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슬퍼했지만 11살 딸아이는 아빠의 할머니, 그러니까 제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같은 반 아이가 아플 때 그랬던 만큼도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증조할머니는 그렇게 현실로 와 닿지 않는 먼 사람이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많은 이들이 선생의 타계를 안타까워했지만 회사 신입직원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서른 안팎의 친구들 대부분이 리영희 선생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선생은 이미 오래전부터 현실의 존재가 아니었던 셈이다.
온-오프라인 여기저기 선생을 추모하는 말들이 오고 간다. 하지만 선생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하거나 선생을 사표(師表) 삼아 살아왔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오늘의 현실은 놀랍게도 선생이 온몸으로 헤쳐 나온 냉전 시대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20, 30대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거인'의 죽음 위로 부나방처럼 날아드는 이들에게서 20, 30대의 구매력과 투표권을 염두에 둔 휘발성 강한 마케팅 냄새가 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들은 스스로를 깨어 있는 지성(知性), 세상의 변혁 또는 변화를 이끄는 리더나 전위(前衛)쯤으로 자처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 세월을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잊고 있으며 그 결과 극우 보수세력에 정권을 내주고 나서도 스스로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에서만 접할 수 있는 선생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는 그래서 씁쓸하다. 분열의 책임은 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를 그 누구도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선생은 어떤 의미일까? 책장을 살펴보았다. 1994년 7월 29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속지에 내가 써 놓은 독서완료일이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구입한 선생의 책이었다. 구입처가 태평서적으로 되어 있는 책은 책장 제일 아래 칸에 '소련의 이해'와 '대실패' 같은 책들과 함께 꽂혀 있었다. 최근 10년 안짝으로 이 책들을 만진 것은 이사를 위해 짐을 쌀 때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태평서적이 아직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이후에 신문이나 잡지, 혹은 인터넷에서 선생의 인터뷰 기사라든지 신간 서평들을 간혹 접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선생은 이미 '태평서적'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저 그 시절을 상징하는 존재 말이다.
지금의 20, 30대는 선생을 모른다. 선생이 나같은 누구에게는 잊혀진 존재로, 또 어떤 이에게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인물로 10년 넘게 살아온 동안 이 사회는 선생 같은 '거인'이나 사표가 될 만한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과 선생 이후의 간극에 우리는 더욱 주목해야 한다.
2010년 출판계 최대의 화두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였다. <진보집권플랜>도 화제다. 실로 오랜만에 인문사회과학 계통의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2월 중순 현재 <정의란 무엇인가>는 약 60여만 부 이상,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17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진보집권플랜>은 1, 2쇄 각 5천 부에 이어 3쇄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하니 아마 2만 부 전후로 팔렸을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독서인구와 영화 관람객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편당 영화관객 1000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2005년 이후 관객수 500만을 넘긴 한국영화만 15개가 넘으며 2010년 12월 13일 오전 9시 현재 올해 영화관객수가 6400만에 달한다.
우리나라 성인 1명의 연간 독서량이 평균 1권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같은 지적 문화활동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는 독서와 영화관람의 이 극심한 대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저 소수의 독서인구 중에 여론주도층이 있다는 점, 그나마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정치적 색깔이 불분명한 부유(浮遊)층이다. 그나마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친MB와 반MB로 나눈다 하더라도 반MB는 다시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사회당 지지층 등으로 나뉜다.
빅텐트론 혹은 국민의 명령 백만민란 등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분명히 하자.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을 선택한 것은 같은 국민이었다. 국민이 지지를 보냈던 그들이 보여준 모습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정치경제적 이념과 사상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웠고 결국 헤어졌으며 국민들은 그들이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책동한 자본, 그리고 언론을 포함한 극우보수세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 그들이 다시 하나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처럼 비쳐지지만 국민은 알고 있다. 그들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중요한 점. 노무현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고백할 당시는 정권 말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금 시장과 자본의 힘은 그 당시보다 더 강고해졌을 터.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빅텐트로 헤쳐 모이거나 '야(野)! 합쳐'로 반MB연대를 형성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치자. 그다음은? 다시 선명성 경쟁이나 이전투구에 전념하다가 어느 순간에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간 지 오래되지 않았느냐?'라고 국민들에게 되물을 것인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된 상황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공세로 전방위로 확장된 전선 앞에 국내의 진보진영은 무방비상태로 무기력하게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반MB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연대의 1차 목표는 정권교체보다는 이미 당장 시장에 만연해 있는 자본의 횡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의 고백 당시에 이미 시장에 넘어간 권력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시장에 대항할 수 없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 한미FTA에 대한 야권의 대응이었다. 실제로 한미FTA의 첫단추를 끼웠던 이들이 창당한 국민참여당의 노무현 지지자들, 그리고 노무현 집권 당시 이를 책임지고 추진하는 자리에 있었던 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은 한미 FTA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FTA 특위를 구성하면서 한미 FTA 골수 지지자를 선임하려 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권교체를 위해 일단 합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진보집권플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과연 열광할 만한 책이요 인물인지는 판단을 유보하겠다. 인터뷰기사 등을 통해 접한 저자의 의견에 십분 공감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고 한마디 하자. 나는 이 책을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수용방식이 매우 의아하다. 특히 저자 개인의 매력에 초점을 맞춘 '브로마이드'나 '콘서트' 같은 마케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한 출판사의 판매목적 마케팅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공저자 중 한 명은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미 '문국현'이란 개인을 정치적으로 마케팅하고 소비한 바 있다. 일제시대의 친일세력이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등에 업고 통치체제를 강고하게 굳혀온 지 어언 100년이나 흐른 나라에서 진정한 개혁이란 것이 과연 '1인 스타' 마케팅만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에게 묻고 싶다.
