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중경에 이르는 ‘임정로드 탐방’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6일부터 ‘임정로드, 역사의 현장을 가다’ 행사를 이끈 김기운 더불어민주당 창원의창지역위원장과 함께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임시정부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 현재 모습, 느낀 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떠나는 ‘임정로드 4,000㎞’. 그 여정에 동참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임정로드, 그 역사의 현장을 가다’를 기획하고 다녀온 소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셨던 선열들께서 사선을 넘나들며 다녔던 그 길을 다녀왔다.
그 길은 문명과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 관광코스로도 결코 순탄하지 않은 힘든 길이었다. 하물며 4,000㎞나 되는 험한 길을 일본군들의 감시를 피해 쫓기듯 다녔을 그분들을 생각하니 나라 잃은 민족의 참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꺾이지 않는 신념과 의지로 싸웠을 그분들을 떠올리니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 모든 분들에게.
-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지난 8월 7일 서울에서 출발해 중국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난징루(남경로) 거리 등을 돌아본 후 첫날 여정은 마무리했다.
2일차인 8일은 김구 선생의 활동무대인 중국 동남부의 작은 도시 ‘가흥’에서 선생의 피난처였던 ‘매만가 76호’를 방문하고 임시정부 요인의 거주지, 김원봉 의열단장과의 만남 장소 등을 방문했다.
임시정부가 최대의 시련을 겪었던 항주에서는 호변촌 청사와 한국독립당 본부였던 사흠방, 청태 제2여사, 오복리 2가 2호 등 유적을 방문했다. 청태 제2여사는 항주에 도착한 임시정부가 첫 청사로 사용한 곳이며, 오복리 2가 2호는 임시정부 요인 가족의 거주지였다.
3일차엔 일본군이 30만 명의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남경대학살 현장과 기념관, 현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안소 터였던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도 방문했다.
4일차엔 윤봉길 의사 의거지인 상하이 홍커우공원을 먼저 방문했다. 현재는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윤봉길 의거를 기념해 지난 1994년 건립된 매정(梅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인근에 1998년 세워진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비’가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군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만국공묘에서는 처연함과 함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눈물로 떨어졌다.
마지막 방문지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였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됐으며, 1993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 복구공사 완공 기념식을 가진 뒤 일반에게 정식으로 공개됐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새롭게 재개장한 현재 임시정부청사는 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독립기념관에서 제작해 제공한 전시설계와 동영상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임시정부청사는 현재 옛 그대로는 보존이 되지 않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현지인들이 보상을 많이 요구해 전체를 다 수용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역대 정권들이 너무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지금이라도 서두르고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1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가했다. 독립군들의 항일투쟁 현장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 공감이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
이번 임정로드에는 모두 18명이 참가했다. 4박5일 일정으로 시작됐으나 태풍 레끼마의 영향으로 일정이 이틀 더 연장됐다.
청소년들의 경우 처음엔 관광하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남경대학살 현장과 위안소 유적 진열관 등을 방문하면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사실, 중국도 국수주의자들 많은데 일본제국주의에 당했다는 역사에 대해 많이 부끄러워한다. 우리보다 더 일본을 미워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점점 역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적 충격을 역사적 사실과 교훈으로 소화하고 공감했던 이번 임정로드 탐방 과정이 소중한 경험과 민족적 자부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세대의 구분 없이.
-앞서 언급했듯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임정로드를 다녀왔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섰던 계단에서 느낀 소회는.
무한한 존경심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이겨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신 자랑스러운 독립투사들을 맨 앞에서 이끄셨던 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계단에 서서 공통으로 느낄 마음자세이지 않을까.
김구 선생은 특히, 큰아들이 폐결핵을 앓자 약을 한 첩 지어 먹이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건의도 거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처지인데 자신의 아들에게만 특별대우를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끝내 먼 길을 보내고야 말았다. 이 일화를 접하고는 속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민족의 영웅으로서 다시 한 번 경외심을 갖게 됐다.
-앞으로 해마다 임정로드 탐방 행사를 지역위원회 연속사업으로 만들 계획이라는데,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이번에 방문한 지역 외에도 임시정부와 독립군들의 흔적이 많다. 기회와 능력이 닿는다면 학생들을 위한 상하이 임시정부 국비 역사연수 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다.
또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등록을 받고 대학교수, 교사 등이 연차휴가 등을 활용해 직접 가이드를 할 수 있도록 국가 지원 사업도 추진해보고 싶다.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이어져 왔다. 임정로드를 직접 다녀온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
그런 주장을 하는 부류는 1945년 광복 이전에 자신의 선친들이 일본에 부역을 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다. 그러니 건국일을 부정함으로써 일본 부역 역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족사를 세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임시정부를 만들지 않고, 또 태평양전쟁에 가담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미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승인해줬겠는가. 임시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땅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고 당연한 역사관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해왔다. 지난 정부에서도 2016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하면서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교과서 부활을 통해 역사왜곡을 꿈꾸지 않았나. 그것은 나라가 아니었다. 개인의 가족사를 세탁하기 위한 것이었고,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올해는 3·1 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본 아베 내각의 경제도발이 있었고, 향후 경제전망에 대한 정치·경제적 이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까.
현재의 상황에 대해 무턱대고 정부를 비판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대단히 우려스럽다. 그것은 반역사적인 골간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경제전쟁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기인한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만행에 대해 형식적으로만 행동해왔다. 그런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0여년 전 일본 패망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100년 후에 돌아온다고 한 것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사실상 기초소재와 기초부품 분야의 경우 일본에 상당히 뒤처져 있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2007년 이명박 정권 때가 일본이 가장 어려운 때였다. 그때 4대강 말고 기초과학, 기초소재 등에 투자했으면 일본을 뛰어넘어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때 당시부터 경제도발과 같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반드시 극복돼야 할 상황이다. 이번 기회에 뛰어넘어야 하고, 가능할 것이다.
-임시정부의 임정로드는 고난과 희망의 길이었고, 미완의 길로 남아 있다. 현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내년 4월 총선도 다가오고 있다.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치인은 미래를 파는 장사꾼이다. 국민이 같이 꿈을 꿔주면 그게 현실이 되고 미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과 같이 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망상에 그치기 쉽다. 한일관계 문제도 국민과 정치인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간다면 지금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당장 내년 총선 이후 국회부터는 우리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과 같은 편협한 생각으로 하는 정치는 곤란하다. 세계사와 민족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정치와 정치인이 필요하다.
■김기운 민주당 창원의창지역위원장 약력
-경남대 법정대학 정치언론학부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김대중 민주당 총재 비서실 비서
-제16대 노무현 대통령후보 법률지원단 실장
-제19대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직능특보단 수석부위원장
-현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수석부위원장
-현 더좋은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현 한국정책포럼 이사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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