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내년도 경제가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3.9%, 한국개발연구원(KDI)는 4.1% 성장을 전망할 정도로 핑크빛 전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일본발(發) 금융공황’이 발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달러당 1백30엔선을 넘어선 엔저(低)의 충격에서도 알 수 있듯, 2002년 한국경제,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최대뇌관은 ‘일본’이다. 일본경제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세계경제의 사활이 걸린 것이다.
일본 유수의 경제전문기관인 일본총합연구소의 조사부장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49)는 새해를 맞아 니혼게이자이 인터넷사이트에 ‘2002년 일본경제를 전망한다’는 경제전망 보고서를 실었다. 다카하시 부장은 조사업무를 하면서 와세다대학 대학원 아시아태평양 객원교수까지 맡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글을 통해 그는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세계경제의 3대 축이 2002년에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를 분석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일본에게는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다. 과연 지금 일본의 24시는 무엇인지, 다카하시의 글을 통해 실체에 접근해보도록 한다. 편집자
일본경제는 2000년 가을을 정점으로 경기후퇴 국면에 진입, 2001년에는 고이즈미 정권 아래 구조개혁에 시동을 걸었으나 경기는 한층 후퇴했다. 새해에도 불투명성이 한층 심화되면서 엄격한 국면이 계속될 전망이다. 단 일본경제가 커다란 전기를 맞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2년의 일본경제를 경기와 구조조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전망해보자.
***미국경기, 바닥은 벗어나겠으나 성장은 완만**
일본경제를 전망하는 데 있어 최대 포인트는 미국경제의 향방이다. 미국경제는 동시다발 테러의 영향으로 경기침체에 빠져 있으나, 금융.재정정책의 효과가 침투하면서 2002년 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일반적 경기회복국면에 볼 수 있었던 V자형의 강한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어 보인다. 회복되더라도 대단히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보통신(IT) 붐이 끝난 데 따른 설비투자의 조정이 올해에도 계속돼 경기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경제의 코스를 전제로 하면, 일본이 수출주도로 강한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중국 대두의 충격과 일본의 산업조정**
다음은 중국 대두의 충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의 대두는 일본산업에 커다란 충격이다. 값싸고 질 좋은 중국제품의 급속한 유입은 노동집약적인 일본의 국내제조기반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일본의 디플레이션(경기후퇴)을 가속화시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일본기업의 아시아에서의 현지생산 확대와 수입증가는 무역흑자를 급속히 축소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중국 위협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신흥공업국에게 쫓기는 것은 선진국의 숙명이다. 일본산업의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는 진짜 원인은 고비용 체질과 산업·고용 시스템의 경직성, 그리고 신산업 육성 및 IT혁명에의 늦은 대응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제조기반이 축소되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일본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경영체질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동시에 수익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일본기업은 ‘채무, 시설, 사람’이라는 3가지 ‘과잉’을 내포하고 있는데 현재 서서히 조정작업이 진행중이다. 문제는 이같은 조정이 앞으로 상당기간 경기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대목은 신산업 창출과 신분야의 성장이 늦은 까닭에 기업부문의 조정이 ‘축소 균형형’ 수익체질 개선에 멈출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일본기업이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기만 하면, 일본이 재생할 저력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앞길을 점칠 수 없는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향방**
고이즈미 총리의 “구조개혁 없는 경기회복은 없다”는 지침 아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2001년 6월 개혁의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가을부터 경기가 한층 악화되자 각 부문에서 대형 경제대책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는 예산편성시 신규 국채발행액을 30조엔으로 억제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한편, 특수법인 개혁과 의료제도 개혁, 공공사업 재조정 등 7개 분야의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그 성과가 예산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개혁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대목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부실채권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강하다. 최종처리 방침이 나오기는 했으나 경기침체와 경제체질의 악화를 배경으로 새로운 부실채권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를 처리할 금융기관의 체력도 계속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 위기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재생을 위해 남은 시간은 없다**
이런 점들을 기초로 향후 일본경제를 전망하면 2002년 전반기에는 경기가 한층 나빠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2002년 후반에는 미국경기의 회복에 힘입어 더 이상 경기가 나빠지지는 않을 성싶다. 하지만 수출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고 국내에도 경기회복 엔진이 없는 만큼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는 없어 보인다.
미국의 IT붐이 끝나고 중국이 무섭게 대두하는 등 국제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무역흑자가 급감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 재생에 남겨진 시간은 적다. 90년대의 정책을 되풀이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경기후퇴라는 역풍을 맞으면서도 단호한 구조개혁 과정을 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