비난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나는 현 시점에서는 '진보집권플랜'과 그 저자를 오래전 '7막 7장'이란 책과 그 저자의 도플갱어라 본다. 물론 책의 내용과 저자들이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진보집권플랜의 저자와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의 4막5장의 저자를 구분하는 것은 결국 책과 인터뷰 등에서 드러난 주장 말고는 없으며 따라서 그는 정치판에서는 아직 '주장' 말고는 검증되지 않은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관련된 사노맹 전력 등을 언급하며 나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문수도 이재오도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논점이 아니다.)
정치개혁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물에 방점이 찍혀 있으며 바로 그 인물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상과 정책이 결국 인물을 통해 드러난다는 저자의 주장에 따르자면 더더욱 그가 과연 선수로 판에 뛰어들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간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표를 통해 판을 바꿀 수밖에 없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표선수가 될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세력화된 힘'이다. 정치적 스펙트럼과 지향점이 다양한 몇만, 몇십만에 불과(?)한 독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쳐대는 박수 정도로는 정치세력화되기에 한참 부족하다. 반복하지만 인물중심의 전략과 '일단 합쳐보자' 방식으로는 설령 승리한다 하더라도 집권과 동시에 시작될 분열을 막을 수 없다. '드림팀 놀이'에 찬성하는 진보재집권플랜의 독자 2만여 명과 '국민의 명령'의 회원 3만 8천명(12월 14일 현재)의 숫자가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벼랑 끝까지 밀리고 밀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국민의 불만 덕에 이런 움직임들이 어느 순간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으며 그 덕에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이들의 지지자이다. 그러나, 합쳐서 집권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정리하자. 국민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합쳐도 이길 수 있을까 말까 한 싸움에서 전방위로 확산된 전선에 정치세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집권세력이 던지는 떡밥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는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 그것이 MB정권의 지독한 무능과 망국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는 이유이다.
대통합은 정권교체를 최대 목적으로 하여 전선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로 이끄는 것이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분열사태를 국민은 알고 있다. 따라서 친MB와 반MB 대결구도가 아닌 신자유주의와 그 반대의 대립구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자본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이 땅의 정치세력 혹은 지도자들은 지금부터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우리 내부에는 이미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다음 트윗을 보라.
@아이디 생략 :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난말라. 꼰대들아,너희들은 졸업만 하면 먹고 살 길 보장되는 사회에서 기껏 남들 다하는 운동한 것뿐이겠지만, 지금은 운동권이라고 하면 암묵적으로 괄시받는, 아둥바둥 대학생활하지 않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인 그런 20대거든!
@아이디 생략 : 지금 청년실업률 높은 건 기업들이 효율성을 핑계로 고용을 줄였기 때문인데 왜 애꿎은 선배들을 탓하나요? 선배들은 그 시절 '다 같이 노력하자. 회사 잘되면 보답하겠다'는 말만 믿고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깬 것은 기업이고. 90년대 노동자들은 투쟁이라도 해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여러분은 투쟁을 안 하니 일자리가 없는 거지요. 여러분도 일자리 확보하려면 탐욕스러운 기업이랑 맞장뜨세요. 애기처럼 선배들한테 징징대지 말고...
이것은 장차 세대 간의 논쟁이 아닌 계급논쟁이 될 것이다. 이건 정권교체 담론으로는 절대로 담지해 낼 수 없는 갈등이다. 리영희 선생을 아는 세대와 리영희 선생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 간의 간극은 반MB정서만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간극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2012년 대선은 다시 '1 對 多'의 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도 리영희 선생을 대신할 수 없으나 아무도 리영희 선생을 대신하지 못하는 시대 말이다. 새로운 세대의 고민을 반MB연대로 묶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서 리영희 선생이 사회민주주의자였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선생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나머지 추억과 고생을 회고하는, 과거로 향한 추모의 념(念)을 함께 하기에는 비정규직 시급으로 떠도는 20, 30대는 정신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 그러니 40, 50, 60대여! 부디 리영희 선생 타계의 충격과 아쉬움에서 얼른 빠져나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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