이 아직도 분명하지 않아 이들은 오늘도 보다 더 정교한 녹취를 위해 고투하고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노력의 토대 위에서 보석 같은 정치학 연구들이 지금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미국 시민사회의 저력이 숨어져 있다.

비록 이러한 연구 성과들의 극히 일부를 패스트푸드 식품처럼 섭취한 상태에 불과하지만, 필자 또한 이들 덕분에 거친 연구의 성과를 내놓게 됐다. 필자는 방학 내내 케네디 비밀테이프를 연구하고 이에 대해 집필하던 참에 마침 <프레시안>으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았다. 위의 내용은 그런 제의를 받으며 한국과 관련하여 막 머리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본 것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앞으로 케네디의 비밀테이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향후 푸른길 출판사에서 10월말경 출간될 '케네디 비밀테이프 속으로'(가제)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각 회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며칠 후 게재될 에세이에서는 케네디 테이프에 나오는 미국 정책 결정자들의 무의식 구조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제2회 미국 행정부를 지배하는 무의식-베두윈 전설 신드롬
제3회 동키호테의 광기를 사랑한 카스트로의 주체외교와 폭정의 전초기지화
제4회 해상봉쇄의 숨겨진 목적
제5회 정권 교체인가 핵제거인가?
제6회 케네디의 비밀특사 외교의 묘미
제7회 나비효과와 제3차 세계대전 전야
제8회 40년 이상 되풀이되는 조기붕괴론
제9회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잘못된 교훈을 얻은 북한과 미국
제10회 김정일 위원장 드디어 서울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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