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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지역언론' <경남일보>의 작지만 큰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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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지역언론' <경남일보>의 작지만 큰 승리

[현장] 사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언론개혁의 궁극적인 해법으로 '풀뿌리 언론'을 꼽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중앙으로 몰리는 한국사회에서 지역언론의 형편이 녹록치는 않다. 이명박 정부의 중앙지 위주의 언론관도 문제겠지만 2008년 경제위기로 지역언론들은 요즘 들어 더 힘들다. <충청투데이>, <경남일보> 등 지역언론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노조가 전면파업에 들어갔던 <경남일보> 사태가 결국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전원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신문 발행 중단에서 직장 폐쇄까지 파업 기간에 이 신문이 겪었던 고초는 상당했지만 노조는 요구 사항을 관철시켰다. 경영진의 부실 경영과 편집권 침해에 대한 노조의 뚝심 있는 대응은 언론 통제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작지만 큰' 승리로 다가온다.

100년 지방지, 경남일보

경남일보는 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지역의 유력 상공인들이 뜻을 모아 창간한 최초의 지방지다. <황성신문>의 사장이었고 훗날 친일논란에 휩싸인 위암 장지연이 주필을 맡았다. 창간 다음 해 일본의 국권 침탈이 일어나자 이에 통분해 음독자살한 황현의 절명시를 게재해 10일간 발행정지 처분을 받기로 했다.

1980년 군부의 언론통폐합 당시 경남 마산의 지방지인 <경남매일(현재 경남신문)>에 흡수당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언론통폐합이 해제되자 진주에 다시 경남일보의 복간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는 진주시 의사회장을 역임했던 김윤양 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복간 준비가 마무리될 즈음 세상을 떠났고 1989년 복간된 경남일보의 회장 겸 대표이사는 장남인 김흥치 씨가 맡게 되었다.

서부 경남 언론의 자존심, 잇따른 악수

경남일보는 현재 진주시 안에서 중앙일간지와 비슷한 수준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지방지 현실이 그렇듯 경남일보도 만성적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편집국의 방향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 한편으로 이상적인 사주로 평가받던 김 회장이었지만 경영상황 개선을 위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점 역시 큰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2003년에는 직원들의 상여금 체납액이 550%에 달했지만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상여금을 반납하고 구조조정안까지 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적자는 개선되지 않았고 김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날로 더해갔다.

이에 김 회장은 능력이 검증된 새로운 인물을 사장으로 선임해 회사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밝혔다. 2006년 8월 말 경남일보의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이는 황인태 전 서울지디털대학 부총장이었다.

황 사장은 2001년 서울디지털대를 설립한 그 해 학생들의 등록금 38억30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유예기간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디지털 특보를 맡는 등 정치권에도 발을 깊게 담고 있었다. 당시 황 사장의 내정 소식에 경남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를 가진 이가 언론사 사장으로 취임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재직기간에 월급도 받지 않고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 경영 부문에만 전념하겠다"던 황 사장의 취임 발언은 이후 공수표로 드러났다. 경남일보 노조에 따르면 황 사장의 취임 이후 경남일보는 지방 선거에서 특정 후보 편에 서서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편집국 내부에서도 황 사장의 지시에 반발하는 기자들은 광고영업부로 전속되거나 진급에서 누락됐다.

정파성을 띈 기사들은 이후 진주시 등 여러 기관과의 소송에 휩싸인 계기가 되었고 이에 반발한 기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지역 사회에서 "경남일보는 이제 신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 사장은 이후에도 편집국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인터뷰 섹션을 만들고, 편집부장을 불러 발행 전 신문 대장을 직접 손보는 등의 '사건'을 일으켜 편집국의 반발을 샀다.

▲ 파업 기간 중 경남일보 노조원들이 경남일보 사옥 복도에 황인태 전 사장을 패러디한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프레시안(김봉규)

평기자들의 '반란'

편집국 내부에서 황 사장에서 동조하거나 반발하는 두 기류가 생겨나면서 균열이 일었다. 특히 차장급 이하 평기자들은 황 사장에게 적극적으로 편집권 보장을 요구하지 않는 선배 기자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갔다. 기자협회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놨지만 이마저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평기자 15명이 항의 차원에서 기협을 탈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황 사장의 퇴진 압력이 거세진 계기는 2008년에 있었다. 황 사장은 그해 4월 내부의 협의 없이 1면 사고를 통해 한 기독계열 방송의 진주 중계소 설치를 위한 10만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에 경남 불교계는 언론사가 특정 종교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며 반발했고 스님 100여 명이 경남일보를 방문해 황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1주일 뒤 이사회에서 황 사장을 유임시키기로 하자 반발 기류는 더 거세졌다. 한편에서 경남일보 절독운동이 벌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결국 황 사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흥치 회장이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평기자들은 이 사태의 원인이 결국 황 사장을 추천했던 김 회장에게 있다고 보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결의했다. 이들은 합법적인 임금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로 했다. 2008년 10월 시작된 임금 교섭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6번의 조정을 거쳤지만 이듬해 1월 끝내 결렬됐다. 2월 4일 파업에 들어간 노조는 이사회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새로 선임된 회장 겸 대표이사는 보병 제9사단장과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낸 안병호 예비역 중장이었다.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에 이름이 오른 안 회장에 대한 초기 반발은 거셌다. 하나회 가입 당시 중위 신분으로 선배 장교들이 일반적으로 가입시킨 정황이 있어 적극적인 쿠데타 세력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현역 시절 비위사실이 없어 청렴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언론통폐합 과정을 고위직에서 지켜봤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안 회장은 노조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적 개선과 임단협 재개를 조건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안 회장은 황 전 사장 편에서 편파적인 기사를 도왔던 이들을 퇴출하는 등 공약을 이행해 나갔다. 하지만 회사의 부채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안 회장의 자금 출자 요청을 받아들인 몇몇 지인의 약속이 '빈말'로 끝나자 2009년 10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남일보가 특정인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려던 노조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김 회장이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노조는 이후 재개된 임단협에서 임금 현실화와 함께 김 회장의 퇴진을 재차 요구했다. 이에 김 회장은 3월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퇴진할 뜻을 시사했고 노조는 제2의 파업을 유보했다.

