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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뜬금없이 '언론과 권력'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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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뜬금없이 '언론과 권력'을 생각하며…

와타나베 쓰네오 이야기, 그 첫 번째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김수영 시인의 '봄밤'을 읽으며 공감했던 봄이 있었습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렀고 업적을 기대했으나, 술에서 깨 현실을 둘러보고서는 매우 당황해했던 때였습니다.

다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담담합니다. 큰 줄거리보다는 작은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추며 지내는 덕분인가 봅니다.

주말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좋았습니다.

먼저 봄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26km를 달리며 몸을 풀었습니다. 그러고 나선 아이들을 끌고 다시 한강에 나가 한 시간 동안 자전거로 여의도를 다녀온 뒤 목욕탕으로 향했죠.

자정을 넘겨서도 한참 지나 겨우 잠들던 녀석들이 눕고서는 곧바로 잠에 곯아 떨어지더군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다죠.

As a well-spent day brings happy sleep, so a life well spent brings a happy death.

〈포브스코리아〉 3월호에는 앨런 그린스펀과 관련된 회고가 하나 실렸습니다. 댄 셀리그먼이라는 〈포브스〉의 칼럼니스트가 썼습니다. 셀리그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한때 내 부하직원이었다. … 그린스펀이 나와 함께 일한 1953~54년에 내가 특별히 그를 지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셀리그먼은 〈포천〉의 풋내기 기자였습니다. 그는 '변화하는 미국 시장'이라는 제목의 12회 연재기사를 쓰고 있었고, 그린스펀은 〈포천〉에서 '연구원' 신분으로 그에게 경제 데이터를 분석해줬죠. 〈포천〉은 그린스펀에게 경제자료를 분석하는 상임 자문위원 자리를 줄지 검토했지만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셀리그먼은 "그린스펀이 〈포천〉으로부터 일자리를 제의받았다고 해도 거절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로 회고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잠시 함께 지낸 기억으로만 남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다른 만남으로 연결돼 강력한 네트워크가 되는 인연도 있습니다. 와타나베 쓰네오는 후자의 만남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예전에 흥미롭게 접했던 와타나베 쓰네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우선 하나 들려 드립니다. 독자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도 올리겠습니다.

***(박스) 언론과 권력**

도쿄(東京) 아카사카(赤坂)의 이름난 요정 긴류(金龍)가 문을 닫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 根康弘)가 즐겨 찾은 집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현 총리도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1959년 어느 날 이곳에서 나카소네는 자민당의 오노 반보쿠(大野 伴睦) 부총재와 만났다. 당시 41세의 젊은 나이에 6선 의원이었던 나카소네는 첫 내각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내 파벌의 우두머리 격인 고노 이치로(河野 一郞)는 물론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총리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나카소네는 그래서 오노에게 자신을 추천해 주십사 하고 부탁할 요량이었다.

나카소네는 그러나 전에 오노를 공격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과연 오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쏘아붙였다.

"자넨 조선(造船)의혹 사건 때 '오노가 뇌물을 받았다'고 했지? 그때 일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이 자리를 주선한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渡邊 恒雄) 기자가 나섰다.

"부총재님은 대쪽 같이 곧은 성격이십니다. 그 당시 나카소네는 야당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야당 시절의 발언을 마음에 두시고 지금 그걸 되돌려주려는 것은 부총재님답지 않습니다."

와타나베의 말에 오노는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음, 그건 그렇군. 그런데 나카소네, 자넨 총재의 관상을 갖고 있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와타나베가 본론을 꺼냈다.

"나카소네는 각료로 진출할 창구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좀 내각으로 추천해주실 수 없습니까?"

"나카소네, 자넨 총재감이군. 좋아, 자넬 내각으로 보내주지."

1959년 6월 18일 제2차 기시 정권의 내각개편 때 나카소네는 과학기술청 장관 자리를 받았다. 그날 밤 와타나베는 신바시(新橋)에 있는 요정 마쓰야마(松山)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임명식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나카소네가 와타나베에게 머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덕분에 장관이 됐습니다!"

- <언론과 권력>(우오즈미 아키라 지음, 김성기 옮김, 롱셀러, 2001)에서.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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