3월 16일 있었던 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던 김 회장은 그러나 29일 주주총회에서 말을 뒤집었고 노조는 이날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경남일보는 30일자를 시작으로 발행을 중단했다.

4월 5일 비공개로 열린 긴급이사회에서 사장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던 황 전 사장이 재등장했다. 황 전 사장은 이사회를 비상대책위원회로 대체했고 비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비대위는 6일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직장 폐쇄에 들어가는 한편 회사 손해에 대한 민형사상 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다고 공고했다. 노조는 업무가 중지된 편집국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 김흥치 경남일보 회장이 사퇴의사를 번복한 3월 29일 노조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30일부터 경남일보는 발행되지 않았다. ⓒ프레시안(김봉규)

"경남일보의 사유화 내버려 두면 우리가 역사의 죄인"

8일 찾은 경남 진주 경남일보 사옥 정문에는 '파업 11일째'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붙은 채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뒤쪽에 열린 문을 통해 2층 편집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젊은 평기자들이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해 김 회장과 황 전 사장을 비판한 개성 있는 전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강진성 노조위원장은 편집국에서 노조원 10여 명과 함께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입사 4년차에 노조위원장을 맡은 그는 "우리는 회사를 끝까지 사수한다"고 말했다. "황인태 전 사장에게 회사를 내주면 우리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라며 "대충 싸우다 밀리는 척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도 강조했다.

경남일보의 발행 중단은 노조 측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은 선택이었다. 발행 중지 첫날 각 지국과 편집국에 신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경영진을 향한 투쟁이 독자들에게까지 피해를 미치면 안 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수년간 끌어왔던 갈등을 끝내기 위해 감당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지난해 파업 때 노조에 부정적이었던 지국장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설득했다. 노보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뿌려 발행 중단까지 오게 된 이유와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마음을 바꾼 지국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노보를 직접 배달하는 곳도 많았다. 이렇게 만들어서 진주시에 뿌려진 노보는 5000여 장이 넘어갔다. 독자들의 항의도 줄어들었다.

황 전 사장의 재임 시절의 폐해를 경험한 시민사회도 그의 재등장에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강 위원장은 "지역에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황인태만은 절대로 안 된다'라는 여론이 있었는데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라며 "민언련 등 20여 개 시민단체들이 뭉쳐서 '경남일보를 살리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를 꾸렸고 민주노동당과 강병기 도지사 예비후보까지 각각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황인태 전 사장의 재등장으로 가속화된 경남일보 사태에 시민단체들이 한 뜻으로 뭉쳤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일보지부

격앙된 지역 여론은 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가지고 있지만 회사의 부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1, 2대 주주들까지 나서게 했다. 2대 주주인 송장관 중원건설 대표가 직장 폐쇄 당일인 6일 노조를 찾아왔다. 노조를 달갑지 않게 보는 보수적인 진주의 분위기 속에서도 송 대표는 사측에 이사회 소집을 요청해 임시주총을 여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강 위원장은 "주주총회가 열려 김 회장과 이사진의 동반 퇴진하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지만 지난 주총처럼 말을 번복하는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며 "노조는 노조 나름대로 회사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설사 노조가 바라는 '시나리오'대로 이루어진다 해도 경남일보가 갈 길은 멀다. 강 위원장은 "지금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경남일보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황 전 사장 재직 당시 벌어졌던 편파 기사와 인사청탁, 인사권 남용 등으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데스크와 일선 기자 사이에 생긴 앙금을 해소하는 문제도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경남일보는 진주 시민들이 들고 있는 낡고 지저분한 밥그릇 같은 것"이라며 "지금 꼴을 보면 당장 버릴 수도 있지만 잘 씻고 손질하면 다시 맛있게 밥을 담아 먹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진정으로 경남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사가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경남일보, 9일 이사회에서 회장 및 이사진 전원 사퇴서 제출

9일 오후 열린 경남일보 이사회에서 김흥치 회장을 비롯한 전 이사진은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사회는 또 23일 주주총회를 열고 김 회장의 경남일보 지분을 회사에 조건 없이 희사하기로 했다. 주주총회는 대표이사를 해임할 권한 역시 가지고 있다.

2대 주주인 송장관 대표는 "현 이사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전원 사퇴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23일 주총에서 새 이사진을 꾸리고 증자를 위한 노력 역시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11일 12일간의 파업을 유보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이들은 ""전면파업의 핵심 요구 사항인 이사진 사퇴가 완료된 만큼 신문발행을 기다려온 독자들을 위해 파업을 유보했다"며 "건전한 새 경영진 구성, 회사 정상화 방안을 지켜본뒤 파업철회에 대한 최종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 경남일보 긴급 이사회가 열린 9일 송장관 경남일보 2대 주주가 강진성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일보지부장에게 이사회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일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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